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리 - '세상의 모든 계절'

 제리와 톰은 그려낸 듯한 이상적인 부부이다. 결혼한 후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제리는 심리상담사, 톰은 지질학자로서 타인의 인정을 받고 있다. 이들 부부의 가장 특별한 점은 본인 가족뿐 아니라 주변의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둘의 집은 항상 따뜻하고 행복한 공기로 가득하며, 모든 이가 두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제리의 직장 동료 메리다. 결혼 생활에 실패한 후 홀로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그가 기분을 전환하는 최선의 수는 술과 담배, 그리고 수다스럽게 자신의 불행을 늘어놓는 것뿐이다. 항상 외로움을 느끼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자신의 집이 아닌 제리와 톰의 집이다. 이들 부부는 메리를 환대하면서도 그의 배려 없는 행동에 조금씩 지쳐간다. 마이크 리의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받는 <세상의 모든 계절>은 행복한 가족과 이를 동경하는 외로운 여인의 대비를 잔잔하고 비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봄부터 겨울까지의 계절의 흐름으로 구성된다. 봄과 여름은 메리에게 따스한 계절이다. 특별한 배경 음악 없이 영화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특히 메리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와인에 취해 아기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그의 행동은 무례하다. 제리는 메리가 톰의 친구 켄에게는 늙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대놓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자신의 아들 조이에게 노골적으로 호감을 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영화 내내 메리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제리가 메리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인물들의 감정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장면 대신 해석 못 할 미묘한 표정을 짓고,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눌 뿐이다. 관객은 마치 실존 인물을 대하듯 그들의 감정을 추측할 수밖에 없고, 이는 영화를 한층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외로운 메리는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에 시야가 좁아져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잊었다. 같은 불행을 겪는 켄을 배척하는 이유이다. 제리 가족은 메리를 연민하고 존중하지만 그들이 정한 선을 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이들이 메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줄 수는 있지만, 그를 직접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다. 건축의 방향성만을 제시해주는 지질학자와 스트레스의 원인을 파악하되 직접 해결해줄 수 없는 심리상담사라는 둘의 직업처럼 말이다.
 영화 속 시간은 흘러 가을이 왔다. 제리와 톰이 메리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연민의 총량은 줄어들었지만, 메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제리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조이의 여자친구 케이티를 가족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메리는 완전한 불청객이었지만, 그는 마치 케이티가 불청객인 양 행동하며 오히려 조이에게 추파를 던진다. 식사가 끝난 후, 메리에게 제리 가족이 더 이상 줄 연민은 남아있지 않았다. 길고 긴 겨울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눈치 없고 이기적인 메리는 결코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쉽사리 그를 미워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지치고 외로워서 눈앞의 행복만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어쩌면 메리는 조이를 사랑함으로써 그의 완벽한 가족과 함께 행복을 공유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침묵을 두려워하던 메리였지만, 사람들의 대화 소리는 더 이상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 외로움의 도피처는 이제 가장 지독하게 외로운 장소가 되었다. 영원한 겨울 속에 메리를 버려둔 채 모두 따스한 봄을 마주하기 위해 떠나간다.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며 멈춰있을지,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갈지는 이제 오롯이 메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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