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월 13일 발표한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 건설 계획에는 중이온 가속기 건설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방사광 가속기, 양성자 가속기와 함께 중이온 가속기를 갖게 된다. 대형 중이온 가속기는 미국, 일본, 독일 등을 제외하면 세계에도 몇 대 없어 이번 중이온 가속기 건설은 더욱 의미 있다. 중이온 가속기는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분야에 이용되는지, 또 다른 가속기와 차별화되는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중이온 빔의 안정성에 따라 분류되는 중이온 가속기

중이온은 탄소보다 무거운 원소인 질소, 산소, 네온, 우라늄 등에 서 전자를 떼어내 만든다. 이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키다 충돌시키는 시설이 중이온 가속기다. 중이온 가속기의 종류는 크게 안정된 중이온 빔을 제공해 주는 것과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원소로 붕괴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빔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구분된다.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에 건립될 중이온 가속기는 안정된 중이온 빔과 방사성 동위원소 빔 두 가지를 모두 제공할 예정이다. 안정된 중이온 빔은 암 치료 등 주로 응용분야에 이용되고, 방사성 동위원소 빔은 기초 과학 분야에 많이 이용된다.

 

전기장으로 중이온을 가속해 안정된 이온빔을 만든다

안정된 빔을 만드는 중이온 가속기는 이온 원(ion source)에서 원자에 구속된 전자를 전부 또는 일부 제거해 전기적으로 양의 전하를 지닌 이온을 만드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후 이온에 전기장을 가해주어 전기 퍼텐셜이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가속해 에너지를 높인다. 가속되는 동안 전자기적인 반발력 때문에 이온들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중극 자석 등으로 이온빔을 계속 집속시킨다. 이와 같은 과정을 여러 번 거쳐 원하는 빔 에너지의 안정된 이온빔을 만들 수 있다.

 

에너지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 방사성 동위원소 빔

불안정한 방사성 동위원소 빔을 만드는 과정은 훨씬 복잡하다. 동위원소 빔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비행분리법(in-flight method)과 온라인동위원소분리법(이하, ISOL)으로 구분된다. 비행분리법은 매우 큰 질량의 안정된 중이온빔을 1차 표적에 충돌시켜 여러 개의 불안정한 동위원소로 쪼개고서 이중극 자석 등으로 원하는 핵 종을 구분해 내는 방법이다. ISOL방법은 작은 질량의 안정된 중이온 빔을 두꺼운 1차 표적에 충돌시켜 표적 내에서 형성된 동위원소를 이용한다. 이 동위원소를 우선 한 곳에 모으고, 고정된 이온 빔을 가속하듯이 2차로 가속한다. 비행분리법은 높은 에너지의 동위 원소 빔을 만들 때 사용하고, ISOL은 낮은 에너지의 매우 강한 동위원소 빔을 만들 때 사용한다.

 

중이온 가속기의 선정 배경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에 건설될 가속기의 종류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 1월 13일 중이온 가속기 선정이 확정되며 일단락되었다. 세계적으로 대형 중이온 가속기는 5대 내외다. 반면 현재 포항 방사광 가속기의 성능 향상이 추진 중이며 경주에 양성자 가속기가 준공 중이다. 중복투자의 우려가 있는 방사광 가속기나 양성자 가속기에 반해 중이온 가속기는 그 희소가치가 인정되어 건설이 확정되었다. 이 외에도 중이온 가속기만의 특징이 경쟁력으로 작용해 선정의 원인이 되었다.

중이온 가속기와 다른 가속기, 무엇이 다른가

중이온 가속기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원자핵 간의 충돌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방사성 동위원소 빔을 이용한 충돌은 지금까지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원자핵과 함께 주로 중성자들로만 이루어진 특이한 핵물질을 생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타 가속기와 차별화되는 중이온 가속기만의 특성이다. 중이온 가속기는 나노입자 생산 가공, 신종 유전자원, 암 치료, 항공우주 소자 시험, 반도체 가공 및 생산, 방사성 동위 원소 생산, 단백질 구조 분석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방사광 가속기는 빠르게 가속된 전자가 멈출 때 발생하는 광자를 빔으로 이용하는 장치다. 방사광 가속기에서 제공되는 광자 빔은 주로 응집 물리, 생명과학 등의 분야에 이용된다.

