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KAIST 10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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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KAIST 10대 뉴스
  • 손하늘 기자
  • 승인 2012.01.18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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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40주년의 축포가 터진 것도 잠시, 학우와 교수의 자살이 이어졌고 학교는 '개교 이래 최대 위기'를 맞닥뜨렸다. 구성원들은 비통함과 참담함 속에서도 위기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분주히 모였다. 그 결과 혁신위 합의내용 등을 도출하는 성과를 냈지만, 학교본부와 교수사회 간의 갈등은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학부 총학생회 선거가 3파전으로 진행되고 동아리문화제가 부활하는 등 학생사회는 융성했다. '다사다난', '파란만장', '우여곡절', '일촉즉발' 등의 온갖 사자성어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2011년은 그렇게 저물었다. 본지는 '2011 KAIST 10대 뉴스'를 선정해 발표한다.

<1> 학우와 교수의 잇단 자살

▲ 학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현우 기자

불과 3개월 동안 네 명의 학우와 한 명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故조민홍 학우가 중앙기계실 앞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것은 1월 8일이었다. 전문계고 출신 ‘로봇 영재'의 입학으로 화제가된 지 1년 만이었다. 입학사정관제로 들어온 학생들을 배려하지 못한 학사정책은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3월 20일에는 故김경현 학우가 경기도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중간고사가 진행되던 29일에는 故장민석 학우가 서울 자택에서, 4월 7일에는 故박상훈 학우가 인천 자택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다. 사흘 후인 10일에는 故박태관 생명과학과 교수가 전민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개교 40주년 기념행사는 줄줄이 연기되었고, 신문과 방송은 시시각각 속보와 주요뉴스로 학교 상황을 보도했다. 학교는 공황에 빠졌다. 파장은 과학계와 교육계를 넘어 정치권과 시민사회까지 일파만파로 확산되었다.

<2> 대규모 간담회 및 집회·시위

▲ 비상학생총회에 참석한 학우들이 비표를 들고 있다 /양현우 기자

학우와 교수의 자살이 이어지자 학우들은 문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모색하고자 적극 나섰다.
故조민홍 학우의 비보에 학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공청회 ‘무엇이 문제였습니까?'를 열었다. 세 명의 학우가 목숨을 끊자, 이준혁 학우는 4월 4일부터 나흘간 본관 앞에서 1인시위를 전개했다. 故박상훈 학우의 변고가 알려진 이튿날에는 간담회 ‘총장과의 대화'가 열렸다. 간담회가 열린 창의학습관 앞에서는 이병찬 학우가 1인시위를 벌였다. 故박태관 교수의 소식이 알려진 4월 10일에는 본관 앞에서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애도기간으로 선포된 11일부터 이틀간은 학과별 간담회가 열렸다. 11일과 14일은 교협 긴급총회가 개최되었고, 13일에는 학부 비상학생총회가 성사되었다. 같은 날, 대학원비상학생총회도 소집되었으나 정족수에 못 미쳐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6월에는 본관과 학부식당 앞, 서측 쪽문에서 혁신위 의결안의 즉각·전면 실행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가 이어졌다.

<3> 혁신위 의결… 학사정책 개선

▲ 혁신비상위원회 첫 회의에서 경종민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홍보실 제공

학교본부와 교수,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혁신비상위원회(이하 혁신위)가 3개월간 회의를 거듭한 끝에 26개의 실행요구사항을 도출했다. 이 중에는 논란이 되었던 여러 학사정책을 개선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요구사항 중 일부는 현재 시행이 완료되었으며, 일부는 논의가 진척되지 않아 갈등을 빚고 있다.
교수협의회는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혁신위를 구성하는 안을 투표에 부쳤다. 그 결과, 참여 교수 84.8%의 찬성으로 해당 안건이 가결되었고, 서남표 총장과 경종민 교협 회장은 혁신위 구성에 관한 합의서에 공동 서명했다.
학교본부와 교수 대표 각각 5인, 학생 대표 3인(곽영출·안상현·이병찬 학우)으로 혁신위가 구성되어 4월 19일 첫 회의를 가졌다. 매주 3회 오전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전체 회의가 열렸고, 4개 소위원회를 꾸려 소위원회별 회의도 열렸다. 그 결과 ▲차등등록금 개선 ▲연차초과 수업료 개선 ▲전면영어강의 완화 등이 의결되어 현재 시행되고 있다.

<4> 학교본부-교협, 총장 거취 대립

▲ 교수협의회 총회에 참석한 교수들이 상정된 안건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손하늘 기자

혁신위에서 통과되었지만 즉시·전면 실행되지 않은 ▲명예박사학위 수여기준 제정 ▲이사회 개편안 ▲대학평의회 발족 등을 놓고 교수협의회가 강력 반발했다.
교협이 총장과 학교본부의 행동을 규탄하는 내용의 전자우편을 전체 교수들에게 보내고, 서 총장은 이에 대한 반론을 전체 교수들에게 보내는 ‘서신 공방전'이 한 달간 계속되었다. 수차례 교협 총회와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변화를 촉구한 교협은 급기야 9월 29일 총장 퇴진을 공식 요구했다. 본부도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총장은 물러날 의사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후에도 교협은 이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총장의 해임을 요구했으며, 총장의 여러 발언을 놓고 본부와 교협이 진실공방을 벌였다.

