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올해 수필과 평론 부문 응모작은 수필 25편, 평론 1편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카이스트라는 갇힌 공간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 같은 것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다만 그것은 안쓰러움으로 끝날 뿐, 울림은 별로 없었다. 수필의 장르 특성을 고려할 때 자유로운 글쓰기는 좋다. 그러나 한밤중 감정에 복받쳐 써내려간 일기가 나만의 글이 아니라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글이 되려면 그 다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응모작 중에는 <갑‘을’정변>, <포석정(砲昔亭)>, <흑체(blackbody)>, <22:23>, <네일과 내일> 등 눈에 확 들어오는 신선한 제목들이 많았다. 카이스트 문학상 심사가 처음인 필자로서는 원고를 열어보고 설레었을 정도다. 제목에 공들인 세련된 감각으로 생각을 다듬고 문장을 다듬었다면 어떨까. 

도서관 가는 길에 발을 잠시 멈추게 하는 풍경이, 문득 떠오르는 어느 날 기억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극히 사소한 것들이 하나같이 우리의 글쓰기를 자극한다. <논문 쓰기 싫을 때 쓰는 일기>, <나는 지금처럼 살기로 했다>, <이유는 없다>, <일요일 아침의 샤워> 등 많은 작품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그려냈다. 깊은 밤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고민도 많았다. 거기서 한 발짝만 더 움직인다면, 그 발자국의 흔적이 글에 새로운 리듬을 만들고 전체의 흐름을 바꿀지도 모른다. 

가작으로 선정한 신치홍의 <슬픈 인연>은 글쓴이의 건강한 생활 자체가 글에도 상당한 힘을 실어주는 듯 활기가 있었다. 축구, 낚시, 아버지라는 키워드만으로 끝까지 글을 밀고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거기에는 견고하게 다듬어진 문체가 단단히 한몫을 한다. 중반 이후 힘이 좀 떨어져 당선작으로 선정하진 못했지만 자신을 믿고 앞으로도 글쓰기를 계속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단 한 편이었던 평론 <항아리에서 떠오른 밀실과 광장>은 최인훈의 <광장>을 토대로 주인공 이명준의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 것이다. 시도는 훌륭하나 분석은 다소 식상했다. 자신과 결부된 ‘완전한 지식인’상에 대한 고민이 보였다면 좋았겠다.

문학상으로는 어울리지 않아도 분명 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 꽤 있었다. 글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이 무엇인지 아는, 글을 쓰는 것밖에 할 수 없었을, 그들의 밤을 응원한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