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하늘을 보며 걷는다>

 

기계공학과 17

최인한

 

1.

19시 56분. 마지막 시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전원이 꺼진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일어나서 배터리라도 찾아볼까 싶었지만 포기했다. 머리가 핑핑 도는 것으로 모자라 이젠 움직일 힘도 없다.

끼에에에에에엑.

기숙사 앞 정원에서 들려오는 쇠를 긁는 것 같은 굉음은 이제 익숙했다. 나는 굉음이 발생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불타고 있었다.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브라운 가죽 벨트를 찬, 깔끔한 차림의 남자가 불이 난 반대편 기숙사에 다가가다 그만 옷에 불이 붙어버렸다. 방금 그 굉음도 저 남자가 지른 것이겠지. 불은 순식간에 옷을 불태웠고 썩은 그의 피부에 옮겨붙었다. 그들의 몸은 마치 장작과 같았다. 불과 함께 시작된 남자의 화려한 춤사위는 10초도 되지 않아 그가 쓰러지며 끝났다. 쓰러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끼에에에에엑. 끼엑. 끼에에에엑. 시작됐네. 그가 쓰러진 지 머지않아 사방에서 그들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증폭되어 내가 있는 기숙사를 뒤흔들 정도가 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세상을 점령한 그들은 소리, 정확히는 진동에 매우 민감하다. 그들이 진동을 느낀다면 목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비명을 지르며 진동의 발원지를 향해 뛰어갈 것이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그들은 동족의 울음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진동을 쫓을 때보다 훨씬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부러운 방금 타죽은 남자가 부러운 것이다. 그들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니까.

그들이 지르는 소리가 너무 커지자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아팠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로 옆에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누워있는 게 조금이라도 낫지 싶었다. 방에 누워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은 할 수 없고 나는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축복 중 하나였다. 나는 침대를 향해 걸었지만 내 발걸음은 두 걸음 채 이어지지 못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에 미끄러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내 몸은 미끄러지는 순간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골반을 부딪히며 나자빠졌다. 쿵. 뼈가 제대로 부딪혔는지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몸은 둔해졌는데 고통은 전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들었나?’

나는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봤다.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꽤나 크게 났다. 게다가 일어서면서 보니 넘어지면서 쓰레기통을 걷어찬 모양이다. 다행히 문밖은 고요했고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할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문밖이 고요하면 안 되는데. 쾅쾅쾅쾅. 그들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문이 부서질 듯 두들겼다. 그걸로 모자라 근처에 있는 이들이 전부 내 방 앞에 모인 듯 그들의 괴성도 훨씬 가까워졌다. 자신들의 억울함을 전부 나에게 해소하겠다는 듯 문을 두드리는데 힘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그 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문이 부서지면 그들은 이 방으로 쳐들어와서 날 잡아먹겠지. 나는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잡아먹는다. 사건이 터진 날, 나는 사람이 수십 명의 그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사람이 산 채로 잡아먹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절망이었다. 산 채로 잡아먹히는 건 너무 끔찍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겨진 이불을 들고선 문으로 달렸다. 이불로 문을 덮고 등을 기대 밀었다. 문을 두드리는 힘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이대로 기댄 채 몇 시간만 버티면 그들은 곧 자신들이 왜 문을 두드리는지도 까먹고 돌아설 것이다.

나는 바닥에 걸터앉고 맞은편에 있는 창문 너머의 기숙사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건너편 기숙사에서 불이 났는데 태울 게 뭐가 그렇게 많은지 아직도 불이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불이 난 기숙사를 바라봤을 때 나는 발작을 일으켰는데 –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 지금은 발작은커녕 마음이 너무 평온했다. 오히려 이렇게 평온해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화재가 발생한 기숙사 말고도 눈에 보이는 다른 것들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먹을 지경이다. 비라도 한 번 퍼부어주면 좋을 텐데. 아니지. 이미 재난은 벌어졌고 이젠 비가 와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오히려 지금 불이 꺼지면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전기가 끊긴 지 오래였기에 이 방에 빛을 보내주는 광원은 저 기숙사에서 난 화재뿐이다. 화재에서 나는 불그스름하면서 옅은 빛은 잔뜩 어질러진 내 방에서 물감 퍼지듯 퍼졌다. 그라데이션처럼 빛은 창문 맞은편, 내가 있는 문 주위에서 완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그 몽환적인 풍경에 의식이 점점 더 흐릿해졌다. 아직은 잘 수 없었다. 적어도 좀비들이 문을 반쯤 더 약하게 두들길 때까지는 이 몽롱한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한다. 나는 이 이상한 기분을 깨고자 과거를 천천히 되새김질했다. 그들, 그러니까 좀비라고 부르는 그들이 나타난 그날부터 말이다.

