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CD가 가득 찬 벽장 앞을 서성이다 하나를 골라 CD 플레이어에 재생하던 지난날, 소장하고 있는 앨범의 수는 곧 음악을 향한 애정의 척도였다.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 구입하고, 필요한 물건은 그때그때 구입하는 생활. 그러나 음악, 영화, 도서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하며 물건을 소유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누가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은 경험을 해보았는가가 풍요로운 삶의 새로운 척도가 된 것이다. 본 기사에서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한다.

당신의 삶을 재생하세요
 ‘스트리밍(Streaming)’은 인터넷에서 음악·영화·드라마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콘텐츠 전송 방식을 일컫는다. 재생에 필요한 CD, DVD 등을 소유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원하는 때에 소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마치 물이 흐르듯 데이터가 재생되는 방식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1995년 리얼네트워크사가 개발한 리얼오디오에서 처음 선보인 개념이다.
멜론·지니 등의 음원 서비스와 넷플릭스·왓차플레이 등의 콘텐츠 스트리밍이 가장 잘 알려졌지만, 이제 스트리밍은 가구, 생필품, 주거공간 등 삶의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스트리밍 라이프는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렌탈 서비스나 일정 기간 재화와 서비스를 추천받는 구독 멤버십 등을 모두 포괄한 생활 방식이다. 제품을 소유하지 않고도 제공되는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기에, 스트리밍 라이프의 등장은 소유가 아닌 사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또한, 사용권이 종료되면 제품의 소비 권한이 소멸하는 특성상 소비가 특정 시간에 한정되기 때문에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개인의 취향과 생활 양식을 존중하는 맞춤 서비스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스트리밍 라이프 내에서 개인이 스트리밍하는 물건이나 서비스, 콘텐츠의 기록은 곧 소비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기준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살고 싶은 곳
 미국 디지털 미디어 <리파이너리29>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윗디그스’는 뉴욕·LA 등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생활 양식을 소개한다. 다수의 출연자는 집값을 지불하기 위해 가구의 수를 최소화하거나, 동거인을 구해 돈을 나누어 내는 등의 방식을 택했다. 점점 치솟는 집값에도 많은 사람이 문화적 다양성을 누리기 위해 특정 도시로 모여든다. 이들에게 집은 정착지가 아닌, 각자의 시간을 도시에서의 경험으로 채우기 위한 플랫폼일 뿐이다. 이처럼 공간을 소유하기 힘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동적인 공간 소비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용권을 구매하면 해당 기간 동안 특정 동네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업이 시장에 등장하며 주거지의 스트리밍 양상은 더욱 다양해졌다.
 국내에서도 체험형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셰어하우스 브랜드 ‘커먼타운’은 압구정·청담동 등 상권이 활발한 지역을 중심으로 2019년 5월 기준 33개의 지점을 설립했다. 짧은 기간만이라도 거주해보고 싶은 곳에 집을 마련하고자 하는 도심 생활자들의 수요를 고려한 것이다.
 공간뿐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아이템도 스트리밍의 대상이다. 부동산 개발 전문기업 SK디앤디는 서울 성수동에 공동 주거 브랜드 ‘에피소드’를 론칭했다. 에피소드는 20·30대의 생활 양식을 반영한 1~2인 주거 공간으로, 입주자 개인의 개성을 고려한 가구를 스트리밍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사를 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침대, 소파 등의 대형 가구를 직접 소유할 필요가 없도록 한 것이다. 입주자는 일대일 맞춤 운동이 가능한 피트니스 공간과 세탁실, 세대 창고 등을 통해 개인의 특성에 맞춘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주거 공간의 생활 양식이 중요해지면서 거주자가 방을 고르는 기준도 변화했다. 집의 가격을 정하는 요인이 방의 크기나 구조 등이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거주자들은 기능과 디자인 측면에서 자신의 선호에 맞는 스타일을 먼저 고려한다. 2018년 12월에 오픈한 ‘역삼 트리하우스’는 셰어하우스와 오피스텔의 장점을 결합한 공유주택으로, 반려동물을 위해 캣타워와 캣워크를 설치한 방, 욕조와 와인셀러를 설치해 호텔 분위기를 낸 방 등 입주자의 생활 방식에 맞춘 다양한 컨셉의 공간을 제공한다.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주거지의 계약 기간도 짧아졌다. 네덜란드의 ‘조쿠’는 호텔처럼 하루도 이용이 가능하다. 나아가 일부 거주 서비스 브랜드는 거주지의 경계를 허무는 정책을 제공한다. 2019년 4월 시험 운영을 시작한 일본의 ‘어드레스’는 이용료를 내면 일본 각 지역의 거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주소를 바꿔가며 사는 이를 지칭하는 ‘어드레스 호퍼’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다양한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추천을 배송해 드립니다
 생활 양식의 스트리밍이 확산되자, 경험을 수집하는 다른 방법으로 전문가의 추천을 스트리밍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인테리어, 쇼핑 등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큐레이션 한 스타일을 선택해 정기적으로 배송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내 주류 서비스 ‘데일리샷’은 한 달에 9,900원으로 제휴 술집에서 매일 술 한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도록 한다. 출시된 지 1년 만에 누적 회원 수 5천 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집으로 배달되는 주류 추천 스트리밍 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매달 전통주 두 병을 배송해주는  ‘술담화’는 소비자의 취향과 계절에 맞는 술을 추천해주고, 술에 얽힌 역사나 어울리는 음식 등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론칭 7개월 만에 1천 명이 넘는 구독자 수를 보유했다.
 추천 스트리밍은 실내 분위기를 좌우하는 인테리어 분야에서도 각광받는 산업이 되었다. 미술 전문 큐레이터가 국내 작가들의 원화를 골라주는 ‘오픈갤러리’는 원화 가격의 1~3% 정도에 3개월마다 한 번씩 그림을 바꿔준다. 전문 플로리스트의 꽃꽂이로 집을 꾸밀 수 있는 꽃 스트리밍 서비스도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국내 최초로 꽃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 ‘꾸까’,‘데일로즈’ 등 소규모 브랜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개인의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주고 정기 배송해주는 애경산업의 ‘플로우’ 등이 소비자의 주목을 받는 중이다.

