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대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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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대덕을 만나다
  • 유근정 기자
  • 승인 2009.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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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과학자 채연석 멘토

대덕의 정상급 연구자, 벤처 CEO와 우리 학교 학우와의 교류를 위해 문화기 술대학원(CT)에서 기획하고 본지와 대덕넷에서 주관한 멘토링 프로그램, <카이스트, 대덕을 만나다>의 첫 번째 멘토는‘로켓 박사’채연석 박사다. 채박사는 오는 7월 말 발사 예정인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KSLV-Ⅰ개발의 주역이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역임한 정상급 로켓 과학자다.

충실하고 현명한 조언자 또는 스승을 의미하는‘멘토’를 얻고자 하는 학생들의 열띤 반응 가운데 선발된 박대종 학우 (항공우주공학전공 석사과정), 서대반 학우 (항공우주공학전공 석사과정), 안성용 학우 (항공우주공학전공 박사과정)가 채연석 멘토를 만나려고 4월 15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찾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로비로 멘티들을 맞으러 나온 채연석 멘토의 손에는 멘티들의 자기소개서 파일이 들려 있었다. 사진과 얼굴을 확인하며 일일이 악수를 건네던 채 멘토가 “사진만 보면 못 알아보겠어”라며 농담을 건네자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때 복원되어 발사까지 마친 신기전 모형 앞에서 채 멘토는‘할아버지의 과학’을 소개했다. 청나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역을 통해 번 돈으로 사들인 영국산 군함의 덕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 맞은편에는 KSR-Ⅲ가 놓여 있었다. 채 멘토는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과학자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며 KSR-Ⅲ에 얽힌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남들이 만든 길은 얻을 것도, 재미도 없다. 부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바란다

1990년대 초부터 추진하고 있던 채연석 멘토의 액체 추진제 로켓 연구는, IMF가 닥치고 예산이 축소되며 난항을 겪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우리나라 우주 개발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채 멘토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 진행했다. 그러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자, 25억 원으로 축소되었던 연간 예산이 200억 원으로 뛰었다. 오는 7월 발사를 앞둔 KSLV-Ⅰ 역시 채 멘토가 미래를 내다보고 소신 있게 추진했던 KSR-Ⅲ 연구의 연장선에 있다.

채연석 멘토는 이 모든 것이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고 했던 목표에 백지상태에서 도전하여 거둔 성과라고 설명하며, “요즘은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성공하기 쉬운 일만 하려 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로 가면 시쳇말로 주워 먹을 것도, 재미도 별로 없다. 부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바란다”라며 멘티들을 격려했다.

지금은 무엇에 도전하고 있느냐는 멘티의 질문에 채연석 멘토는“요새는 뭘 도전할까 생각하는 것이 도전”이라는 재치 있는 말로 답했다. 바쁜 가운데 1년에 최소한 한 권씩은 책을 낼 수 있었던 것 역시, 평소에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들어온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써온 원고가 쌓인 덕분이라는 말에 멘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꿈을 잊지 않는다면 그 꿈은 이루어진다

 연석 멘토는 고대 로켓을 복원하고 액체 로켓의 기반을 닦은 것 두 가지를 자신이 한 가장 큰 일로 꼽으며, 한 가지에 끈기 있게 집중할 것을 조언했다. 처음에는 설계도 한 장 남아 있지 않던 최무선의 화약 무기를 30년 동안 팠는데, 언젠가부터 조선 초기의 화기를 보니 고려 말 최무선의 화기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10층에 있는 채연석 멘토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화약 무기를 들여다보며 ‘최무선의 총은 어떻게 생겼을까?’하던 관심이 운명처럼 빛을 발했던 순간을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 관련 직책을 맡고 있던 그에게 검찰이 한 압수품의 감정을 의뢰했다. 매매 단계에서 진품 시비가 일어서 검찰에까지 오게된 고려시대 총이었다. 이는 결국 진품으로 판정되었고, 이를 통해 멘토는 꿈에 그리던 옛 화기를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꿈을 잊지 않는다면 그 꿈은 이루어지고,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국내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을 무렵 찾아뵌 연사님이 채연석 멘토에게 인생의 다음 목표를 물으셨다고 한다. “미국에 유학 가서 로켓을 연구하겠습니다”“그게 안되면 어찌할 텐가?”“그게 이루어지기 전에는 그 다음 계획은 없습니다. 잠수복을 입고 걸어서라도 태평양을 건너고 말겠습니다” 그제야 연사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 넌 해내겠구나”수십 년이 지난 지금, 채 멘토는 그때 의 열정을 멘티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좋은 대우를 보장했던 대학 교수직을 박차고 미국 유학을 떠난 것도, NASA에서의 일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 한국형 로켓 연구에 매진한 것도 꿈이 명확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대학 때 신기전 연구에 매진했던 것도 우리 로켓의 뿌리를 찾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고, 유학도 우리 로켓의 발전을 위해서 택한 길이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어 멘티들에게 건넨 충고는, 로켓을 만들고자 한다면 로켓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더욱 안정된 교직을 선호하곤 하지만 실제로 로켓을 만들 수 있는 현장은 대학이 아닌 연구소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제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멘토의 말에 세 멘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실제로 하는 곳이 어디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한 멘티가 우주인 이소연 씨의 친필 사인이 새겨진 사진에 호기심을 갖자 멘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었다. 벽장을 가득 채운 상패와 상장, 로켓 모형과 옛 화기 모형, 금고처럼 육중하게 설치된 서재와 추억이 담긴 책들을 둘러보며 우주인 이소연 씨가 탑승한 소유스 TMA-12 발사 현장에서의 일화나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사연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래의 로켓에 대한 멘티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재사용 우주 왕복선은 유지관리 비용의 문제가발생하므로 결국은 어떻게 하면 저렴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KSR-Ⅲ 연구개발을 통해 느낀 아쉬움으로 한 번에 두 개의 프로젝트를 병행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의 제약을 꼽기도 했다.

우주개발과 관련된 연구를 하다보니 늘 인간이 왜 이 지구에 살게 됐는지가 궁금했다는 채연석 멘토는, 종교나 철학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영광이라고 했다. 따라서‘정성스럽게’살아야 하며, 후손과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남길 수 있게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말을 맺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행운이자 영광 ‘정성스럽게’살아가도록 노력해라

5월 6일로 다음 약속을 잡고, 멘티들에게 한 마디씩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안성용 멘티는“다음엔 수박과 함께 찾아뵙겠다”라며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서대반 멘티와 박대종 멘티는 입을 모아“속으로 뜨끔했던 말씀이 많았다. 솔직히 이제껏 쉽게 살려 했다. 쉽게 공부하고 쉬운 논문을 써서 쉽게 졸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라며 오늘을 잊지 않고 앞으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오는 7월, KSLV-Ⅰ이 발사된다. 이와 함께, 로켓과학자의 꿈을 품은 세 멘티들의 열정도 높이 날아오르길 기대한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 이윤경

정리 /유근정 기자

사진 /대덕넷 임은희 기자

 

다음으로 만나게 될 멘토는 성공한 여성 과학자로 손꼽히는 KISTI 정책연구실장 한선화 박사입니다. 4월 28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만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멘티로 지원하고 싶은 학우는 간단한 자기소개, 지원 동기, 전공과 연락처를 적어 25일 오후 1시까지 slyf@naver.com(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 이윤경)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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