 

2.

오후 1시 부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중간고사 시험 범위 내용을 요약한 노트를 보고 있었고 룸메이트는 가방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지낸 시간이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 번 이름을 들은 적이 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까먹었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나보다 한 학번 낮으며 차가 있을 정도로 부자라는 것과 10분마다 전화벨이 울릴 정도로 친구가 많다는 것 정도였다.

룸메이트는 머리를 10분 넘게 만지작거리더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방을 나갔다.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공책을 닫았다. 나는 침대에 편하게 누운 채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왼쪽 가슴에 가까이 댄 채 번데기처럼 몸을 움츠렸다. 이 자세로 누워있을 때 나는 눈을 감지만 결코 잠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누워있으면 마치 번데기처럼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하루에 최소한 두 시간, 길 때는 세 시간 정도 되는 시간을 이렇게 보낸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특이해 보이는 취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조금 복잡했다. 그리고 남들에게 말하기엔 매우 불편한 계기였다. 내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선 부모님과 누나가 화재로 사망했다는 불편한 사실을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3.

대학생이 된 후 내 인생은 확실히 고달파졌다. 고등학교는 좁았다. 터널처럼 오직 대학이라는 출구를 보면 되는 곳이 고등학교였고 나는 나름 그 터널 안을 잘 달렸다. 하지만 대학교는 매우 넓었다. 너무 넓어서 길치는 길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으며 동시에 그 누구도 먼저 길을 알려주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는데 부모님은 그런 나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아빠는 엄격했고 당시에는 그런 아빠가 미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빠 역시 분명히 나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창피했다. 나는 가족의 도움을 거절했고 부모님은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나는 부모님과 크게 싸웠다. 누나는 중간에서 중재하려 애썼지만 누나에게 열등감이 있었던 나는 곧 누나와도 싸웠다. 사고는 누나와 싸운지 일주일 뒤에 찾아왔다. 환갑인 아빠의 생신이었는데 나는 부모님의 전화를 무시하고 여느 때처럼 학교에 남아 하루를 허비하고 있었다. 오후 2시를 마지막으로 더는 오지 않던 전화가 오후 7시쯤 되자 또 왔다. 나는 휴대폰을 앞에 두고 전화를 무시했다. 또 전화가 왔지만 나 역시 무시했고, 그 이후로 아빠와 누나가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했지만 나는 아예 전화를 꺼버렸다. 그리고 너무 심했나 싶어서 한 시간쯤 뒤에 전화를 켰을 땐 2통의 문자, 18통의 부재중 전화, 그리고 채팅 하나가 와 있었다. 문자를 다 읽었을 때 전화가 또 왔다. 119였다.

총 71명이 사망한 아파트 화재였다. 화재 원인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우울증에 걸린 중년의 방화였다. 그는 아파트 곳곳에 기름을 뿌린 다음 자신의 온몸에 기름을 끼얹고선 1층 구석에서 라이터를 켠 채 그대로 분신자살하면서 방화를 일으켰다. 비상계단 전체에 기름을 뿌려놨기에 아파트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나올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들 중 절반은 연기에 질식해 사망했으나 나머지는 연기를 참지 못하고 베란다 밖으로 나왔다가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

장례식장에서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정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는 것만 기억난다. 울지 않고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많은 언론사에서 날 취재하려 했다는 점이었는데 그들은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의 에피소드를 기사로 쓰기를 간절히 원했다. 나는 인터뷰 요청을 전부 거절했지만 어디서 연락처를 알았는지 그들은 한 달 가까이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내가 들은 권유 중 제일 웃긴 말은 ‘부모님도 네 감동적인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길 원할 거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들은 권유 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네가 입을 열어야 다음에는 이런 재난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연락 온 12군데의 언론사 중에서 여덟 군데의 언론사가 이렇게 말하거나 이와 비슷하게 말해 나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나에겐 다음이 없었기에 안타깝게도 그들의 입에 발린 권유는 나를 설득하지는 못했다.

