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스트롱 - '호밀밭의 반항아'

 1951년 출간된 J.D.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열여섯 살의 반항아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집에 오기까지 사흘간의 일을 그린 작품이다. 기성세대의 위선을 냉소적인 태도로 비판하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전 세계의 사랑을 받으며 10대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당시 30개 국어로 번역되어 6,500만 부가 팔린 <호밀밭의 파수꾼>은 아직도 매년 25만 부가 판매되고 있으며, 20세기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유명세에 비해, 작가인 샐린저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 스스로 은둔하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대니 스트롱의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는 평생 글을 통해 위선에 저항해 왔던 작가 샐린저의 전성기를 요약했다.
 샐린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중학교 때부터 번번이 낙제와 자퇴를 반복하며 뉴욕대학교와 우르시누스대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1939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문예 창작 수업을 듣기 시작한 그는 자신이 소설가로서 성장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휘트 버넷 교수를 만난다. 홀든 콜필드가 등장하는 그의 단편을 본 후 홀든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 소설을 써보라고 격려한 것도 버넷 교수였다. 덕분에 샐린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우면서도 항상 종이와 펜을 품에 지니며 홀든의 이야기를 적어나갔다. 수많은 이가 죽는 전쟁에서 홀든은 샐린저에게 살아남아야 할 이유이자 그의 파수꾼이었다.
 <호밀밭의 반항아>는 케니스 슬라웬스키의 저서 <샐린저 평전>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실제 사건과 등장인물을 자세히 묘사했다. 나아가 전기 영화의 틀을 깬 독특한 구조로 그의 생을 묘사한 점이 눈에 띈다. 시놉시스는 글을 쓰기 시작한 대학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샐린저를 차례로 따라가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전쟁에 참전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신병동에 수용된 샐린저의 모습이다. 불안한 상태로 버넷 교수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어딘가 낯익다. 감독은 홀든 콜필드가 정신병원에서 요양하다 과거를 회상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구조를 영화에 덧입혀 샐린저와 홀든이 공명하는 인격을 가진 인물임을 강조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포함해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등 샐린저의 소설 중 다수는 사랑하는 이로부터 버림받은 경험, 학교에서 퇴학당한 경험 등 그가 직접 겪은 일에 허구를 더해 탄생했다. 작품마다 그의 일부가 녹아든 것이다. 영화는 그가 문득 떠오른 문장들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을 섬세히 중계하며, 거침없이 글을 써내려갈 때의 기분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또 작품들이 각각 어떤 사건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는지 착실히 조명해 마치 그의 소설과 삶이 교차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영화는 전성기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출간되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인기 작가로서 화려한 사교계 파티에 불려 다니는 것에 신물을 내고, 홀든을 흉내 낸 열성 팬들로부터 신변을 위협받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성공이 오히려 자신이 경멸하던 위선을 야기했다고 여긴 샐린저는 곧바로 뉴햄프셔주로 이사해, 2010년 사망하기까지 자택에 칩거했다. 감독은 그가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 경위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샐린저의 심경 및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왜곡 없이 담아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나는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샐린저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이상을 추구해 온 이상주의자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위선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삶의 순수함을 간직하고자 하는 샐린저의 소망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때로는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때로는 금서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은 곧 이 소설이 세상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모두에게 짙은 궤적을 남겼음을 의미한다. ‘파수꾼’을 ‘반항아’로 바꾼 영화의 제목처럼, 그 궤적의 중심에는 샐린저가 서 있다.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홀든을 묵묵히 잡아내는 그는 반항아들의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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