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삭 - <미나리>

    낯선 미국 땅에 낯선 모습을 한 한국인 가족이 들어선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던 아빠 제이콥은 미국 땅에서 한국 작물을 키워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바퀴가 달린 트레일러 집으로 가족을 이끈다. 비옥한 흙을 보며 희망을 보는 제이콥과 달리, 그의 아내 모니카는 아픈 아들 데이빗을 위한 병원도, 마음을 기댈 한국인도 없는 광활한 땅에 불만을 가진다. 모니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이콥과 일을 나가야 하자, 아직 어린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가 함께 살기로 한다.

    정이삭 감독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전적 영화 <미나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맞닥뜨린 상황을 매우 정교하게 그려낸다. 데이빗으로 재탄생한 정이삭 감독의 경험 덕에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며 한 사람의 생애를 엿보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의 이민자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가장 미국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정이삭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미나리>는 ‘영화라는 국적 위에 서 있는 공통의 체험’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관객들 역시 영화에 쉽게 공감하고 자신의 경험을 재발견할 수 있다.

    순자는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앗들을 가득 안고 미국에 도착한다. 어린 데이빗은 순자가 ‘진짜 할머니’ 같지 않고 한국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할머니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순자가 미국 할머니들과 달리 쿠키를 만드는 방법도 모르고, 트렁크 팬티만 입은 채 생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자는 그녀만의 재치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며,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아 뛸 수 없는 데이빗을 ‘스트롱 보이’라고 불러주며 그의 상처를 치유해준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뿌리며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순자는 데이빗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상처받은 마음마저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한편 제이콥은 우물 팔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우물을 만들지만, 차츰 우물이 막히자 집에서 쓸 물을 끌어다 농사에 사용한다. 아내 모니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입을 닫고, 제이콥은 그런 모니카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로 떠나도 된다고 말한다. 데이빗의 시선에서 따뜻한 흐름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심해지는 부부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미국 이민자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부부는 끝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찾아오면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처럼 데이빗의 가족은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만, 서로를 구원해 주기도 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아시아 혐오 범죄가 급증하는 현상은 <미나리>가 보여주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지난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으로 4명의 한국계 여성을 포함한 8명의 희생자가 사망했다. <미나리>가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 6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의 후보로 오른 것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미나리>는 영어 대사가 50%를 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미국적인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미국에서 살아가는 아시아인들이 이방인이 아닌 미국의 일원임을 확인시켜준다. <미나리>의 연이은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영화 속의 데이빗 가족을 넘어 미국 내의 모든 아시아계 시민의 삶이 주목받는 결과를 낳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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