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상반된 의견은, 우리가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각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실제로 당시 중앙일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인 난민 수용에 대한 찬성 비율은 50%를 넘긴 반면, 무슬림 난민에 대해서는 반대 비율이 66.6%로 수치상 큰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배경에는 탈레반, 알 카에다, 다에쉬(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알아보면 사실 이들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사회가 바로 이슬람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끊이지 않는 분쟁과 박해로 목숨과 고향을 잃고, 기본적인 인권마저 짓밟히고 있다. 본지는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탄생과 현재, 그리고 이들에 의해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극단주의

    이슬람 근본주의의 뿌리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전통적으로 해석하며 이슬람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는 와하비즘 사상에 있다. 8세기 무렵 코란의 무결점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반발하는, 현재까지 수니파(코란을 따르는 이들을 일컫는 말)의 가장 보수적인 학파로 알려진 한발리 학파가 등장한다. 이들은 코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며 마치 우리나라의 헌법처럼 가장 높은 위치의 규범이라 주장한다. 시리아의 법학자이자 신학자 이븐 타이미야는 이슬람 제국이 13세기 몽고 제국의 침공으로 몰락한 이유를 이슬람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성스러운 전쟁을 의미하는 지하드를 공격적으로 해석하며 종교당국의 허가 없이도 누구든 개인적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18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 점점 쇠퇴하는 이슬람 사회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초창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나타난다. 이슬람 학자 와하브는 이븐 타이마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이슬람 사회가 코란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력을 넓히기 위해 사상적 명분이 필요했던 사우드 왕가의 지지를 받으며 와하비즘을 제창한다. 이후 사우드 왕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고 건국이념으로 한발리 학파와 와하비즘의  지지를 선포했고, 현재도 사우디아라비아의 법은 샤리아를 규율보다 우선한다.

    와하비즘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비무슬림은 물론 와하비즘 해석을 거부하는 무슬림에게도 폭력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는 와하비즘이 내포하고 있는 폭력성을 과도하게 해석해 그들의 범죄 행위를 정당화한다. 수많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와하비즘을 따르는 이유이다. 현재, 와하비즘의 폭력성과 테러단체에 대한 비판은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2016년 체첸에서 열린 이슬람국제회의에서 220여명의 고위 수니파 성직자들이 와하비즘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슬람 사회의 반미정서와 테러단체의 태동

    2001년 미국 뉴욕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당한 항공기와 충돌하며 붕괴된다. 소련의 몰락 이후 명실상부 세계의 중심이 된 미국의 본토가 무참히 공격 당했다는 사실에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던 사건이다. 사건의 배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알 카에다가 지목되며 이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세력은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등장 이전,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인 이슬람형제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랍 사회주의를 주요 이념으로 하는 이집트 군부집권세력의 세속주의적 성격을 비판하며 이슬람 근본주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민주주의를 이루자고 주장한다. 비교적 온건했던 이들의 사상과 운동은, 1950년대 지도자인 사이드 쿠틉에 의해 테러단체적 성격을 띠게 된다. 쿠틉은 와하비즘을 무장투쟁을 뒷받침하는 사상적 토대로 삼았고, 그로 인해 이후에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집트에서 과격한 반정권 운동을 지속하던 그는 수감 중 ‘진리를 향한 이정표’라는 책을 집필하고, 이 책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양성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집트 군부정권에 의해 해산된 이슬람형제단은 이슬람 사회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그 중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세력이 하마스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에서는 서구세력의 지원으로 중동에 자리잡은 이스라엘과 본래 그곳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가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협정을 맺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자치권을 얻어내며 두 국가간 갈등은 수그러든다. 이때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가자지구에 자리잡은 하마스는 오슬로협정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지하드를 선포했고, 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하마스는 서구세력으로부터 테러단체라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아랍권에서는 팔레스타인 독립의 희망이라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지속되며 발생한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레바논으로 향했다. 당시 PLO는 레바논 남부 부근에 상주하며 이스라엘과 교전해왔는데, 1982년 이스라엘은 PLO세력을 축출한다는 명목으로 레바논을 침공한다. 이에 분노한 레바논인들은 헤즈볼라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헤즈볼라는 이란에서 시작된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력이 이슬람 사회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인 이슬람 혁명에 상당수 영향을 받은 단체이다.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보다도 아랍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더 두드러지며 이념의 핵심은 반미, 반서구, 반이스라엘로, 알 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 극단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세력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미국이나 EU는 이들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나 UN, 러시아, 아랍 국가들은 테러단체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하마스와 마찬가지로 헤즈볼라는 최근까지도 이스라엘과 총격전을 벌이며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1979년 12월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이 본격적으로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 이슬람 협력 기구와 UN총회는 소련의 철수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슬람 사회 각지에서 모인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은 미국과 아랍 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1989년 소련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반군 세력은 지하드를 하는 전사들이라는 의미로 무자헤딘이라 불린다. 무자헤딘은 소련을 몰아낸 이후 여전히 정권을 잡고 있는 공산정권과 3년 간 내전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무자헤딘 내부에서 파벌이 나누어지는데 그 중 가장 큰 세력이 바로 탈레반이다. 오사마 빈 라덴도 이때 알 카에다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반대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군과 이라크 사이에 걸프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은 압도적인 차이로 연합군이 승리하며 마무리된다. 전쟁 이후 미군은 철수하지 않고 중동 지역에 주둔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에 함부로 들어서는 미군들의 모습은 무슬림들에게 모욕감을 주기 충분했다. 레반트 지역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란의 이슬람 혁명, 그리고 미군의 걸프전 이후 주둔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점차 이슬람 사회 전반에 반미정서를 뿌리내리게 한다. 이는 결국 알 카에다의 9.11테러로 이어지게 된다. 2004년 10월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9.11테러가 자신의 지시였음을 시인한 오사마 빈 라덴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레바논의 건물들이 무너지는 장면으로부터 9.11테러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성행

