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가작> 이장민 학우(무학과 학사과정) 그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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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가작> 이장민 학우(무학과 학사과정) 그가 지금
  • 선주호 기자
  • 승인 2013.02.17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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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금

이장민 / 필명 천상의 눈

 

그가 지금 있다. 다만, 있다.

그리고 그런 병도 있다고 한다.

가끔 별들을 보며 이유 없이 눈물짓는 사람도 있듯이, 나는 밤마다 들리는 고체와 고체의 조용한 충돌음에 눈물이 난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리는 그 밤의 소리도, 그것에 눈물을 흘리는 나도 모두 병이라고 한다. 의사가 말하길,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했다. 밤의 여신이 내려앉는 저녁 즈음부터 나의 귀에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소리가 느껴진다. 탁. 탁. 탁.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똑같은 템포로 그것은 내가 잠들 때까지 계속된다. 의식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가만히 듣다보면 눈물이 난다. 나의 병은 그런 병이었고, 그런 병도 있다고 한다. 사실은 병이 아니건만, 타인들은 그것이 병이라고 하였다.
고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럴 수 없으리라. 고칠 수 있다고 하여도 나는 고치지 않으리라. 나는 오늘도 그녀 앞에 앉아 체스판과 함께 울고 있었다. 나는 잊지 않고자 한다. 잊을 수도 있다.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나 큰 잘못을 하고 있는 나를 과연 내 스스로가 용서하고 잊을 수 있을까. 아니,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녁이 오는 땅 위에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시작이 언제였을까. 나는 교양 과제를 쓰던 그 때가 시작이었을까. 내가 진실을 알게되는 그 모든 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까. 아무렴 어떨까. 애초에 알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어떻든 상관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나는 시간의, 정보의 태엽을 감는다. 뒤돌아서 생각해본다.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 사람들은 영원한 것을 원하고, 어떻게 보면 프로그램은 불멸하다. 프로그램들은 코드와 언어로 만들어지는데, 프로그램이 실행되면 그 코드는 곧 현실이 되고 행동하게 된다. 그것은 현실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것이 정지한 것인지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는 누가 인지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내부의 사람만이 인지가 가능한 것인가. 내부의 현실은 언제나 코드 안에 내제되어 있고 언제나 영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영원ㅎ ]
자판이 끊임없이 움직이다가 멈춘다. 글을 쓰다보면 대뜸 간단한 문장에 말이 막히기도 한다. 생각과 손가락의 움직임이 분리되어 있었던 걸까. 자신의 전공과 특수한 철학을 나름대로 찾아 써야 하는 교양 과제는 미묘하게 방향이 엇나가 버렸다. 자기 의견을 확고하게 적어야할 텐데, 질문만 스스로 던지고 있으니 좋은 글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답답함에 바깥으로 나선다.
바깥은 어두웠고, 나에게는 하늘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둠에 묻히고 있었다. 겨울바람에 가을의 잎들은 떨어진다. 마치 낙화다. 하늘은 잿빛 어둠으로 시야를 메운다. 찢어진 구름이 거미줄처럼 엉켜있다. 다시금 바람이 불고 낙엽들은 저 하늘의 거미줄을 아랑곳 않고 추락한다. 다시 낙화다. 내 주변에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연 프로그램은 그 사이에서 영원할 수 있을까. 세상조차 영원하지 못할텐데, 그 세상의 한낱 작은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이 과연 영원할 수 있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런 의미 없는 문답이었다. 나는 돌아가서 잠에 들었다. 그때의 기억은 끝난다. 기억? 정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미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알고 있었던 것일까.

