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막히게 생생한 꿈을 꾸었다. 다른 사람에게 꿈 얘기를 하면, 그 꿈을 빼앗긴다고 하니 세세히 적진 않겠다. 꿈이 이렇게 현실적일 수 있구나, 다시 한번 놀랐다. 곧바로 메모장을 열어 방금 꾼 꿈을 기록했다. 덕분에 주말 아침잠이 달아났지만, 만약 내가 일어나자마자 꿈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소위 말하는 개꿈,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상상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기록을 했고, 꿈은 상상이 아닌 글로써 살아남았다. 

 신문사가 존재하는 이유도 꿈을 기록하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우린 현재를 살고, 영원히 현재를 잊지 않으리라 착각한다. 하지만, 현재는 아침 먹고 잊어버리는 어젯밤 꿈과 같다. 기억하기 쉬운 키워드로 비밀번호를 설정했지만, 뒤돌아서 비밀번호 찾기를 클릭했던 경험이 있다. 만약 내가 비밀번호를 펜을 들어 기록했다면, 휴대폰 인증 따위에 시간을 쏟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는 사라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때론 기록하는 시간이 아까워 기억력을 믿어보자 다짐하지만, 사진이든 글이든 남겨놓는 것은 기록하는 시간,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남과 그 기록을 공유할 수도 있고, 생생했던 과거를 되돌릴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기록할 것이 비밀번호만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문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모든 학우가 현재의 학교를 기억할 수 없으니, 신문을 발행함으로써 그 기록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기사 작성은 꽤 낭만적인 작업이었다.

 학부 때 많은 시간을 쏟았던 신문사에 대학원생 기자로 복직한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대로일 것 같던 신문사도 변화의 시기를 거친 듯 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기삿거리는 줄어들었고, 학우들이 본가로 떠나 새로운 기자님들을 뽑기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써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 머물렀던 신문사였고, 학부 재직 당시에도 독자가 많지 않았던 것을 안다. 하지만, 신문사의 입지가 더더욱 좁아진 작금의 상황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붐비는 캠퍼스를 거닌 지 2년 남짓이다. 백신 접종이 빠른 시일 내로 다가온 듯하나, 코로나라는 질병을 완전히 도려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글로써 기록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묵묵히 이번 호, 다음 호, 멈추지 않고 기록하다 보면 그 글들이 모여 무거운 의미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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