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메론 미첼 - '헤드윅'

 혜성처럼 나타나 준수한 외모와 파격적인 곡으로 스타가 된 가수 토미 노시스. 그가 공연하는 날이면 공연장 옆의 리버뷰 호텔에서도 같은 곡이 울려 퍼진다. 낡은 호텔 로비를 웅장한 무대인 양 휘젓는 가수의 이름은 헤드윅이다. 공연 속 노래들의 원곡자인 헤드윅은 과거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토미가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고, 공연마다 따라다니며 옆에서 작은 콘서트를 진행한다.
 헤드윅의 본명은 ‘한셀’로, 동독과 서독을 분리하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이후 동베를린에서 엄마와 살던 조용한 소년이다. 그는 동베를린에 파견된 미군에게서 성전환수술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결혼 제의를 받는다. 미군과 결혼하면 갑갑한 동독을 벗어나 미국에 갈 수 있으리라 여긴 그는 헤드윅으로 개명 후 불법 수술을 받지만, 끝내 미군에게 버림받은 헤드윅에게 남은 건 수술 실패로 얻은 일 인치의 살덩어리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낡은 호텔에서 노래하게 된 경위까지, 헤드윅은 콘서트의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수록곡 중 ‘Tear Me Down’,‘Wig In A Box’ 등의 노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신나는 록 스타일의 곡으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사랑에 관한 헤드윅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랑의 기원(The Origin of Love)’으로, 플라톤의 저서 <향연> 중 철학자 아리스토파네스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그는 인류가 원래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 다리를 가진 완전한 존재였으나 신의 분노를 사 반으로 갈라져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갈라진 서로를 찾아 완전해지고자 하는 본능이 사랑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헤드윅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완전해지고자 하는 소망으로 사랑을 갈망한다.
 아직 사랑을 찾지 못한 그가 겪는 고뇌는 대부분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원망에서 비롯된다. 홍보를 위해 헤드윅의 존재를 ‘트랜스젠더 가수’로 보도하는 영화 속 기사와 달리, 영화는 헤드윅이 트랜스젠더가 아님을 암시한다. 그가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듯, 그를 성별 이분법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인 존 카메론 미첼은 2019년 <The Hollywood Reporter>와의 인터뷰에서 “한셀이 받은 성전환수술은 성별의 이분법과 가부장제 속에서 그에게 주어진 제한된 선택지였을 뿐”이라며 헤드윅을 젠더퀴어(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로 묘사했다. 
 입체적인 헤드윅의 정체성과 맞물려, 영화는 화려한 소품과 높은 채도의 조명, 상황을 반영하는 담담하고 기괴한 삽화를 통해 진부하지 않은 미장센을 자랑한다. 헤드윅은 한 번도 같은 가발을 쓴 채로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매 순간 등장하는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가발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시에, 헤드윅 자신의 감정과 모습을 감추는 효과적인 장치로 사용되었다. 또 감독은 반으로 갈라진 인간 삽화를 헤드윅이 새긴 타투로 활용해 그가 사랑을 통한 완전함을 열망하고 있음을 효과적으로 보였다.
 “장벽과 다리의 다른 점이 대체 뭐야?” 헤드윅이 스스로를 ‘새로운 베를린 장벽’이라 소개하는 노래 ‘Tear Me Down’의 가사처럼 세계를 구분 짓는 벽과 이어주는 다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평생 자신을 대조되는 세계 사이의 장벽이라 여겨왔던 헤드윅이 완전한 모습의 스스로를 마주하는 순간, 장벽은 무너지고 그는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었다. <헤드윅>은 경계 위에서 갈팡질팡하며 속할 곳을 찾는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이다. 자신을 정의하지 못해 혼란 속의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고, 나머지 절반을 찾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완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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