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하네케 - '하얀 리본'

 1913년경 독일의 한 농촌 마을에서는 기이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다. 누군가 발목 높이에 매어 놓은 투명한 실에 걸려 의사가 낙마하고, 농부의 아내는 작업 도중 사고사한다. 범인의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은 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마을 사람들은 점점 불안감과 공포에 사로잡힌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영화 <하얀 리본>을 통해 강압된 순수가 폭력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자세히 묘사했으며,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2010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영화는 마을의 젊은 교사였던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레이션을 통해 전개된다. 사건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둔 서술자 때문에, 잔혹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함에도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진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는 “이 이야기는 소문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며, 아직도 확실한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사건의 범인을 찾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영화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 자세히 관찰하면, 의사의 낙마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소름 끼치도록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닌, ‘그들이 폭력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목사의 자녀인 클라라와 마르틴이 있다. 아이들이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모여 다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버지인 목사는 극도로 금욕적이고 엄격한 인물이나, 그 방향은 어딘가 비틀려있다. 미사 시간에 클라라가 시끄럽게 떠들자 혼절할 때까지 망신을 주거나, ‘자위행위를 하는 아이들은 병에 걸려 죽는다’라는 거짓말로 마르틴이 자위행위를 고백하게 한 후 침대에 팔을 묶어두는 등, 그가 추구하는 순결은 강압과 폭력으로 이뤄진다. 클라라와 마르틴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해 목사가 선택한 방법은 팔에 하얀 리본을 차고 다니는 것이다. 그는 하얀 리본은 순결의 상징이라며 시선 끝에 리본이 닿을 때마다 순수하게 살 것을 다짐하라 하지만, 이는 강요된 순수이다. 목사의 강압적인 훈육 방식에 영화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흑백으로 제작된 영화는 더욱 금욕적인 분위기를 주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을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의사는 사실 산파와 내연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딸을 성추행하고, 농부의 아들은 축제 날 밭의 양배추를 다 부숴버리는 등, 마을은 암묵적인 부도덕으로 가득 차 있다. 부도덕한 어른들의 억압을 받은 아이들의 분노는 켜켜이 쌓여 다른 이들에 대한 증오로 자라난다. 수상함을 눈치챈 교사가 클라라를 비롯한 아이들을 추궁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눈빛과 멸시뿐이다. 아이들의 잔혹한 모습을 확인한 후 다시 포스터를 보면, 마르틴이 눈물을 흘리는 동시에 증오에 가득 찬 눈빛을 짓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교회에서 전달받으며 막을 내린다. 그리고 30년 후, 독일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교사는 내레이션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이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말함으로써, 이 나라의 일까지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영화 속 일련의 사건들이 이 시대의 독일을 단적으로 묘사, 비판하고 있음을 전한다. 이런 시선으로 <하얀 리본>을 다시 보면,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어른들에게, 다시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점차 적막으로 가득 차오르는 마을이 폭력과 통제, 억압의 끊임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곪아가다 터져버린 전쟁 직전 독일의 축소판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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