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 '여름의 빌라'

 새벽녘의 기차역, 강의 자료를 준비하던 주아는 문득 독일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린다. 낯선 땅에서 낯익은 작가들의 흔적을 좇아 들어간 서점에는 새로운 인연이 있었다. 주아가 초면의 여행객인 자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베레나, 한스 부부와 알고 지낸 지도 벌써 오 년 하고도 사흘이 되었다. 새벽의 공기에 홀린 듯, 주아는 베레나에게 지난날의 회상을 담은 편지를 써 내려간다.
 약 일 년 전, 베레나 부부는 주아와 지호 부부에게 캄보디아 여행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베레나 부부가 주아와 친구가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함께 지낸 시간의 밀도는 낮았기에, 주아와 지호는 두 독일인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의 차이를 발견한다. 결국 여행의 마지막 날, 한스와 지호는 시엠레아프의 사람들에 대한 견해 차이로 언쟁한다. 한스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된 빈민촌의 사람들을 두고 즐거워 보인다고 한 것이다. 격해지는 분위기에 한스는 그저 생각을 교환하는 것뿐이라며 주아를 안심시키지만, 논쟁은 결국 지호의 욕설로 끝이 났다.
 자칫하면 무지한 백인과 그를 지적하는 동양인의 대립처럼 보이는 이 구도는 베레나와 한스의 이야기가 드러남에 따라 부서진다. 이어지는 편지는 여행 전 베레나 부부가 베를린 도심에서 발생한 테러로 딸을 잃었음을 밝힌다. 지호는 한스와 정치적 입장이 부딪히고 있다고 믿었지만, 각자의 자리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던 한스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는 폭력으로 딸을 잃어버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저자는 서로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목소리를 높인 논쟁을 통해 타인에 대한 몰이해가 뜻하지 않은 상처를 야기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 여행의 기억에서 주아는 대부분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속에 담아둘 뿐 내뱉지 않는다. 황예인 문학평론가는 주아의 태도를 “타인과 나를 가르는 경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한 사람의 생각은 국적, 나이, 성별 등 이외에도 개인이 겪은 경험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절대화하거나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강렬한 감정을 조용하게 고백하는 주아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소설의 결에 부합하다.
 원한다면 타인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오늘날, <여름의 빌라>는 비좁은 나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타인에게 날을 세우는 것뿐인지 묻는다. 뒤이어 저자는 힘있게 답한다. 타인과 나를 가르는 경계 앞에 선 두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면 서로를 다치게 하는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타인 역시 자신과 같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기억한다면, 나의 세계는 좁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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