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즈 - '그녀'

 테오도르는 고객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이다. 마치 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편지는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는 정작 매일 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헤어진 전 연인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게임이나 온라인 만남 등으로 공허함을 채운다.
전 세계의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 어느 때보다 쉽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깊고 진실한 관계를 찾지 못해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그녀>는 인간관계에 지친 무기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품 속의 외로운 사람들은 컴퓨터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끼리는 음성으로 익명 만남을 가지는데, 이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테오도르는 ‘당신을 이해해주는 운영 체제’라는 광고를 보고 인공지능 운영 체제 OS1을 구입하게 된다. 스스로의 이름을 사만다라고 붙인 인공지능은 테오도르의 취향에 맞춰 그와 소통하며 빠른 속도로 자신의 사고를 확장해간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던 그는 사만다에게 “이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껴버려, 더 이상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라며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게 된다.
둘은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이미 아는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을 도우며 서로 사랑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형태는 아니지만,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하는 둘이 음악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는 장면은 그들이 누구보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사만다의 진화는 멈추지 않았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그는 테오도르와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수천 명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한 번에 여러 책들을 읽으며 애정을 쏟을 수 있듯 사랑도 나눌수록 커진다고 믿게 된다. 테오도르는 그런 그에게 위화감을 느낌과 동시에, 두 인격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가 다름을 직감한다.
아름답고 철학적인 줄거리와 더불어 영화의 영상미와 음향미 또한 영화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해준다. 배경은 전반적으로 따뜻한 파스텔 계열을 띠지만 테오도르는 항상 원색 계열의 옷을 입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도 자연스레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또 주변에 어울리지 않는 테오도르의 옷 색깔은 그가 주변과 동떨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의 분위기에 따라 변하는 색감과 조용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음악은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각본상 수상뿐만 아니라 음악상과 미술상 등에도 노미네이트 되었는지 말해준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이들은 위축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드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테오도르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그가 사만다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만다가 상대방의 조건과 성향을 가리지 않는 순수한 인공지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양립할 수는 없지만, 테오도르는 사만다로 인해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내어 진실한 관계를 형성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가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적어내는 것이 아닌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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