기억, 아니 정보의 태엽을 다시 감는다. 나는 그 날을 다시 떠올린다. 마지막을 떠올린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옥상의 바람이 차가웠다, 이전 기억의, 글을 쓰던 새벽과도 같은 차가움. 그리고 이 차가움은 내가 잠든 물속과 같은 차가움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녀는 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지나치게 큰 환자복이 안타까웠다.
진실은 다른 곳에 있어. 혹시 그런 병이 있다는 거 알고 있니?
나지막한 그녀의 말과 표정에 나는 까닭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무슨 병?
당사자에게는 환상이 진실로 보이는 병. 루이체 치매라고. 그런 게 있단다. 음...이건 내가 아는 애 이야긴데, 그 병에 걸린 아이가 있었어. 어릴 때는 그 아이는 잘 지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를 겪어 가며 바뀌어버렸단다. 원하던 대학교도 바깥도 다닐 수가 없었어.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유없는 슬픔에 나는 당황했다. 내가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아이로 돌아가 버렸고, 아이는 어릴 적 읽었던 피터팬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지. 부모님은 늘 웬디와 피터 역할을 해야 했고, 늘 힘들었단다. 아이에게 있어서 온 집안은 피터팬의 세계였고, 부모님은 아이의 상상대로 피터팬과 웬디여야 했으니까.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서 아플 때, 병원에 가도 아이가 아픈 걸 고칠 수가 없었던 것이었지. 상상 속에서 아픈 걸 병원에서 고칠 수는 없었으니. 그래서 아이의 아빠는 체스판에 마법을 건다고 했어. 아이가 아픈 건 아이의 상상이니까, 그걸 고치는 것도 아이의 상상일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 아이는 체스말이 체스판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 늘 기운을 차렸데. 아이에게는 피터팬이 선물해준 마법의 체스판이었으니까. 부모님의 사랑이 감동적이지 않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짓고 있었다. 그것은 까닭 없는 눈물이었을까. 이유가 있었다면 어떤 눈물이었을까. 슬픔일까.
그런데 그 아이가 긴 잠에 빠져 버렸어. 아이는 자신의 세계에서 물에 빠져버렸고, 피터팬도 웬디도 도와주지 못했어. 아이는 물에 빠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세계에서 죽었고, 현실에서는 잠들어버렸지. 아무리 아빠가, 피터팬이 체스판을 두드려도 그 아이는 일어나지 못했어. 아이에게 있어서는 병이 아니라 죽음이었으니까. 부모님은 너무나 슬퍼했지. 아이의 상상으로 아이가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니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이 약간 멈춘 그 사이에는 바람소리가 채워진다. 약간은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친다. 머리카락이 날린다. 눈물도 날리는 것 같았다. 내가 진실을 알게된 지점이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기억을 빨리 되감았다고 깨닫고 다시 돌아간다.

정보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는 환자였다. 늘 그녀는 병원에 누워있었다. 처음 만난 곳은 병원의 장기 입원환자들이 있던 곳, 봉사 활동할 곳을 찾기 위해 갔던 그 병원에 그녀가 있었다.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그곳에서 그녀는 혼자 이질감을 보이며 있었다. 생과 사의 기로가 갈리는 장기 입원환자실에서 그녀가 유독 보였던 까닭은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식물인간이라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죽음과 병마가 일으키는 소리 없는 전쟁이 가득하여 고요함마저도 비명을 지르는 아수라 속에 그녀는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였다. 나는 까닭모를 연민과 그녀에게 생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익숙했다. 왜인지는 스스로 되물어 봐도 알 수 없었고, 그것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하나의 감정이었다.
나는 바로 그녀를 간호하는 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보호자는 따로 있지만 바빠서 거의 오지 못한다고 하여서 내가 보호자들의 얼굴을 볼 일은 없었다. 내가 할 일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생명 유지 장치에 이상이 생기는 걸 잘 봐야하고, 검사를 할 때 불안정해지는 그녀의 상태를 위해 체스말을 계속 만지작거려야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체스말과 체스판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 안정을 찾았다. 다른 어떤 비슷한 소리도 허용하지 않았고, 그 이외의 소리는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말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소리만이 그녀에게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잠들 때도 체스의 소리를 원했다. 식물인간으로 인간다움이 결여되어 있던 그녀에게 있어서 체스의 소리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장치 같았다. 그 인위적인, 딱딱한 운율이 그녀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 것일까. 간호사들에게 물어봐도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녀가 그랬는지 나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식물인간인 그녀가 인지를 할 수 있는 인간에게만 의미가 있는 소리이자 행위인 체스에 안정화 된다는 사실. 그 사실이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더 안쓰러웠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쩐지 익숙하였다. 매우 익숙하였다.

