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내 생일, 말티즈 믹스 한 마리가 예고 없이 우리 가족이 되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태어난 강아지 중 한 마리를 외삼촌이 데려온 것이다. (생명을 주고받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지만) 그 아이는 내 생일 선물도 아니었던 것이, 외삼촌은 정확한 내 생일을 몰랐고 당시의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더니 “생일 축하해! 그리고 우리 집에 강아지 왔다!”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외할머니께서 강아지 눈이 샛별처럼 빛난다고 하셔서, 이름은 샛별이가 되었다.
나는 동물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딱히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새 식구에 대한 큰 감흥은 없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강아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갈 때마다 부쩍 자라 내가 의식할 즈음엔 이미 성견이 되어있었다. 밥과 간식을 주거나 훈련을 시키는 건 엄마 담당이었고, 동생은 씻기고 미용을 시켰으며 아빠는 매일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내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는 강아지의 털을 어쩌다 한 번 쓰다듬는 게 다였다.
그런데도 샛별이는 다른 가족들보다 나를 유난히 따랐다. 동생 옆에 있다가도 내가 보이면 냅다 달려왔으며, 내가 샤워를 하러 가면 화장실 앞 내 옷가지 위에 앉아 샤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몇 시간이고 현관문 앞에 앉아 날 기다렸고, 내가 집 앞에 오면 문을 긁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사랑을 가득 담은 포옹보다 무관심하지만 차분한 손길이 좋았던 걸까? 동생은 그런 샛별이에게 배신자라며 속상해했지만, 나는 내심 그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게 행복했다.
다 같이 산책을 나가면 항상 앞뒤를 살피며 모두가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본인이 가족들을 지키고 있다는 것처럼 뽐내며 걸을 때는 자기가 뭐라고 우리를 지킨다고 생각하는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잠꼬대하거나 기지개를 켜고 조그만 코로 재채기를 하는 모습, 나에게 안겨있을 때 느껴지는 강아지의 무게와 온기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왜 이 매력을 여태 몰랐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지금도 샛별이는 내 옆에 몸을 붙이고 자는 중이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조그만 몸과 숨소리가 느껴진다. 가끔 나의 일생에 비해 샛별이의 평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 아픈 순간은 언젠간 다가오겠지만, 샛별이가 살아있는 동안 그 삶이 나와 가족들로 인해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순간들로만 가득 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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