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 및 자동화된 시스템의 현대미술, 표출되지 못한 개성을 표출하는 소소한 미술의 근본을 찾다

현대 미술의 시대에 들어서며 과격하고 혁신적인 표현양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대 미술의 소용돌이 가운데 고집스럽고 정성스럽게 미술을 경작(耕作)해내는 작가들이 있다.

대전시립미술관은 미술을 ‘경작’하듯 변화에 대한 관찰과 노동집약적 표현의 미술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을 가진 대전·충청 지역 연고 중진 작가들을 소개한다. ‘집적’으로 미술 작품을 그려내는 이 작가들은 ‘지독한 그리기’의 작가라 불린다. ‘미술경작 전’에는 김동유, 윤종석, 노주용, 민성식, 박능생, 이민혁, 함명수, 박계훈, 오윤석, 허구영 등 총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불안한 양심을 표출하다

김동유 작가가 그려낸 <그림1>에는 작은 픽셀의 이미지로 큰 캔버스의 이미지를 만드는 ‘이중이미지’ 기법이 사용되었다. 김 작가는 디지털적 요소인 대중적인 인물의 사진을 아날로그적 손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적인 미술 영역을 확보했다.

▲ <그림1> 김동유, Marilyn Monroe

그러나 김 작가의 작품에서 표현 양식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이미지의 상관관계다. 작은 픽셀 안의 케네디 대통령과 커다란 이미지 안의 마릴린 먼로는 권력의 정점에서 각각 저격과 자살로 점철된 인물들을 대표한다. 또한, 이 두 인물의 부적절한 관계를 그림 속에 녹여넣음으로써 작가는 욕망의 덧없음과 권력, 돈, 섹스가 만연한 사회를 풍자한다. 즉, 이중이미지 기법은 시대를 대표했던 인물들을 병치 혼합함으로써 이데올로기와 정의사회에 감추어진 이중성을 드러내는데 사용된 것이다.

박계훈 작가의 <그림2>는 ‘잘 팔리는’, 그래서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한 번씩은 거치는 주제인 ‘백자’를 소재로 삼았다. 박 작가는 백자의 모양을 한 땀 한 땀 종이오리기로 표현해 유행과 돈을 좇는 예술가의 행위를 비판한다.

▲ <그림2> 박계훈, 물질화된 양심

또한 겨울에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생명력의 상징인 ‘콩나물’의 모양으로 ‘연약한 직립’을 형상화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강한 내면을 대변한다. 박 작가는 쾌락적 허상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존재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진실의 인식을 언제 쓰러질 지 모르는 예술가의 ‘불안한 양심’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민혁 작가 또한 이상과 다른 사회에 대한 분노를 미술로써 승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작가는 다양한 작품에서 도시에서의 삶과 위압감이 느껴지는 관공서 그림 등을 통해 원래의 순기능과는 다른, 즉 이상과는 다른 현실의 부조리함을 폭로한다.

이러한 작가의 표현 방식은 이 작가의 <그림3>에서도 표현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지난 2009년 1월 19일 발생한 용산참사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의 비판을 실천하지 않았던 지식인에 대한 분노를 담아냈다. 이 작가는 도서관이 타는 장면과 도서관 창문 밖 용산 참극의 풍경을 여러 번 반복되는 어둡고 정열적인 색채로 대치시킴으로써 분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그림3> 이민혁, 책을 태우고 거짓을 꿈꾼다

이 작가의 작품은 하나같이 현세적 풍속인 셈이다. 이 작가는 상술, 모순, 인위적인 도시의 모습을 부정하기보다는, 한 발 더 다가가 따스한 시선을 기반으로 냉철한 비판을 가한다.

형태의 상상화, 상상의 형태화

윤종석 작가가 그려내는 작품들은 대부분 옷을 사물의 형태로 환생시켜 의미를 담아낸다. 윤 작가의 <그림4>는 아크릴 물감을 5mm 주사기에 담아 옷의 형태를 한 점 한 점 치밀하게 찍어냈다. 윤 작가는 옷의 역할을 ‘장식’하는 용도의 도구에서 우리가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는’ 것으로 재해석해낸다. <그림4>에서는 호랑이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을 탈춤에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로 형상화한다.

▲ <그림4> 윤종석, 양질호피

윤 작가의 작업 방식은 어두운 바탕 위에 점 하나하나를 찍으며 형태를 사회화하고 의식화해 의미를 지닌 제3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망점과 명암의 집합으로 관람자들에게 서정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함명수 작가는 ‘회화의 문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화면으로 외부 세계를 끌어들인다. 함 작가는 화면 전체에 균일하게 도포된 붓질의 섬세함과 외부 세계의 이미지간의 부조리를 만든다.

이러한 기법은 <그림5>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차갑고 회색이어야 할 것 같은 도시가 솜털과 같은 부드러운 질감의 화면을 지니는 것은 관람자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의 시선에서 도시의 이미지와 작품의 질감을 충돌시킨다. 결국 함 작가의 그림은 허구적 풍경의 파노라마를 만들어 역동적인 느낌과 중층적 깊이감을 생성한다. 도시를 표현한 화면의 피부들은 허구적이지만, 화면의 부드러운 질감은 어쩌면 작가가 찾고자하는 본질적 느낌일 것이다.

▲ <그림5> 함명수, 도시 풍경

허구적 유토피아와 일탈을 꿈꾸다

민성식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은 이상적이거나 환상에 의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가상적이지만 또한 현실적인 공간이다. 민 작가가 그려내는 공간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만한 풍경이며, 현대에서 찾을 수 없는 유토피아적 공간인 것이다.

<그림6>에서 민 작가는 현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꿈꾸는 일탈을 딱딱하고 구조적인 분할을 사용해서 풀어낸다. 또한, 그림을 살펴보면 원근감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허구적인 현대인의 유토피아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또한, 강렬한 원색의 인공물과 대치되는 밝고 화려한 자연을 표현함으로써 작가는 도시생활 속 삶과 자연의 대조라는 주제로 공허함을 표현한다.

▲ <그림6> 민성식, 수영장

그러나 작가가 이 공허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런 이상적 일탈을 현대인의 일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술경작 전은 오는 22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6일 14시에는 김도유, 노주영, 민성식, 박능생 함명수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되었으며, 오는 13일 14시에는 오윤석, 윤종석, 이민혁, 함명수, 허구영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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