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6개월간 머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대중교통 이용자가 다양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유아차를 끌고 나온 가족의 모습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휠체어 사용자를 마주치는 것도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대중교통에서 휠체어 사용자나 유아차 동반 승객을 만난 일이 몇 번이나 되는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고, 어릴 때부터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했지만, 저는 한 번도 대중교통에서 휠체어와 유아차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그 사실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들의 존재가 지워진 건 대중교통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음식점이나 마트에서도, 심지어는 길거리에서도 휠체어나 유아차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이 장애인과 유아 동반 가족의 외출을 막고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휠체어 사용자와 유아차 동반 가족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시설의 개선을 추진함과 동시에, 이런 현실을 만든 우리 사회의 편견을 되짚어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10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와 관련한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것을 규탄하며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를 두고 SNS상에는 일부 비난 여론이 일었고, 일부 언론은 이에 편승하여 시위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위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불편을 유발합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이것이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시민이 가진 기본적인 권리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열차 운행이 길게는 2시간 지연됐다는 점은 분명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으로서 화가 날 법한 일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은, 이를 보도함에 있어 단순히 시민의 불편을 전달함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당 단체가 비난 여론을 감수하면서도 이번 시위를 기획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휠체어 사용자들이 이동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때론 이것이 사망사고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공론화되지 못하는—과 대중교통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현황에 대해서도 함께 보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흔히들 버스와 지하철을 ‘시민의 발’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말이 장애인들에게도 와닿는 사회가 하루빨리 한국에 찾아오기를 바라봅니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