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대중의 정서에 기자란 무릇 일을 부풀리고 사회 구성원을 이간질하는 못된 이들로 정의되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보를 전달하고, 사실을 알리며 독자와 소통하려 노력하는 훌륭한 기자들마저 그렇게 치부되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학보사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은 대학생이 아닌 그저 ‘기자’로서 봐주는 이도 많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한낱 읽을거리에 불과할 그 ‘기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알아주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2010년 3월 4일, 첫 취재의 떨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행사의 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쉼 없이 펜을 움직이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다가가 소감을 물었다. “카이스트신문사 기자입니다”라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꺼낸 순간이었다.

 그러나 취재의 설렘도 잠시, 기사를 쓰는 일은 고난스럽기 그지없었다. 자판을 붙잡고 고심하며 써내려간 글은 빨간색 잉크를 잔뜩 머금은 채 교정되어 돌아왔고, 실력의 부족함을 절감하며 남몰래 눈물을 삼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학생 기자’로서의 생활 역시 녹록지 않았다. 주중에는 온갖 퀴즈와 과제, 발표에 쫓기면서도 회의에 참석하고, 격주로 신문 발행을 위해 주말을 오롯이 바치면 체력은 고사하고 정신력마저 전부 소모하게 된다. 그렇게 땀과 눈물로 인쇄된 신문 대부분은 야속하게도,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학교 건물 한구석에 쓸쓸히 남겨지고는 했다. 기자라는 말이 무색했다.

 학내 정치와 학생 사회의 화제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자는 더더욱 그랬다. 작년 봄, 학교의 분위기가 하루에도 수십 번 곤두박질치며 취재, 사회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 빠르게 움직일 때, 문화부 정기자였던 본인은 휑한 신문사에 홀로 앉아 문화면을 만들었다. 학우들이 울부짖고 있는데 문화가 다 무어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문화부 기자의 일이었다. 문화, 학술 기사 또한 생략될 수는 없는 신문의 중요 요소라는 것이 잊혀져서는 안 되었기에, 비극에의 애도를 마음 깊이 담은 채 신문을 만들었다.

 신문 한 호를 발행하기 위해, 기자라는 이름을 어깨에 지고 지친 심신을 달래가며 매사에 임하는 학생 기자들이 있다. 2년 반의 학생 기자생활을 마무리하며, 건강한 학내 여론이 학생 언론의 발전을 북돋아 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부디 독자분들께서 카이스트신문을 읽을 때, 푸석한 종이의 질감과 비릿한 잉크 냄새만이 아닌 학우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기자들의 책임감과 노력이 느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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