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유독 붕 뜬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굳이 표현하자면 내가 시간을 사용하는 느낌이 아니라 시간이 파도처럼 나를 쓸어가 버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매 순간 반쯤 유체이탈 된 채로 살다가 밤이 돼서 정신을 번쩍 차려보니 벌써 새벽 한-두시가 되어 있다던가, 아니면 일어나서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주변이 어두워 졌다던가 뭐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기분이 많이 나쁩니다. 소중한 시간들이 의미 없이 녹아내리는 느낌도 들고, 나를 이루는 기억의 조각들이 너무 희미해지는 것도 같고요. 결국 얼마 전 좀비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일주일간 제 삶을 천천히 돌이켜보니 몇 가지가 눈에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먼저, 우리 뇌는 생각보다 자극에 취약하더라는 겁니다. 자극의 주된 요인은 시각, 청각인데 우리가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지 않는 이상, 뇌가 주변상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여과 없이 들어온 자극들은 정보처리과정을 거쳐 일말의 인지로 전환되지만 대부분이 쓸모없고 과도한 정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사회는 각종 자극을 거리로 쉼 없이 쏟아냅니다. 서로가 겨루는 듯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분분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뇌가 쉴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매 순간 필요 이상의 정보가 들어오고 그것을 처리하다보면 뇌가 지치가 마련인데, 저는 뇌에게 쉴 시간조차 제대로 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뇌의 회복을 도와주려면 뇌에게 휴가를 주어야 합니다. 각종 자극을 차단하고 생각과 인지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이른바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만질 수 없었으니 멍을 길게 때리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 시간들을 모두 전자기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뇌는 지쳤고, 휴식이 필요한 상태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능동적 활동 대신 수동적 활동을 하게 됩니다. 가만히 보기만 해도 무엇인가 진행되는, 예를 들어 넷플릭스라던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내가 적절한 반사생각을 내보내지 않아도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니까요.

    결국 어느새 다친 뇌를 이끌고 회복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로, 더 많은 수동적 자극들에 노출되길 자처하며, 시간의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인생에 이방인처럼 부유하는 제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니 탈피는 간단합니다. ‘뇌를 쉬게 하자.’ 그래서 저는 요즘 1) 운동을 하거나, 2) 명상을 하거나, 3) 정제된 공간 안에서 집중하거나, 4) 욕조의 물속에 잠겨서 생각하거나, 5) 어둠 속에서 최소한의 불만 켜두고 할 일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디지털 미디어와 멀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면 아무도 나를 주인공으로 이 시간들을 기억해 주지 않을 텐데, 소중한 경험들을 고작 그런 자극들 때문에 잃어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억울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인생의 주체가 되기 위해 열심히 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의식적으로 일깨우지 않는다면 미약한 능동성과 본능만이 남은 존재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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