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평순,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제작진 - '인류세: 인간의 시대'

 비닐을 해파리로 착각하고 먹어 장이 파열된 거북이와 버려진 마스크 끈에 목이 졸려 죽는 새들. 일회용품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쓰레기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안타깝다고 여기면서도 자신의 시대에 화살이 겨눠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새 재앙은 우리 곁에 와 있다. 극단적으로 덥거나 추운 날씨가 반복되고,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수십 일 동안 그치지 않는다. 푸르던 하늘은 미세먼지 때문에 뿌옇게 된 지 오래다.
 지구의 자정작용이 망가지고 있는 현시대에,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들이 있다. 최평순,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의 <인류세: 인간의 시대>는 동명의 다큐멘터리 원작으로, 20만 년 전에 등장한 인류가 어떻게 46억 년을 살아낸 지구를 변화시켰는지를 낱낱이 조명한다. 
 ‘인류세(Anthropocene)’는 그리스어로 인류를 뜻하는 ‘anthropos’와 세기를 나타내는 접미사 ‘cene’의 파생어로, 2000년 ‘국제 지권-생물권 프로그램’에서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다. 지질학적으로 우리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에 살고 있으나, 인류에 의해 지구가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구분 지어야 한다는 것이 인류세의 핵심 담론이다. 실제로 세계 인구, GDP, 에너지 사용 등의 사회경제적 변화 지표와 여러 지구계 관련 지표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의 그래프가 1950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 관찰되었다.
 인류세 담론에 대한 긴 서론이 끝난 후, 저자는 인류의 편의를 위한 행동들이 지구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차례로 소개한다. 코끼리 도살을 막기 위해 개발된 플라스틱이 어떻게 야생동물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들과 태어나자마자 도살당할 운명의 수백억 마리 식용동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가 짐작하면서도 불편한 마음과 무관심에 보지 않았던 현실을 들춰낸다.
 사람들은 번거롭고 어렵다는 이유로, 국가는 경제 발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환경 문제를 외면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제라도 지구의 모든 요소를 포화상태로 만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문명의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는 지금, 우리는 예정된 결말을 막을 수 있을까? 환경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지구를 오염 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기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뿐이다. 이제는 우리가 지구에 미치는 힘의 크기를 자각하고, 지금껏 미뤄온 과제를 직면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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