스트리밍 라이프의 확산 배경
 하버드대 경영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미국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자의 수가 2017년 이후로 1,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전자상거래의 15%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2012년부터 5년간 미국 소매 매출보다 420% 빠른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는 사실은 소비 패턴의 변화 이후 스트리밍 라이프의 빠른 확산을 암시한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10여 년 전부터 화두였지만, 최근 들어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김난도 교수는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빠른 성장이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질 높은 생활 양식을 원하는 비율도 유독 높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가 제공하는 현대 셀렉션과 제네시스 구독 프로그램의 회원 분포에서 30대가 각각 40%, 49.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소유에 필요한 자산은 부족하지만 다양하고 질 높은 경험을 원하는 만큼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용이 타협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리밍을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의 발달도 스트리밍 라이프의 주요 확산 요인으로 꼽힌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이 형성되면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와 제품을 구독하거나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스트리밍은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을 구매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사용 패턴을 추적할 수 있다. 구매 기록을 통해 개인의 소비 성향을 분석 후 맞춤형 서비스를 추천하는 시스템의 구축은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 모두를 사로잡았다.

기업과 소비자를 잇는 스트리밍의 끈
 김 교수는 “소유보다 경험을 선호하는 세대가 소비 시장에 편입될수록 스트리밍의 대상과 형태는 계속 확장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동차, 가구까지 스트리밍하는 시대에 지속가능한 산업을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
소유가 중심이었던 기존의 시장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한 순간부터 관리는 소비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서비스에 불만족하는 순간 구독을 종료할 수 있기에, 서비스 제공자는 구독 기간 내 발생하는 일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본 IT 전문 매체 <IT media>는 “사용자의 스트리밍 서비스 구매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구매 후 사용자의 만족도를 관리해 기업과 사용자 간의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스트리밍의 대상이 고가의 내구소비재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제품의 품질 관리가 중요해졌다. 여기에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제품을 돌려받았을 때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 시장의 지속을 위해 서비스 제공자가 적절한 매뉴얼과 원칙을 마련하는 것만큼이나 소비자의 매너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바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더욱 성장할 전망이라 분석한다. 기업  주오라에 따르면 구독 기반 산업의 매출은 미국 소매업의 매출보다 약 5배 빠르게 성장해왔다. 국내에서도 렌탈 전문 기업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코웨이는 2011년 매트리스 렌탈을 시작한 후 약 8년 만에 매트리스 시장 2위에 올랐다. 스트리밍이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는 단순한 서비스 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지원하고, 개인의 발전을 돕는 측면에서 스트리밍 라이프는 삶의 벽장 한구석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트렌드 코리아 2020>, 김난도 외, 미래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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