화재로 집에 있는 물건 전부가 전소했기에 내가 가족에게 받은 유산은 화재보험금과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휴대폰 하나뿐이었다. 큰아빠가 사고 후에 밥을 한 끼 사준 적이 있었는데 내가 받은 화재보험금으로 빚을 메꾸기 위해서 접근한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혐오감이 들었다. 불을 지른 그 사람도 매우 미웠지만 그래도 혐오감이 들진 않았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친척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의 연락도 끊었다. 화재보험금은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학교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정신상담을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다시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학교로 복귀한 내 인생은 별 차이 없었다. 천체관측 동아리를 탈퇴한 대신에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쥐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식사량과 수면량이 줄고 방에서 나가는 시간이 조금 줄었을 뿐이다.

 

4.

나는 이 방을 상당히 좋아한다. 시설은 21세기 대학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지만 방음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창문을 닫고 방 안에서 조용히 있으면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게 된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 새들의 울음소리는 창문 너머로 들리긴 했지만 사람 목소리는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방에서 한 30분쯤 누워있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의 주기가 매우 짧은 것으로 봐서는 채팅앱에서 채팅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휴대폰이 계속 울리니까 신경에 거슬렸다. 학교로 돌아온 이후, 오는 채팅마다 전부 알람이 울리지 않도록 설정해뒀는데 이렇게 울리는 것을 보면 한동안 채팅이 전혀 올라오지 않던 옛날 채팅방에서 다시 채팅이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켰다. 예상대로 몇 달째 아무 채팅이 올라오지 않던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갑자기 눈 한 번 깜빡일 때마다 수십 개의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우리 학교 난리났음.ㄷㄷ 밖에 미친 사람들이 돌아다닌다는데.

-우리 학교도. 난리났음. 지금 강의실에서 문 잠그고 있어서 밖에 상황은 모르는데 비명 들리고 난리야...

-강의실에서 절대 나오지 마. 나 지금 집 베란다에서 보고 있는데 지금 바깥에 난리났어. 저 사람들 대체 뭐지?

-아니 저 사람들이 대체 누구인데? 나 지금 강의 듣고 있는데 우리 학교는 조용한데?

-지금 시체처럼 생긴 사람들이 사람들 쫓아다니면서 막 깨물고 있어. 좀비처럼.

 

좀비? 난 인상을 찌푸렸다. 좀비라는 단어는 자체는 와닿았다. 단어가 너무 와닿았기에 오히려 그 비현실적인 단어를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멍한 표정으로 채팅방을 바라보고 있을 때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한 10층 정도 되는 높이에서 한강 강변 공원을 찍은 10초짜리 짧은 동영상이었다. 나는 그 동영상을 바로 재생했다. 낙엽 위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치 술래잡기처럼 다수가 낙엽을 밟으며 진심으로 도망갔고 그들의 뒤를 적은 사람들이 쫓았다. 쫓는 쪽이 좀비인 것 같았는데 확실히 뜀박질하는 자세가 특이했고 얼굴색도 창백했다. 곧 여자 하나가 그들에게 잡혔다. 술래잡기라고 말하기엔 확실히 과격하게 넘어트렸다. 그러더니 좀비는 여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고 곧이어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동영상을 찍은 장소로부터 공원까지의 거리가 상당한데도 비명이 들렸다. 이때까지도 나는 동영상을 올린 애가 영화의 한 장면을 짜깁기해서 올린 건지 실제상황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채팅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사진도 몇 장 올라왔는데 전부 딥웹에서나 볼 법한 사진이었다. 잔인하고 필터 하나 거치지 않은 사진이었다. 곧 채팅 앱의 연결이 끊어졌다. 다시 접속했지만 앱은 열리지 않았다. 3년 전 진도 5가 넘는 지진이 왔을 때 이렇게 앱의 연결이 끊어진 적이 있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손이 떨리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비현실적인 상황에 머리가 복잡했다. 머릿속이 이렇게 잡념으로 가득한 적도 오랜만이었는데 불타는 채팅방과는 달리 기숙사 밖은 여전히 고요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자 실시간 검색어 순위1위가 좀비였다. 2위부터 10위까지도 전부 좀비와 관련된 단어뿐이다. 5위는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였고 8위는 ‘좀비한테 물렸어요.’였다. 뉴스란을 눌렀지만 인터넷은 하얀 화면으로 바뀌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인터넷을 닫고 다시 열었지만 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노트북을 껐다 다시 켜도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다. 다시 휴대폰을 켰지만 화면 오른쪽 상단엔 통화권 이탈 지역 표시가 떠있었다. 좀비가 나타났다는 채팅을 본 지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통신이 차단된 것이다.

