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 '나의 할머니에게'

자매 중 유일하게 대학에 간 할머니를 두고, 사람들은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았던 고집 센 여자라며 수군댔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할머니가 가정을 꾸리라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대학을 중퇴하고 결혼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어린 손주를 돌보기 위해 둘째 아들의 프랑스 출장에 동행한 할머니는 언어도 다르고, 아는 이도 없는 땅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 속 화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프랑스에서 고립되었을 할머니의 감정을 떠올린다.

할머니. 정겨운 웃음소리가 연상되는 그 이름은 부모님의 어머니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여성 노인을 지칭한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헌신에 가려져 할머니 개인의 꿈과 삶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전에 다뤄지지 않았던 할머니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한 윤성희 작가를 비롯해 백수린, 손원평 작가 등 활발히 활동하는 여섯 명의 여성 소설가가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를 출간했다.

책에 실린 6편의 단편 소설은 빈곤, 고독사 등 노인을 주제로 흔히 언급되는 문제에서 벗어나 나이 든 여성의 존재성을 강조했다. 윤성희 작가의 <어제 꾼 꿈>은 사고사한 남편의 제사상을 더 이상 차리지 않겠다는 화자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손주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고 싶었다던 화자는 절연한 동생, 등 돌린 자식 등 놓쳐버린 관계들을 담담히 회상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백수린 작가의 <흑설탕 캔디>는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화자는 이루지 못한 희망을 안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를 위해 당신의 것을 주장할 수 있는 단호한 목소리를 선물한다. 손원평 작가는 <아리아드네 정원>을 통해 지금의 20대가 노년이 되는 근미래의 모습을 서늘하게 그려냈다. ‘할머니’가 ‘처치 곤란한 늙은 여자’를 뜻하는 미래 사회에서, 작가는 저출생 문제 이외에도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세대 간 갈등 현상을 능숙하게 조명한다.

황예인 문학평론가는 추천 글에서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과거와의 연결이면서 우리의 미래를 알아차리는 과정이다”라 언급했다. <나의 할머니에게>는 곁에 있었지만 시선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던 할머니에게 다채로운 서사를 부여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남을 손녀를 걱정하는 할머니,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향한 기대를 슬쩍 품어보는 할머니 등 여섯 소설가의 시선으로 보는 할머니의 삶은 나이 든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한다. 책장을 덮자 긴 세월을 견디어 낸 슬픔과 사랑, 지혜가 곰삭은 향기로 남아 마음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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