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체리 향기'

 흙먼지밖에 일지 않는 삭막한 이란의 사막 한복판, 중년의 남성 바디는 트럭을 몰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동승을 제안한다. 상대의 직업을 묻거나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지만, 이는 가난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는 말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그는 10분 만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자신의 부탁을 들어달라 애원한다. 내용인즉슨 오늘 밤 자신은 자살할 예정이며, 내일 새벽 이곳으로 찾아왔을 때 자신이 살아있다면 그냥 가되 죽어있다면 시체 위로 흙을 덮어달라는 것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 향기>는 큰 사건 없이 한나절 동안 바디가 만난 사람들과 트럭 속에서 하는 대화로만 구성된 잔잔한 플롯의 영화이다. 작품의 제목과 주제는 이란의 시인 오마르 하이 얌의 시 중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아라’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 자살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이란 정부에 의해 상영 및 출품이 금지되어, 영화제 공식 책자에도 실리지 않은 채 출품되었음에도 유명 감독들의 작품을 제치고 1997년 아시아 영화 중에서 다섯 번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차에 태운 이는 바디의 아들과 닮은 군인으로, 돈 얘기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그의 부탁을 듣자마자 도망쳐버린다. 두 번째로 만난 이는 신학도로, 바디의 입장은 이해하나 자살이라는 행위는 신의 입장에서는 살인과 같다며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종용한다. 바디는 관심과 설교는 필요 없으며 그가 자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 단호히 답한다. 바디가 자살하려는 이유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으며, 관객은 바디의 괴롭고 지친 표정을 통해 그의 고통만을 짐작할 뿐이다. 바디가 영화 내내 지나는 황무지 속 구불구불한 길은 역경 가득한 그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비유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이는 나이 든 박제사로, 아들의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바디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바디에게서 도망치거나 설교를 하는 대신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다가 삶을 결심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젊은 시절 목을 매달기 위해 늦은 밤 나무에 밧줄을 걸다가 문득 그의 손의 체리가 잡혔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먹는 체리의 향과 즙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고 말한다. 한순간의 사소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통해 힘든 생을 이어나갈 용기를 얻은 것이다. 
 쉴 새 없이 떠드는 그의 옆에서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바디는 한마디를 꺼낸다. “요컨대, 체리 때문에 자살을 하지 않으신 거군요.” 그러자 돌아온 그의 답변이 인상 깊다. “아니지, 내 마음이 변한 거지.” 마지막 동승자의 경험담을 들은 바디는 읽을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죽지 못해 사는 노동자들과 끝없는 황무지만 비추던 그의 시야에는, 어느새 사막을 닮은 노란 빛의 노을과 사람들의 활력이 담기기 시작한다.
 감독은 작품 인터뷰 중 “활기찬 사막의 봄날을 담은 이 장면이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느꼈으면 하는 정서”라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자살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으나,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오히려 삶 쪽으로 명확히 기울어 있다. 바디가 자살을 시도할지, 다음 날까지 살아있을지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관객들이 모두 어렵지 않게 결말을 예측할 수 있는 이유다. 마지막 장면 속 달은 짙은 구름 속에서도 가끔 고개를 비추며 빛나고 있다. 세 번째 동승자가 죽음을 결심했을 때 체리 몇 알이 그의 목숨을 구했던 것과 같이, 바디가 얻은 짧은 위로와 다정한 말은 마치 체리 향기처럼 그가 다시 한번 고된 삶을 살아낼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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