이쯤 되니 아까 전 본 동영상과 사진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신이 서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방에서 나가지 않고 버티는 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5분쯤 후에 방 스피커에서 사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바깥에 괴한이 돌아다닌다고 하니 방에서 절대 나오시면 안 됩니다. 학생, 학생! 지금 밖으로 나오면 안 돼!”

평소에 들었던 충청도 사람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대신 다급한 목소리였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그런 두려움이 느껴지는 목소리 말이다. 끼에에에에엑. 굉음은 밖에서 들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괴이한 울음소리였다.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불쾌한 울음소리가 창밖에서 들렸는데 그 소리가 무뎌졌던 내 감각을 순식간에 일깨웠다. 만약 이런 동물이 우리 곁에 살고 있다면 당장 동물들을 잡아가라는 민원이 줄을 설 게 분명했다.

어디 있는 거지? 방 안에선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볼 수 없었다. 맞은편 기숙사에서도 사람들이 커튼에 몸을 숨긴 채 전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의 눈이 어디를 향ᄒᆞ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상체를 내밀었다.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좀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창문을 열자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정신이 확 깨어났다. 나는 한껏 밝아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숙사 옆에 있는 매점 건물 옆에 여자가 서 있었다. 아까 동영상에서 본 것처럼 피부가 하얗게 질렸고 눈알은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풀어오른 것으로 모자라 충혈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대화는 나눠본 적 없지만 같은 학과였기에 수업이 몇 번 겹쳤다. 예전에 만난 그녀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인상이었다. 그녀가 입은 하얀색 블라우스는 때 하나 타지 않았다. 대신 청바지는 찢어졌고 찢어진 틈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언가에 물린 듯한 상처였다. 오른쪽 신발이 벗겨져 있었는데 그녀의 뒤로 붉은 발자국이 아스팔트 도로를 물들였다. 여자는 내가 있는 기숙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리던 그녀는 결국 세 걸음도 걷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는 상당히 놀랐는데 그녀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격렬히 요동쳤기 때문이다. 나는 여자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음에도 내 눈엔 오직 쓰러진 여자만 들어왔다. 내가 마치 쓰러진 여자가 된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도망쳐야 된다는 저 여자의 생각과 지금 느끼는 공포를 나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닫는 것도 잊고 그대로 문을 뛰쳐나왔다. 계단을 세 칸씩 뛰어 내려가 순식간에 4층에서 1층 로비까지 내려왔다. 학생, 학생! 방에 있지 않고 뭐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나는 문을 열고 기숙사를 나섰다. 기숙사를 나서자 멀리서 쓰러진 여자가 보였다. 괜찮을까? 좀비한테 물린 것 같은데. 저 여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순간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구하러 갔다가 저 여자가 갑자기 내 팔을 물어버리는 순간 나는 수많은 좀비 영화에 등장하는 엑스트라 좀비가 된다. 본능적으로 인간에게 덤비다가 주인공 일행에게 두개골이 부서지거나 좀비가 되기 전에 저 여자가 나를 먹어버릴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악마의 속삭임을 하나씩 반박했다. 좀비에게 물렸다고 반드시 좀비가 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단순히 베인 상처를 내가 좀비에 물린 상처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래! 영화의 좀비랑 실제의 좀비가 다를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영화의 좀비는 유사과학의 총 집합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그런 것들을 현실과 유사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마음을 정리한 나는 여자 쪽으로 뛰어가려다 나도 모르게 멈추고 말았다. 쓰러진 여자가 고개를 들어서 눈이 마주쳤는데 머지 않아 눈알이 그녀의 눈을 빠져나와 아스팔트 바닥을 굴렀다.

끼에에에에엑. 매점 건물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 매점 건물에서 수십 명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기에 좀비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쓰러진 여자를 밟고 달렸다. 누군가는 땅바닥을 굴렀고 그 사람을 다른 사람이 밟고 지나갔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문을 잠갔다. 침대에 누우라고 아우성치는 몸을 끌고 나는 간신히 의자에 앉았다. 아직은 침대에 누울 시간이 아니다. 나는 창문을 닫고 조용히 바깥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도망갔고 그 뒤를 좀비들이 쫓았다. 두 기숙사 사이의 작은 정원에선 순식간에 지옥도 펼쳐졌다. 몇 명은 가까스로 기숙사로 들어갔지만 좀비들도 곧장 유리문을 부수며 뒤따라 들어갔다. 좀비에게 붙잡힌 사람들은 산 채로 좀비에게 잡아먹혔다.