양성자 가속기와 중이온 가속기는 강한 상호작용에 의한 원자핵 반응으로 핵의 구조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한 원자핵의 구조 연구는 수천억 전자볼트 이상의 매우 높은 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개발 중인 양성자 가속기는 일억 전자볼트 수준으로, 원자핵 구조 연구를 하기에는 부족하다. 때문에 신소재 개발 및 가공, 생명과학 등 응용분야에 주로 이용될 예정이다. 반면 중이온 가속기는 이와 비슷한 수준의 빔 에너지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가속할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핵, 입자, 천체물리 연구의 핵심시설

방사성 동위원소 빔을 이용한 충돌 실험으로부터 여러 가지 새로운 종류의 원자핵이 만들어진다 . 자연계에는 이론적으로 10,000여 종 이상의 원소들이 존재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약 3,000여 종에 불과하다. 중이온 가속기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원자핵을 생성하면 이들의 내부 구조와 붕괴과정을 연구하고 우주 진화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또한, 원자핵 충돌자료는 선진 각국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자로 제작을 위해 수행 중인 제4세대원자로 설계에도 중요한 공헌을 한다. 이 외에도 베타-핵자기공명 등 최첨단 재료 및 물성연구에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중이온 가속기와 생명과학

중이온 가속기는 생명과학분야에도 유용하게 이용된다. 양성자 또는 중이온 빔을 생물에 쪼이면 DNA 변형이 생긴다. 이를 통해 유용한 돌연변이 균주를 개발하거나 유전자 변이체를 선별해 고부 가가치 화훼류, 채소류를 개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자력 의학원의 가속기를 사용해 생분해 성 플라스틱 생산 균주를 개발한 예가 있다. 또한, 일본에 있는 RIKEN 중이온 및 양성자 가속기를 이용해 무늬 종 나리나 속이노란 배추 등을 개발하기도 했다.

중이온 가속기는 양성자 가속기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으므로 중이온 가속기 건설 이후 생명과학 발전이 기 대된다.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해 암을 치료한다

중이온 가속기는 의학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중이온 가속기는 인체 내부에 발생한 암을 치료하기에 매우 이상적인 도구다. 일반적인 방사선 치료의 원리는 가속된 입자를 인체에 깊이 주입시켜 이 입사입자가 인체와 상호작용하며 잃는 에너지로 암세포를 태우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방사선 치료를 위해 주로 높은 에너지의 광자인 감마선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감마선은 인체에 입사하는 순간부터 에너지를 잃으며 주변의 정상세포까지 파괴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감마나이프 등이 개발되기도 했지만,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이온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이온은 인체에 입사되고 나서 어느 거리까지는 에너지를 거의 잃지 않으며 진행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모든 에너지를 잃어버리며 세포를 완전히 파괴한다. 이때 인체 내에서 에너지 손실 없이 진행하는 거리를 빔에너지로 정밀하게 조절하면 효과적인 암 치료가 가능하다.

 

독일, 일본, 중국도 이온 빔 치료에 관심

일본은 1990년대부터 HIMAC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고 있으며, 앞으로 치료용 중

이온 가속기의 개수를 크게 늘리려 계획하고 있다. 독일 역시 1990년대부터 GSI 중이온 연구소에서 이온 빔 치료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 내에 치료 전용 중이온 가속기를 완공해 1년에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할 계획이다. 그리고 중국도 란저우에 있는 현대물리연구소의 중이온 가속기를 이용해 이온 빔 치료와 관련된 기초연구를 조만간 시작할 계획이다.

 

박성윤 기자

sypark12@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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