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및뇌공학과 정기훈 교수팀] 유리 기둥이 늘어선 3차원 구조로 열점 개수를 증대시킬 수 있어

우리 학교 바이오및뇌공학과 정기훈 교수팀이 3차원 구조로 은 나노 섬(Nano Island)을 배열해 나노 플라즈모닉 현상을 강화한 바이오칩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 5월 호의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분자의 결합을 분석하는 라만 분광법

크고 작은 공들을 다양한 용수철로 연결한 뒤, 일정한 힘으로 때리면 각각의 용수철이 서로 다른 진동수로 흔들린다. 이와 같은 원리로, 분자에 강한 빛을 쬐면 원자 간 결합 길이와 강도에 따라 분광 스펙트럼의 피크가 원래 주파수에서 일정 주파수만큼 이동해 나타난다. 이를 분석하면 분자 내에 어떤 원자끼리 어떤 결합을 가졌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이를 라만 분광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유리 위에 분자를 올려놓고 레이저를 쪼여 나오는 라만 분광 신호의 피크는 무척 작았다. 극히 일부 광자만 분자에 영향을 받아 신호를 내기 때문이다. 때문에 라만 분광법으로 분자를 분석하려면 1분 정도 측정해야 했다.

나노 플라즈몬 효과로 검출 신호 강화

하지만 유리에 은을 얇게 코팅해서 라만 분광법을 해보면 신호가 훨씬 더 크게 측정된다. 덕분에 1초 정도만 측정해도 충분히 피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표면 강화 라만 분광법(Surface Enhanced Raman Spectroscopy)이라고 한다.

은이 얇게 코팅되었을 때 라만 분광 신호가 크게 측정되는 것은 나노 플라즈몬 효과 때문이다. 금속의 자유전자가 전자기파 신호를 받으면 전자기파의 전기장에 의해 함께 진동하게 되는데, 전자기파와 전자의 주파수가 맞으면 공명 현상이 일어나 전자기파가 집광된다. 이 현상을 나노 플라즈몬 효과라고 하며, 이때 공명하는 주파수는 금속의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금속의 모양과 구조에 따라 전자의 진동이 한정되기 때문이다.

RIE로 3차원 구조 형성해

정 교수팀은 은에 열을 가해 유리 기판에 짧은 시간 동안 얇게 증기 증착시켰다. 나노 단위 두께의 은 박막은 녹는점이 낮아, 유리 기판을 가열하면 쉽게 녹는다. 녹은 은은 표면장력에 의해 군데군데 뭉쳐 나노 섬을 형성한다. 초기에 증기 증착시킨 은의 두께로 나노 섬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a)에서 은 나노 섬으로 유리 기둥이 될 부분을 덮고 (b)RIE로 유리를 깎아낸 뒤 은을 제거한 다음 (c)다시 은을 증착하면 완성된다 /정기훈 교수 제공

이 유리 기판에서 은으로 덮이지 않은 부분을 반응성 이온 식각법으로 깎아내면 유리 기둥이 만들어진다. 반응성 이온 식각법은 유리와 반응을 잘 하는 화학 물질을 플라즈마로 이온화시켜 전기장을 걸어서 일정한 방향으로 시료를 깎는 기법이다. 이 방법으로 유리 기둥만을 남기고 기판을 깎은 후 은을 제거한 뒤 다시 은을 증기 증착하면, 깎이지 않은 부분에는 큰 은 나노 섬이 형성되고 기둥 옆면에는 작은 은 나노 섬이 형성된다. 기둥의 옆면은 기울기가 가파르므로 연속적인 박막으로 증착되지 않는다.

3차원 구조로 향상된 성능

이렇게 형성된 구조는 나노 섬들에 의해 특정 파장의 전자기파를 집광한다. 이와는 별도로, 나노 섬들이 여러 개가 늘어서 있으면 나노 섬 사이의 틈에 열점(Hot spot)이 생기는데, 이 열점에서는 각 나노 섬에 의해 집광되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전자기파가 집광된다. 따라서 열점이 많을수록 전자기파의 강도가 세지는데, 정 교수팀이 제작한 바이오칩은 3차원 구조 덕분에 열점이 훨씬 많다. 따라서 기존의 바이오칩에 비해 훨씬 강한 신호를 검출할 수 있다. 정 교수팀은 이 칩이 전자기파를 100배, 검출되는 분광 신호는 10,000배 까지 강화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를 이용해 수십 나노몰 정도의 DNA 시료에서 염기 네 종류를 1초 안에 구분해 냈다. 기존에는 수십에서 수백 마이크로몰 농도의 DNA 시료밖에 검출할 수 없었다.

또한, 정 교수팀이 제작한 바이오칩은 유리를 기판으로 사용해 투명하다는 장점과 대량 생산에 응용할 수 있는 공정을 이용해 제작되었다는 강점이 있다. 기존에는 실리콘 기판을 활용해 불투명한데다, 넓은 면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없는 비싼 공정을 이용했다. 따라서 이 기술을 이용하면 측정하기 쉬운 바이오칩을 저렴하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 교수는 “기존에는 신약의 효과를 검증하고자 형광물질을 많이 사용했지만 바이오칩을 이용하면 더욱 간편하게 검증할 수 있다”라고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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