좀비의 울음과 사람들의 비명이 얽히고설키는 정원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동안 문 쪽에서도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더 작게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이 기숙사 안에도 좀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타닥타닥. 철컥철컥. 탕탕탕. 문! 문 열어주세요! 빨리! 룸메이트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아직 여자가 사람들에게 밟혔을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문 열라고! 두 번째 외침에서야 나는 황급히 일어나 문으로 뛰어나갔다. 잠금장치를 푸는 순간 룸메이트와 여자 한 명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고 바로 잠갔다. 곧이어 문밖에선 좀비의 울음소리 사이에 비명이 섞여 들어왔다.

“너 미쳤어! 왜 바로 문을 안 열어!”

룸메이트는 들어오자마자 핏발이 선 눈으로 날 몰아붙였다.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내 멱살을 잡았다. 그와 마주 보고 대화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나갔을 때만 해도 가지런했던 머리가 지금은 털옷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나 죽었다고! 지금 바깥 상황 안 보이는 거야?”“미안.”“미안? 미안?”

룸메이트와 여자는 기가 찼는지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 또한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멱살을 잡힌 채 가만히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좀비 밥이 되었을 텐데 고작 미안?”“너는 쓰러진 여자 밟았어?”“뭐?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

쾅쾅쾅. 룸메이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좀비들이 문을 두들겼다. 좀비들이 문을 두들기자 룸메이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잡힌 멱살을 풀고 다시 창가에 앉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밤이 될 때까지 휴대폰을 쥔 채 창밖을 멍하게 지켜보았다. 좀비가 나타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부터는 비명은 잦아들었다. 대신 두 기숙사 사이엔 시체들이 걸레짝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의 내장이 훤히 드러났고 얼굴 가죽이 뜯겨져 근육. 재난은 생각 이상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좀비들은 시체들 틈을 걸어 다녔다. 좀비들은 시체가 된 이들에겐 손대지 않았다. 그것들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탐했고 사람이 죽었다고 판단하면 귀신같이 식사를 멈추고 일어났다. 나는 그런 좀비들을 지켜보았다. 거부감이 들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좀비들을 관찰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렇다고 좀비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좀비가 될 바엔 죽는 게 나았다.

창밖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룸메이트와 여자의 대화가 들렸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 우리 계속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야?”“괜찮을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아마 군대가 좀비들을 싹 쓸어버리던가 하겠지. 늦어도 내일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여자는 남자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퍼부었고 남자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귀를 막고 싶은 것을 참으며 둘의 대화를 못 들은 척했다.

“방이 좀 공허한 느낌이네.”

여자가 마음이 안정됐는지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근데 저 사람이 네 룸메이트야?”

“어.”

“같이 있어도 괜찮을까?”

“그렇다고 쫓아낼 수는 없잖아.”

못 듣는다고 생각하진 않는지 험담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내가 이 방의 불청객이라는 생각은 확실한 것 같다. 유리로 룸메이트와 여자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비쳤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감각을 창밖으로 돌리려고 애썼다. 나는 좀비들을 관찰했는데 좀비들은 모두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좀비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바라기도 아니고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래서 기숙사 4층에 있던 나는 그들의 눈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 전부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가 전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여자를 만난 순간 그 여자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나는 밤이 될 때까지 좀비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의 희망찬 예언과는 다르게 밤이 될 때까지 학교는 간간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 빼고는 고요했다. 먹구름이 잔뜩 껴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

“나......배고픈데. 혹시 먹을 거 없어?”“난 방에 먹을 거 안 두는데......”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두 명의 시선이 내가 책상 위에 둔 컵라면으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식사는 전부 컵라면으로 때우고 있기에 아예 컵라면을 박스째로 구매해서 쌓아놓고 있었다. 컵라면은 23개, 2L 생수병이 10개 남아 있었다. 룸메이트가 숨겨놓은 비상식량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이 방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식량은 이게 전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컵라면을 하나 꺼내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은 어색한 듯 엉거주춤 컵라면을 받았다.

“한 개?”

여자가 말했다. 나는 잠시 여자와 눈을 마주쳤고 그녀는 먼저 눈을 돌렸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배고프지도 않았고 목도 마르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엔 좀비 사태가 터진 지 한 시간 뒤쯤에 정부가 보낸 재난 문자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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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문자]

[국민안전처]대한민국 시내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다수 출몰. 국민 여러분은 즉시 귀가바랍니다. 좀비와 조우할 시 불가피한 경우 사살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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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대폰을 선반 위에 올리고 침대에 누웠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5.

