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지니아 울프의 <자신만의 방>을 읽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개인이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구나.
그 안에 무엇을 채울지 안다는 것. 이미 정형된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변화시킬 줄 안다는 것. 눈을 감고 그 공간을 자신의 취향으로 가득 메워 키득거릴 줄 안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잣대로 삼을 수 있는 자신의 정돈된 모습과, 현실에 부딪힐 모든 가능성을 더해, 그것을 실상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자신만의 집’을 떠올려 보십시오. 집의 구성요소는 다양하고 복합적입니다. 건축양식, 위치한 곳, 평수, 방의 개수, 내부 인테리어, 생활동선, 가구 배치, 동거인의 유무, 근처 상권, 창밖으로 보이는 이미지 등, 모든 것이 집을 이루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과감한 시도에는 오롯한 본인만이 절대적인 역할로 남습니다. 그리고 절대자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홀로 모든 것을 해내야만 하죠. 집의 평수와 건축양식 (거시적인 것)에서부터 서재에 난 창의 채광정도(미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요소들을 총망라하는 결정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것이든 본인을 기준으로 판단해야만 합니다. 나의 선호는 반영되고 불호는 폐기되죠. 그렇다면 ‘자신만의 집’을 완벽하게 짓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나’를 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를 안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순간이 빚어낸 인간은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스스로도 본인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한 사물을 제시했을 때 그것이 ‘나’의 마음에 드는지, 아니라면 ‘나’는 어떤 것을 원하는지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들 중 몇이나 될까요. 
홀로 무(無)의 공간에 덩그러니 앉아 구상하다보면 생각보다 할 일이 많습니다. 물론 끝까지 가도 완성된 건축이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그 과정 자체가 유의미합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다시 둘러보고 약간씩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나를 품어줄 수 있는 나만의 완벽한 집, 무생의 공간에게 완벽한 자아의 투영을 기대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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