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과 함께 연말이 다가왔다. 방학, 그리고 내년에는 어떤 일을 할지, 진로는 어떻게 할지 등을 고민하는 시기가 왔다. 이때, 내년을 준비하며 함께 인기가 상승하는 아이템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이어리다. 일기 숙제가 나올 나이는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는 꼭 꼬박꼬박 일기를 써 보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하루를 되돌아보고,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을 기록해 보겠답시고 여러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고민한 끝에 다이어리를 구매한 적이 있다. 몇 차례 꾸준히 쓰려 한 노력은 몇 해 동안 자리만 차지하는 육면체의 짐 덩이 취급으로 마무리되었다.

왜 이렇게 다이어리 한 권 다 쓰기가 어려울까? 아마 다이어리를 쓰게 된 계기들은 매체에서 전하는 일기 쓰기의 효과를 듣거나, 혹은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묘사하는 다이어리의 낭만적인 모습 접하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는 ‘다꾸’라는 이름으로 유튜브에서 여러 컨텐츠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연출이다. 결국 일기의 본질은 글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을 글로 직접 적는 과정은 굉장히 고단한 과정이다. 거칠더라도 하나의 글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것은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꽤나 고통스럽다.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지식과 생각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이치가 맞도록 써 내려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신경을 여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일기는 약간 다르긴 해도 결국 비슷하다. 하루 일과 중 겪은 인상적인 일을 선정하고, 그 일을 둘러싼 정보들, 내 생각들을 중구난방 낙서가 아닌 글로 써 내려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일기 쓰기를 한해 목표에 너무나도 쉽게 포함해 버린다. 예쁜 다이어리를 고르고 고르며 일기를 쓰는 것에 대한 기대를 무럭무럭 키워나간다. 그런데 막상 일기를 쓰려 하면 기대한 것처럼 낭만적이지도 않고, 하루 일과를 헤매는 머리와 어떻게든 지면을 채우려고 움직이는 손은 아프기만 하다. 그래서 며칠 일기를 쓰다가 자연스럽게 다이어리와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다이어리 쓰기의 본질을 잘 알고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무작정 보기 좋은 다이어리를 써나가려 하는 게 아니라, 본질은 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면? 다이어리에 품고 있는 기대는 잠시 내려두고, 간단한 개요를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살을 불려 나가는 식으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면? 결국 잘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부풀린 기대가 다이어리를 쉽게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연말이다. 내년이면 4학년이 되는 지금, 나의 내년 계획 리스트에는 다이어리뿐만 아니라 진로 계획도 있다. 사실 나는 이미 진로를 정하는 데에서 다이어리 쓰기와 같은 결과를 얻은 적이 있다. 과학고, 카이스트라는 진로를 선택할 때, 미래에 실제로 겪을 일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막연한 기대로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수학과 과학을 멀리하며 낮은 성적과 방황이라는 슬픈 결말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렇게 큰코다쳐 놓고 이런 일을 겪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다이어리를 무턱대고 한 해의 계획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올해, 그리고 내년, 진로를 정하고 사회에 나아갈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번만큼은 한 해 계획에 넣은 다이어리 계획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앞으로 선택한 미래에서, 괜히 섣불리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단 이루고자 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차근차근 느리지만 결국 이루었으면 한다. 부디 미래의 내가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단단하게 힘든 과정들을 이겨나갈 수 있기를, 그래서 결국 내가 처음에 감히 품었던 기대도 이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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