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22일, 한 육군 부사관이 기자회견 자리에 섰습니다. 세상 앞에 자신을 당당히 드러낸 그는, ‘남성의 성기를 상실했다’는 이유로 육군본부로부터 강제 전역을 당한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입니다. 그랬던 당신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하고 한동안 참 많이 울었습니다. “기갑의 돌파력으로 그런 차별을 없애버리고 살 수 있다”며 환하게 웃던 당신의 모습이,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다”며 당신이 숙명여대 합격생 A 씨에게 남긴 말이 너무도 아프게 다가오는 하루입니다.

    지난 한 해, 당신이 남긴 말과 글을, 그리고 당신이 우리 사회에 불러온 변화를 돌이켜봅니다. 당신은 모든 성소수자 군인이 차별받지 않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싸웠습니다. 나아가 성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자꾸만 길어지는 싸움에 지칠 법도 했지만, 당신은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권력 앞에 용감히 맞서면서도 우리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졌던 당신은 참 멋진 사람입니다.

    그는 그저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으로 남길 바랐습니다. 지극히 소박했던 그의 바람이 싸워서 얻어내야 할 투쟁의 대상이 되었던 건 그의 성별 정체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민간인’ 운운하며 마지막까지 그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았던 육군, 인권위와 국제사회의 권고에도 손 놓고 방관했던 정부,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침묵 내지는 동조했던 정치권까지. 그들은 그의 죽음 앞에 무거운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잇따른 트랜스젠더의 죽음이 지금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끼칠 영향이 두렵습니다. 우리, 살아남읍시다.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그 날이 오기까지, 조금 더 힘을 냅시다. 느리지만 조금씩, 우리 사회도 더 나은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와 연대하며 세상을 바꿉시다.

    정치권이 조속히 나서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깊이 느낀다”던 집권 여당의 논평을 기억합니다. 이 논평이 부디 빈말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을 가장 큰 힘은 국회와 정부에 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당신이 있었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용기를 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많이 미안합니다. 당신이 꿈꿨던 그 세상이 속히 대한민국에 찾아올 수 있도록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세상의 차별과 혐오에 용감히 맞섰던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으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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