<5> 돌연사·사고사 등 잇단 변고

▲ 故서리지 교수 추모모임에 참석한 학우들이 추모 편지를 쓰고 있다 /손하늘 기자

애석한 변고가 유난히 많았다.
5월 4일, 故서리지 교수가 용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고인은 생전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영어 교수학습법 개발에 많은 노력을 쏟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6월 15일에는 故장우영 학우가 인천 자택 근처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7월 8일에는 故김건 학우의 인천 자택에 화재가 발생해 故김 학우가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10일 숨졌다. 이튿날인 11일에는 故신현호 학우가 호흡곤란으로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4월 27일에는 우리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밟고 있던 ㄱ 학우가 우리 학교 출신 ㄴ 동문을 치어 숨지게 하는 교통사고를 냈다.

<6> 개교 40주년, 기념행사 개최

▲ 개교 40주년 기념식에서 교원·직원들이 상을 받고 있다 /구건모 기자

2011년은 우리 학교가 세워진 지 40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지는 30년이 되는 해였다.
우리 학교는 개교 40주년 기념사업추진단(학교 측)과 40주년기념사업 학생추진위원회(학생 측)를 발족하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 진행했다. 기념사업단의 첫 사업으로는 40주년 행사를 위한 슬로건 공모를 진행해, ‘Be a KAISTAR'와 ‘Excellence for Humanity'를 선정했다.
2월에는 개교기념일에 맞춰 40주년 기념식이 열렸으며, 이후 학교사 기록물 및 UCC 공모전이 진행되기도 했다. 5월에는 40주년을 축하하는 태울석림제 ‘Happy birthday to KAIST'가 열리고, 4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이 열려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다채로운 학술 심포지엄과 문화행사도 40주년을 맞아 열렸다.

<7> 거액 기부 2011년에도 계속

▲ 김삼열 여사가 서남표 총장에게 기부 약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홍보실 제공

2011년에도 억대 기부는 이어졌다.
가수 김장훈 씨는 2월 22일 우리 학교에 2억 원을 기부했다. 2007년과 2008년 각각 5천만 원을 기부한 데 이어 세 번째다. 김 씨는 태울석림제 무대에서 수천만원의 출연료를 받지 않고 무료공연을 하는 ‘재능 기부'를 하기도 했다. 5월에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30억 원을, 퀄컴(Qualcomm)사에서 10만 불(한화 약 1억 1500만 원)을 기부했다. 8월에는 성낙양 두산동아 대표가 9억 원을 3년에 걸쳐 기탁하기로 했다.
9월에는 김삼열 여사가 5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쾌척했다. 김 여사의 남편인 김병호 서전농원 회장도 2009년 3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바 있다. 12월에는 우리 학교 동문인 신동혁 ELK 대표가 5년간 총 5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으며, 우리 학교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성장한 골프존은 17억 원 상당의 ‘교수클럽' 시설을 기부했다.

<8> 3파전·초접전 속 올인원 당선

▲ 김도환(좌)·김승환(우) 신임 총학생회장단이 투표를 하고 있다 /구건모 기자

11월 23일 치러진 제26대 총학 선거의 당선인은 ‘올인원(All 人One)'의 김도한, 김승환 후보였다.
‘올인원'은 37.1%의 득표를 획득, 35.0%를 얻은 ‘내일'(허현호·곽민욱 후보)과 24.5%를 받은 ‘두근두근'(진수글·김지하 후보)에 앞섰다. 1위와 2위의 표차는 불과 43표였으며, 1위와 3위와의 표차도 263표에 그쳤다. ‘올인원'은 투표소 5곳서 승리했으며, ‘내일'은 2곳서 승리해 개표 마지막까지도 당선인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한편, 이번 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53.15%를 기록했다.

<9> 동아리문화제 3년 만에 개최

▲ '나는 밴드다' 행사에서 초청가수 트랜스픽션이 공연을 하고 있다 /양현우 기자

2008년 이후로 열리지 못했던 동아리문화제가 3년 만에 부활했다.
제20대 학부동아리연합회 ‘비상'은 11월 9일부터 사흘간 동아리문화제 ‘RELOAD'를 개최했다. 세미나 형식으로 열린 학술동아리의 ‘동아리 학술제', 최고의 그룹사운드를 놓고 7개 밴드가 맞붙은 ‘나는 밴드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창의학습관 카페, 동아리 간접체험과 작품 전시회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학우들을 사로잡았다. 참여한 학우들은 동아리문화제가 되살아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일부 학우는 진행 미숙과 준비 부족이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아리문화제는 2008년 ‘Lost 95%'를 끝으로 명맥이 끊어졌었다. ‘비상'은 “2011년 부활시킨 문화제를 앞으로 매년 이어가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10> 류근철 교수, 숙환으로 별세

▲ 류근철 교수를 추모하기 위해 스포츠컴플렉스에 분향소가 설치된 가운데, 조문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구건모 기자

578억 원 상당의 전 재산을 우리 학교에 기부한 류근철 특훈교수(한의학·의공학 박사)가 3월 8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고인은 1월 중순 뇌경색 진단을 받고, 이후 수술 치료가 이어졌으나 고령으로 회복이 어려워 끝내 세상을 떠났다. 소식이 알려지자 ARA와 트위터, 메신저 대화명은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학우들의 글로 채워졌다.
이튿날 학교는 고인의 이름을 딴 교내 ‘류근철 스포츠컴플렉스'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생전 고인을 존경한 학우와 교수, 일반 시민 등 1300여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고인은 2008년,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인 578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우리 학교에 전달했다. 이듬해 인문사회과학동 2층에 '닥터 류 헬스 클리닉'을 개원해 입원 직전까지 학우들의 건강을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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