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흔히 말하는 연뮤덕,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알바를 해 모은 돈으로 두 달 후에 볼 공연을 예매하고, 공연 당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약 두 시간이면 끝나버리지만, 공연장의 울림에 동화되는 순간은 길었던 하루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다. 유난히 공연이 좋았던 날은 밤새 벅찬 가슴을 안고 공연의 기억을 일기장에 정리하기도 한다. 지난 3년간 수많은 공연을 관람했지만, 가장 소중한 극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라 단언할 수 있다. 2010년에 한국에서 초연 후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이 극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베스트셀러만 네 권이 넘는 인기 작가 토마스 위버는 자신의 오랜 친구 앨빈 켈비의 장례식에서 낭독할 송덕문을 작성한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에도 원고는 백지로 남아있을 뿐이다. 친구의 죽음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멋진 인생>의 주인공처럼 크리스마스이브에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톰은 기억하는 모든 순간 해맑고 밝았던 친구가 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한참을 머리 싸매던 톰은 그 놓쳐버린 순간을 찾기 위해, 앨빈과의 첫 만남부터 하나하나 짚어 나간다.
 극적인 반전이나 액션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 극을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공연이 전하는 위로 때문이다. 톰은 일곱 살 때부터 알아 왔던 오랜 친구로서 앨빈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음을 자책하며, 자신이 앨빈에게 잘못했던 순간만을 회상한다. 돈과 경력에 집중하며 글의 영감이었던 옛 친구를 외면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는 톰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나에게도 소중한 인연을 놓쳐 버렸던 일들이 떠오르곤 했다. 톰은 무대 위에서, 나는 객석에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때, 앨빈은 다정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건넸다. “야, 괜찮아.” 그 한 마디가 담고 있는 위로는 무거웠다. 흘려보낸 시간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놓쳐버린 순간이 무엇인지 들추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함께 지낸 시간을 이야기로 적어내 숨을 불어넣어 주면 된다고. 내가 나에게 남겼던 상처가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본 이후 나의 마음가짐이나 생활이 기적처럼 바뀐 것은 아니다. 지난 실수들에 괴로워하고, 묵힌 후회가 새어 나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앨빈이 튀어나와 중요한 건 내가 불어넣는 삶의 이야기라며 다독여주었다. 눈이 내리고 입김이 나오는 겨울이면 톰과 앨빈이 생각난다. 요 며칠 가을이 왔기 때문인지 바람이 선선해졌다. 곧 다가올 이번 겨울에도 둘의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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