다음 날, 나는 정확히 오전 여섯 시에 일어났다. 두 시에 잤으니 네 시간을 잔 셈인데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는 더 잔 것이다. 아무래도 어제 일은 그만큼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던 모양이다. 휴대폰 배터리가 줄어들어 있었다. 분명 충전기에 꽂고 잤는데. 나는 전등 스위치를 눌러봤지만 아무리 눌러도 켜지지 않았다. 전기가 끊어진 것이다. 나는 혀를 차며 휴대폰 전원을 껐다. 와이파이도 끊기고 인터넷도 끊기고 통신도 끊겼는데 전기가 끊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룸메이트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여자는 바닥에 앉아있었다.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어색함을 참지 못한 듯 먼저 고개를 돌렸다. 다리를 이리저리 틀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걸 직감했다. 이 기숙사는 공용화장실을 쓴다. 방이 넓은 편도 아니고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남녀가 같이 있는 이 방에서 생리 현상을 치르는 건 확실히 큰 문제였다. 방에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녀가 뭘 하든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 의자에 앉아 커튼을 걷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좀비들은 지금도 걷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벽에 착 달라붙은 채 벽을 통과해보겠다는 듯 벽을 향해 걸었다. 좀비는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걷고 있었다. 다리가 아플 텐데.

한동안 좀비들을 관찰하던 나는 문득 좀비들의 눈 안엔 뭐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구멍 안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 안을 바라보기엔 나는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좀비들의 눈 안엔 보석이 있을 것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뿜어대기만 하는 돌멩이 말이다. 나는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올려보며 말했다.

“하늘이 무너졌나 봐.”

“네? 하늘이 무너졌다고요?”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자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바지가 젖어갔다. 곧 그녀는 숨죽여 울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30분쯤 뒤에 나는 2L짜리 생수통 하나 안에 든 물이 반 정도 줄어 들어있다는 걸 확인했다. 컵라면은 21개가 남아 있었다.

그날 점심쯤에 룸메이트는 나를 불러세웠다.

“이봐요! 네?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서 뭐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좀비가 보면 어쩌려고요? 커튼이라도 치세요.” 나는 좀비는 눈이 없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룸메이트는 잠깐 망설이더니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계속 참으면서 조용히 있었는데 이제는 말해야겠네요. 저 지금까지 당신이랑 같은 방 지내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은 거 알아요?”

“죄송합니다.”

“아니... 뭐가 죄송한 지 알고는 있고요?”

“ ...”

“방에서 아무 말도 없이 휴대폰 쥐고선 누워만 있거나 음침하게 노트북 앞에 앉아만 있는데 제 신경을 다 갉아 먹는다고요. 가끔은 자다가 등에 소름까지 돋았어요.”

“죄송합니다.”“아니, 죄송하다는 말이 듣고 싶은 게 아니라... 하아... 말 더럽게 안 통하네. 지금 저희들도 미칠 것 같은 거 간신히 참고 있는데 당신이 자꾸 그렇게 구니까 이젠 진짜 참기 힘들어요.”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쳇.”남자는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방 가운데 선 넘지 마세요.”

남자는 눈에 단단히 힘을 준 채 나한테 경고했다. 경고한 이후부터 두 명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컵라면과 물을 가져갈 때 말고는 선을 넘는 일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선을 방음이 잘되는 벽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을 때 가끔 들리는 남녀의 신음 소리는 나에게도 꽤나 고역이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하루 만에 세상이 바뀐 것치고는 큰 변화가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난 그날 역시 그랬다. 룸메이트와 여자가 모두 자고 있던 새벽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우연히 맞은편 기숙사의 방에서 커튼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도 살아있는데 건너편 기숙사라고 해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하지만 커튼을 치지 않고 있던 방은 내 방밖에 없었다. 호기심이 생겼는지 나는 커튼이 열리는 방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커튼이 열고 나온 남자와 곧장 눈이 마주쳐버렸다.

‘이런.’