    알 카에다가 9.11테러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자 뜻을 함께 하고자 하는 단체들이 생겨난다. 이전까지 뚜렷한 연결성 없이 이슬람권 전역에 흩어져 활동하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알 카에다의 이름 아래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알 카에다의 주요 방향성인 반미주의와 테러리즘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많아지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이 성행하게 된다.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소말리야의 알 샤바브, 요르단과 이라크 지역의 유일신과의 성전 등 많은 단체들이 알 카에다의 지부를 자처하고 충성을 맹세한다.

    시간이 흐르며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고 알 카에다의 중심력이 약해지자,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은 조금씩 변화했다. 점점 이슬람 세계를 서구세력으로부터 지켜내고 순수했던 초기 이슬람 사회로 돌아가자는 목적이 흐려지고 이념이 변질되며 무장테러단체의 성격만이 짙게 남게 되었다. 보코하람은 여성과 아이들을 자살폭탄테러에 이용하며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으며, 다에쉬는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동부를 점령하고 국가를 선포한다. 그 후 점령지에서 수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유물을 파괴하거나 밀반입했으며 각종 범죄행위를 자행한다. 이들은 유일신과의 성전을 모태로 하는 단체이지만, 동시에 명분 없는 범죄 행위들로 인해 그들의 뿌리인 알 카에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이슬람 사회를 비롯한 국제 사회의 공격을 받으며 국가 선포 3년 만인 2017년 이라크에서의 지배력을 잃고 괴멸상태에 접어든다.

 

테러단체의 현재와 끝없는 비극

    작년 10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역사교사 사뮈엘 파티가 한 이슬람 극단주의자 청년에게 참수된다. 수업 시간 중 무슬림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지시를 했다는 오해가 SNS에 퍼졌고 이를 접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아직도 유럽에서는 소규모 테러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의 주무대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경우 테러로 인한 인명피해를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2020 글로벌 테러리즘 지수에 의하면 2002년도부터 2019년도까지 유럽에서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2,558명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같은 기간 사망한 인원은 96,360명에 달한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에 의한 테러로 인한 사상자 외에도, 현재 이 단체들의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에 의해 다른 종파와 소수 민족, 그리고 여성들은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2020 글로벌 테러리즘 지수가 선정한 2019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테러단체인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히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차별과 하자라족 박해로 유명하다. 특히 시아파 무슬림이면서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에 대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끔찍했던 사건은 1998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고 하자라족 8,000여명이 학살당했던 일이다. 이들은 여전히 이슬람 극단주의를 고수하며 아프가니스탄 정권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은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며 이슬람 사회 및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탈레반, 보코하람, 알 샤바브, 다에쉬를 제외하고도, 언제든 새로운 테러단체가 나타나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비극을 끝낼 수 있을지, 이슬람에 평화가 찾아오기 위한 길이 무엇일지는 이슬람 사회를 넘어 지구촌을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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