진실을 알게 된 것은 그날부터였다. 이전 기억으로부터 조금 더 지난 시간. 병원에 찾아갔던 어느 날, 그녀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장기 환자 병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하늘하늘 걸어 나오는 그녀를 보며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의아했고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살피는 그녀와 똑같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다. 식물인간이 며칠 못 본 사이에 정상이 되어 돌아다닌다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은 일이었고, 나는 다른 합리적인 가설을 생각했다. 쌍둥이 형제인가? 아니면 생판 다른 사람인가?
내가 어떤 가설을 새울지 고민할 새도 없이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그녀의 첫마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렇구나. 상상보다 나긋나긋하네.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이 내 얼굴에도 비췄던 것일까, 그녀는 다시 말했다.
나는 등장인물이 아니라서 네 앞에 나타나면 안 되는데, 미안해.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의 말은 왠지 허공에 던지는 말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산에 던져서 메아리를 바라듯이 그녀는 말했다. 등장인물은 무엇이며, 나타나면 안 된다는 것은 또 무엇이며, 미안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너는 아무것도 모를 텐데. 내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드러날 텐데. 미안해.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
그녀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보였다. 나는 말 한마디 던질 수가 없었다. 슬픈 그녀의 표정과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아니, 침묵 당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가 스스로의 입을 묶어 버린 것 같았다.
참 이상하지. 버그, 프로그램의 이상도 운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자유의지를 가진 내가 만들어졌을까. 바깥의 의지일까.
그녀는 더욱 알 수 없는 말만을 한다. 내가 말할 틈을 주지 않았고, 말을 할 생각, 그 생각은 정리가 되지도 않았다.
너는 누구니?
간신히 내 입에서 나온 한마디. 참으로 멍청하고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곧 깨달았지만 이미 던진 질문이 담아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웃는다. 왜 그렇게 웃고 있을까.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왜일까.
네가 존재하는 이유지만,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
이건 꿈이야? 어떻게 네가 걸어 다니고 있는 거야?
늘 세상은 꿈과 같았지. 그러니까 안 될 건 없는 거야. 사람과 프로그램은 뭐든 할 수 있지.
그게 무슨 의미야?
당장은 몰라도 괜찮아.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나의 귀를 휘감는다. 의미 없는 문답이 이렇게도 귀에 잘 닿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녀의 말을 천천히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모르는 것이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기계의 언어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건 현실이 되겠지. 그럼 그 매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프로그램은 영원한 법. 알기 쉬운 이야기야. 나는 그 중 이상으로 생성되고 어떤 형태는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 존재. 영원 속에서 영원할 수 없는 나는 아마 곧 없어지겠지. 특정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나는 있으면 안 되니까. 그녀를 공감할 수는 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일 뿐이거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온다.
외부의 시간과 다른 내부의 시간. 영원하다고 할 수 있을 그 시간에 무엇이 이루어지는 걸까, 내부의 사람들은 어찌되든 관심도 없는 외부의 일인데. 과학이 발전해서 아무리 프로그램이 사람의 두뇌에 개입한다고 해도, 진실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난 잘 모르겠어. 너의 세계에 이렇게 존재하는 나는 정말 그녀일까. 기억과 감정만 공감하는 버그인 내가 진짜일까.
그녀는 잠깐 쉬고 말을 잇는다.
결국 아무 의미 없는데. 이렇게 생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다 거짓인데. 바깥은 어째서 그토록 영원을 갈구하는 걸까. 영원이란 건 의미 없는 정지인데도. 알면서도 왜 그럴까?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여 나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그 사이 그녀는 할 말을 마쳤는지 작별 인사를 한다.
다음에 또 만나, 다음이 마지막이겠지만.
그녀는 하늘하늘 떠나갔다. 붙잡아서 더 물어봐야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몇 분 동안 붙박혀 서있었다. 이전의 질문과 대답을 반복해서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녀는 왜 그랬던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그녀를 붙잡지 않았을까. 붙잡아서라도 더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을 텐데, 발에 못이 박힌 듯, 입에 재갈이 물린 듯, 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돌아갔다.

