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기말시험을 앞두고 저는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크지 않은 가방에 노트북과 시험 대비 자료를 넣고, 남은 공간에 옷가지를 대충 쑤셔 넣고는, 망설일 틈 없이 집을 나왔습니다. 얼마 전 전 재산을 만기일이 다가오는 적금에 추가 납입하여 통장이 말 그대로 ‘텅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엄마의 가정폭력으로 너무 힘들 땐 우리 집으로 오라”던 알고 지내던 분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염치없이 그분께 연락을 드렸고, 다행히 그분께서는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떠돌이 생활이 벌써 넉 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이사만 여덟 번 했습니다. 그만큼 거처가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다르게 얘기하면 그만큼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여행용 가방을 주신 분도 있었고, 급히 나오느라 챙기지 못한 마스크와 양말을 두둑이 챙겨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급전이 필요할 땐 편히 얘기하라던 친구와 언니들이 있어 항상 든든했고, 늘 곁에서 응원해주시던 분들이 있었기에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의 도움에 힘입어 저는 이제 아홉 번째 이사를 준비 중입니다. 궁동에 위치한 조그마한 방을 계약했고, 얼마 전 은행에서도 보증금 대출과 한도 대출이 승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 달 후면 제가 안전히 지낼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지난 1년간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제 주위에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친구들이 한없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저는 그러한 존재였는지 저 자신을 돌이키게 됩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들이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나가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면, 저는 남들처럼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암울해지곤 했습니다. 넉 달간의 떠돌이 생활은 그랬던 제가 놓치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친구들, 힘들고 어려울 때 손 내밀어주는 친구들과 함께이기에 저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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