안 그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게 껄끄러웠는데 심지어 아는 사람이었다. 천체 관측 동아리에서 활동했을 때 있던 선배였는데 나에게 밥을 사주면서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구구절절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창문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여는 속도보다 내가 입에 손가락을 올리는 제스쳐를 취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기숙사 사이의 거리는 꽤나 떨어져 있고 만약 선배와 내가 대화를 나눌 정도로 크게 말한다면 좀비는 새로운 먹이를 향해 무작정 달려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선배는 내 제스쳐를 알아들었는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처음에 손으로 이리저리 의사를 전달해보려 했지만 둘 다 수화를 익히진 않았기에 분명히 대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솔직히 나는 그가 껄끄러웠지만 선배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극렬히 드러내는 바람에 호응하는 시늉은 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A4용지에 글을 적어서 대화하기로 결정했다.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어서 A4용지 하나에 두 글자 정도 적는 게 한계였다. 그래서 문자처럼 필요한 내용만 딱딱 적어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존댓말은 안 써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다.

 

선배: 너 어떻게 지냈어?

나: 큰 문제는 없었어. 식량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2주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선배: 우리 방은 이제 거의 다 떨어졌어. 그나마 물이라도 많이 사뒀기에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을걸. 너희 방엔 너 말고 없어?

나: 두 명 더 있어.

선배: 나는 혼자. 혼자 있으니까 미칠 것 같음.

나: 난 두 명이 더 있으니까 식량이 두 배로 나가서 미칠 것 같음.

 

선배는 대화가 즐거운지 연신 미소를 지으며 A4용지에 문자를 써나갔다.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이 채팅에 조금 더 즐겁게 참여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는 라디오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서 라디오를 계속 청취하고 있었는데 라디오에서 좀비에 대한 정보와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정부의 브리핑이 라디오를 통해 알려준다는 것이다. 내가 그에게 받은 정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구를 최종 방어라인으로 삼고 그곳에서부터 빠르게 좀비들을 제거하고 있다. 좀비는 돼지의 뇌에 기생하던 기생충의 특수 변종이 사람의 뇌에 기생하면서 생긴다. 기생충은 대뇌를 감염시켜 오직 사람을 먹고 싶은 욕구만을 남게 한다고 한다. 그렇게 좀비나 시체를 늘리고 기생충은 좀비와 시체를 파먹으면서 번식한다. 좀비에게 물리면 물린 부위를 빠르게 절단하지 않는 이상 100% 감염이다. 좀비가 된 사람이 사망 상태인지는 철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나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건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정부는 일단 좀비는 제거하는 것으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좀비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부패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 좀비가 되면 한 달이 지날 때쯤 그는 못 뛰게 된다. 그리고 세 달이 지나면 걷지 못하고 반년이 지나기 전에 완전히 부패하여 시체가 된다. 어떻게 되든 좀비는 좀비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식이 긍정적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2주 안에는 군인들이 시민들을 구출하러 온다고 하니 남은 식량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나보다는 오히려 선배가 문제였다.

 

나: 선배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음?

선배: 물배만 채워서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설마 죽기까지야 하겠어? 밤에 별이라도 볼 수 있으면 훨씬 좋을 텐데. 전기가 끊겨서 먹구름만 없어지면 훨씬 더 많이 보일 텐데.

 

선배는 별을 좋아했다. 작지만 환하게 빛나는 별을 고개를 들어서 보면 심장이 두근댄다고 한다. 될 수만 있다면 저 하늘의 별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저번에 선배가 밥을 사준 적이 있었는데 밥을 먹고 길을 걷는데 하늘에 별이 보인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했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별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나는 수 광년은 떨어진 별을 향한 산책이 지루했지만 저녁을 사준 선배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나는 그에게 물어보기라도 했다.

“왜 별을 보면서 걸으시는 거예요?”“별을 향해 걸어야 언젠가 별이 될 테니까.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별이 될 수 있겠어.”

“그럼 별을 향해 걷지 않는 사람은 별이 될 수 없는 건가요?”“걱정하지마. 별이 있다는 걸 아는 이상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별이 되려고 하니까. 나는 그냥 빨리 가고 싶은 거 뿐이야.”

선배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망원경으로 보는 별보다 맨눈으로 보는 별을 좋아했다. 망원경으로 몇 개의 별을 자세히 보는 것보다 맨눈으로 무수히 많은 별을 보는 게 더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별을 구경한다. 저번엔 나보고 같이 별을 보러 가자고 권유했지만 내가 등산을 싫어했기도 하고 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거절했다. 생각해보면 선배는 나에게 무척 잘 대해준 사람이었다. 내가 동아리를 탈퇴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말린 선배였다.

 

선배: 그나저나 네 집 대구 아니었어? 다행이네. 대구면 네 가족도 다 살아 계시겠네.