다시 기억을 조금 뒤로 보낸다. 며칠 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그녀는 왔다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그리고 다시 잊고 있었다. 멀쩡히 걸어 다니던 또 다른 그녀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헛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다른 비상식적인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했다. 나는 그녀가 익숙했고, 그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밤에 침대에 누워 나만의 소리를 듣고 있을 때에도 그녀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떠올랐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랬다. 다시 조금 이동한다.

며칠 뒤, 다시 찾았던 병원 입구에는 그녀가 있었다. 나는 왠지 기뻤다. 비상식적인 그녀를 오히려 보고 싶어 했다니. 그것도 참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조금 미친거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의 감정 변화를 그녀가 알고 있을리도 없는데 나는 왜 그녀가 알고 있지 않나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옥상으로 향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출입금지라는 말이 빨간 글씨로 적혀있었고, 당연히 열리지 않았다. 철컥철컥.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내가 돌렸을 때는 돌아가지 않던 문고리가 그녀가 돌리자 열렸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앞장서는 그녀를 따라 옥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그 눈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 전조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전에 내가 떠올렸던 이야기. 다시금 듣는다. 루이체 치매에 걸린 아이에 대한 이야기, 그 아이를 위한 부모님의 노력. 그리고 슬픈 결말.
무슨 의도로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둘의 이야기는 그렇게 거리가 멀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가까이 가고 싶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일까.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 어려울 거야.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을 꺼내고 휙 한 바퀴 돈다. 검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눈 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본 적도 없었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느꼈다.
혹시 내가 익숙하니?
그녀가 내 마음을 읽었던 것일까. 마법 같았다.
내 얼굴이 익숙할 거야. 그건 당연한 일이니까.
당연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저녁이 가까워 오는 옥상, 우리에겐 잠깐의 침묵이 생겼다. 그리고 이 시간은 하늘에서 나만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내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
저녁이 가까워 오네. 다시 피터팬의 소리, 하늘의 소리가 들리겠구나. 탁. 탁. 탁. 나에겐 들리지 않지만 너는 듣고 있겠지. 아마 영원히 듣게 되겠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은 피터팬의 소리. 참으로 바보 같은 두 사람이야. 남편과 아내가 저렇게 닮을 수 있을까.
머리가 멍해진다. 어떻게 그녀는 나의 이상한 병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피터팬의 소리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거짓된 영원을 원한 여자의 산물일 뿐이야. 자유의지를 창조하고선 빼앗아 버리려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나도 결국 웬디인데. 나도 그녀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난 그저 바깥의 바람과 프로그램의 변화에 따라 이렇게 되었을 뿐인데. 미안해, 나는 진실을 너에게 이야기해줘야 될 것 같네. 괴롭더라도 알아야만 하는 그것, 이곳은 거짓된 영원. 깨지지 않을 프로그램. 그리고 그 안의 자유의지를 가진 버그. 그래도 미워하지 말아줘. 나는, 나는 가짜지만 그래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너에게 한번이라도 이름을 불려보고 싶었으니까. 마음은 진짜니까. 물론 그건 어렵겠지만. 가혹한 진실만은 남겠지만, 가짜는 이만 퇴장해야 될 것 같네. 아마 진짜 웬디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거야. 그리고 프로그래밍된 세계 안에서라도 평범하게 지내는 너를 보고 싶었겠지. 피터팬도 똑같았겠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나도, 그녀도 어떤 말을 하려다가 멈춘다. 이해할 수 없었던 슬픔이었고, 보이는 것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는 나에게서 말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녀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왜 그렇게 슬픈 미소를 짓고 있을까.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춤을 춘다. 빙글빙글 라인 댄스가 되어 머릿속을 휘젓는다. 내면의 의식을 뒤흔드는 정보의 춤. 그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저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알고 있다. 그리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알 수가 없다. 머리가 아파온다. 그녀는 매우 슬픈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나는 그 때 저 얼굴이 누구의 얼굴인지 깨달았다.
