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버린 척박한 땅
얇고 가는 뿌리
몰아치는 서릿바람
짓이겨진 이파리

한겨울, 난 내 살을 베고 찢는 살얼음을 뚫고 피었네
인간보다 한참 낮은 같잖은 내 체온으로 
입김을 불어가며 차가워진 손으로 눈을 헤치며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쌓인 눈을 녹였네

눈을 감아 회상하네
봄에는 땅에 납작 붙어 다른 꽃송이들을 보았네
나비잠을 자며 나비가 나에게 앉아줄 꿈을 꾸었네
그래서 나비도 새도 없는 한겨울에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산골 귀퉁이에
나는 괴로운 꽃봉오리를 피웠네

서릿바람마저도 내 가련한 꽃잎만은 해치지 못했네
하지만 겨울이 가면 내 꽃은 지네
눈이 녹으면 내 꽃은 지네
나비가 앉으면 내 꽃은 지네
사람들이 찾아오면 내 꽃은 지네
짓이겨진 이파리와 상처 입은 뿌리만 남은 채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네
봄에는 못난 나를 아무도 봐주지 않네

유감스럽지만 기억하기
기분 좋은 산들바람에도 싸늘한 눈보라를 기억하기
시원한 장마 소리에도 성난 폭풍우를 기억하기
바스러지는 낙엽의 무게에도 나를 밟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억하기
봄이 와도 겨울을 기억하기
아픔을 슬픔으로 승화하기

누군가 봄에 덮인 나를 찾아주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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