마크 로마넥 - <네버렛미고>

    영화의 초반부 배경이 되는 헤일셤 기숙학교는 다른 학교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학생들에게 다른 과목보다 그림 그리기나 시 짓기 등의 예술 활동을 장려하고 학생들의 신체와 정신 건강을 매 순간 강조하며 그들의 신체 상태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학교 밖을 나가면 안 된다는 무시무시한 소문 또한 철석같이 믿는 학생들을 위해 루시 선생님은 캐시와 루스, 토미의 반에서 학생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루시 선생님이 그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장면이 지난 후에도 영화는 복제인간의 테마에서 벗어난 일반적인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캐시는 동급생 토미를 좋아하여 표현이 서툴러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토미의 편이 되어주고, 토미 역시 자신의 곁에 있어 준 캐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러나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을 본 루스는 자신 또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에 토미에게 고백을 하고, 토미를 향한 캐시의 마음은 헤일셤에서 나온 후에도 이어지지만, 루스와 토미가 헤어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장기기증을 유예할 수 있는 간병인에 지원한다.

    어느덧 28살이 된 캐시는 간병인 일을 하며 수많은 복제인간의 ‘종료’를 경험한다. ‘종료’란 복제인간이 장기기증 수술을 여러 번 하고 나서 몸이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날 캐시는 우연히 세 번째 장기 기증을 앞둔 루스와 토미를 만난다. 셋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루스는 자신이 과거에 캐시와 토미를 떨어뜨려 놓은 것을 사과한다. 토미와 캐시는 루스의 도움을 받아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면 기증 유예를 할 수 있다는 소문을 따라가려 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품을 통해 사랑을 인정받으려 몇 년간 그려온 그림들을 챙겨 찾아간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네버렛미고> 또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복제인간의 윤리성에 대해 살핀다. 그런 반면 자신의 숙명을 부정하면서 나타나는 폭력적인 연출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닌 오히려 순응한 채 터무니없을지 모르는 소문 하나만을 믿으며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기증 유예를 원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 속 큰 감정 표출은 오직 토미가 차에서 내려 소리를 지르는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이런 무덤덤한 연출이 되려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영화의 끝에서 캐시는 ‘과연 우리 목숨이 우리가 살린 목숨과 그토록 다를까?’라고 묻는다. 그들의 삶을 엿본 관객들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예견된 미래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우정으로 교감하며, 때론 질투하고 용서하며 그렇게 성장했다. 장기 기증을 통해 한 번에 삶을 마감하지 않는 설정은 잔인하게 느껴지면서도 현실에 꿈을 저버리는 여러 청춘의 삶과 닮았다. 영화의 배경이 미래가 아닌 1960년대라는 것 또한 ‘일어날 만한 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써 보는 사람의 삶을 되돌아보는 장치가 되어준다. 그들의 청춘은 뜨거웠지만, 장기를 몇 번에 걸쳐 기증하며 현실에 타협하고 점차 지쳐간다. 혹여 우리 앞에 놓인 가혹한 현실이 고통을 받는 숙명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면, 저들을 동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위안을 얻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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