안녕, 내 아들.
머릿속이 산산조각난다. 아들? 아들? 누가? 아들? 나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머릿속이 황폐화된다. 표백한 것처럼 새하얗게 덧칠되고 어떤 의미도 남지 않는다. 단 한가지의 단어만이 남는다. 아들, 아들. 나는 왜 몰랐던가. 그녀는 그리고선 하늘하늘 걸어 옥상의 문을 연다. 문을 열고서 그 안으로 사라진다. 문이 닫힌다. 나는 뒤늦게 행동한다. 늦었다. 나는 울면서 달려가 문을 거칠게 연다. 그녀는 없다. 정해진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그녀는 제거된다. 더 이상 없다. 그토록 나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그녀는 다시 돌아가 버렸다. 제거되어버렸다. 말을 할 수 있던 그녀는 사라지고, 단순한 등장인물로 있는 말할 수 없는 웬디만이 남아있다. 있어서는 안 되었기에. 나는 차가운 옥상 위에 주저앉아서 소리 없이 운다. 마냥 울었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차가운 바람이 진실처럼 나의 볼에 달라붙는다. 슬픔이 더해진다. 이 바람은 바깥의 바람일까. 내가 있던 피터팬 세계의 바람일까. 어째서 바람조차도 나를 눈물짓게 하는 것인가. 나는 또 다른 그녀가 누워있을 병실로 향한다.
다리의 힘은 풀려 후들거리고 진실을 다시 깨달은 나의 머리는 비명을 지른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리라. 그녀가 누워있다.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녀의 얼굴은 웬디의 얼굴이라는 것을. 그렇게나 그녀, 웬디는 내가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란 것일까. 그 생각이 얼마나 깊었으면 이 영원한 림보, 프로그램 안에서조차 버그가 되어 나타났던 것일까. 병실에는 웬디가 누워있었다. 버그와 같은 그녀가 누워있었다. 프로그램의 등장인물로 누워있다. 아무 말 할 수 없지만 다만 존재한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를 갈구했던 것일까. 인간이라는 종족의 피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 얼굴에 더더욱 나는 슬퍼진다. 병원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지만, 멈추지 않는다. 다른 존재는 이 세계에서 의미가 없다. 그들은 정해진 대로, 만들어진 대로 행동할 뿐이다. 변하는 것은 오직 나.
진실 앞에서 나는 더더욱 눈물을 흘린다.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가 없었다. 나처럼 체스 소리에 늘 잠에 드는 그녀는 이 거짓된 세계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긴 잠 속에서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바깥의 그녀는 체스 소리에 잠드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어째서 피터팬의 세계에서 죽어버린, 진실된 곳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린, 프로그램의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나를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았나. 어떻게 그렇게 나를 붙잡을 수 있는가. 치매에 걸린 나를 그렇게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일까. 나는 알 수 없다. 혼자의 세계에 있는 나는 알 수 없다. 그녀의 머리맡에서 목 놓아 울며 나는 체스말을 잡는다. 울음에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을 준다. 나는 의미없는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자 한다. 나이트가 혼자 체스판 위에서 부딪힌다. 탁. 탁. 탁. 저녁이 가까워 오는 바깥. 나의 귀에는 또 다른 체스 소리가 들린다. 탁. 탁. 탁. 저게 마법의 체스판이구나. 나를 포기하지 않은 피터팬의 소리구나. 내가 죽을 때까지 들려올 사랑의 소리구나. 나는 저 소리가 들리는 창문 바깥을 보지 못한다. 마법의 소리가 너무나도 눈부셔서 그 마법에 비해 너무 초라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마법의 소리가 눈이 부셔 병실의 침대에 고개를 숙이고 울어버린다. 탁. 탁. 탁. 여전히 그것은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병실 안에 있다. 그녀의 옆에 있다. 이곳이, 우리에겐 현실이다. 적어도 눈물 흘리면서도 기쁜 현실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힘든 현실이다. 밖에선 다시금 사랑의, 그리고 마법의 소리가 들리고, 내 눈 앞에는 웬디가 잠들어 있다.
기억, 그리고 정보의 태엽을 되감으며 다시 눈물이 흐른다. 평생 이것을 반복하리라. 잊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이걸 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두 사람을 위해 영원히 반복하리라. 현실에서, 나의 치매 속에서, 그리고 프로그래밍 된 세계 안에서 나를 잊지 않은 두 사람을 위해서.
나는 다시 울음이 터진다. 소리 지른다.
어머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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