 

건너편 기숙사 창문에 남겨진 메시지를 보며 나는 순간 멈칫했다. 선배는 우리 부모님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있다.

 

나: 네. 나도 그렇게 믿고 있음. 선배도 힘내세요.

선배: 당연하지 ㅋㅋ. 이것도 인연인데 이번 일 끝나면 밥이나 한 끼 같이 하자.

 

한 시간쯤 더 대화를 나눈 우리는 저녁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일단 문자를 종료했다. 무엇보다 창문에 A4용지를 하나씩 붙여서 대화를 나누는 작업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 나에게 매우 괜찮은 시간이었다. 나는 선배와 대화하면서 그가 두 명과 다르게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만으로 나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나는 저녁을 기대했다. 나는 휴대폰을 쥐는 것도 잊은 채 저녁을 기다렸지만 나와 선배에게 다음은 없었다.

그날 저녁, 맞은편 기숙사 1층 구석에서 불길이 일었다. 하루 종일 창밖을 보고 있었기에 나는 그 화재를 전부 기억했다. 구석에서 시작된 불길은 기숙사에 널리 퍼진 좀비들을 땔감 삼아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재난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와 내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다.

 

6.

“어떡해.”

“이럴 수가 있냐...”룸메이트와 여자는 불길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나 역시 불길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화재가 너무 순식간에 퍼져서 내가 선배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시점에선 이미 불길이 4층까지 번지기 직전이었다. 사람들이 커튼을 열고 창문을 열고 창밖을 향해 연신 기침을 했다.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들 정도였다. 머리가 아팠지만 나는 창밖을 내다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도 곧 창문을 열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선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곧 눈이 마주쳤는데 선배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나에게 웃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창문을 열 수 없었다. 방에서 나가는 게 너무 무서웠다. 창문을 열면 맞이할 매캐한 연기 냄새와 뜨거운 열기와 그들의 비명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선배는 내가 창문을 열지 않는 걸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았지만 곧 사람 좋은 미소를 다시 지어 보였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머지않아 그의 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가 그대로 질식한 줄 알고 무서웠다. 잠시 후에 선배가 다시 창문으로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하얀 편지 봉투를 꺼내 나에게 흔들어 보이면서 뭐라고 크게 외쳤다. 그리고 그는 편지봉투를 두 팔로 안고선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의 아래에 있는 건 무수히 많은 좀비와 딱딱한 바닥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내 기억도 끊겼다.

 

7.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책상 아래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책상에서 기어 나왔을 땐 기숙사 방이 엉망이었다. 소변통으로 쓰던 쓰레기통이 나자빠져 악취를 풍겼고 책이 찢겨져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창문은 금이 가서 거미줄에 새겨진 상태였다. 구석에 가지런히 모아뒀던 컵라면 스티로폼 통들도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나는 함께 지내는 두 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지만 두 명은 나를 노려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자 매 순간이 두려웠다. 죽음이 두려운 건지, 좀비가 되는 게 두려운 건지, 아니면 선배가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이 날 그렇게 만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룸메이트와 여자 때문에 겉으로는 태연히 있으려 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벅찼다. 잠을 청해보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피곤하기만 할 뿐 잠이 오진 않는다. 벽을 마주 보고 누워있는데 룸메이트와 여자의 대화가 들렸다.

“이 남자는 진짜 미쳤어. 여기에 있다가는 좀비가 아니라 이 사람한테 죽을 것 같아.”

“그럼 어떡해. 여기에서 나갈 수도 없잖아.”“아니, 차라리 나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나 야외주차장 앞에 차 세워둔 거 알지? 거기까지만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미쳤어? 바깥에 좀비들이 천지인데 우리가 어떻게 나가?”

“나갈 수 있어. 방금 전에 불나서 좀비들이 다 불이 난 쪽으로 달려갔잖아? 게다가 눈이 없고 냄새도 못 맡으니까 우리가 조용히 나가기만 하면 차를 타고 도망갈 수 있어.”

“도망갔는데도 세상이 다 이 모양이면 어떻게 해.”

“적어도 여기보단 낫겠지.”

“...”

두 명은 그렇게 그날 밤 방을 나갔다. 그들은 내 컵라면을 모두 들고 갔고 물은 2L 생수통 하나를 남겨놓았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선배에게 들은 정보를 이야기해주지도 않았다. 그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나서는 순간 이 방에는 또다시 나만 남았다. 그들이 돌아올 가능성을 대비해 문을 잠그지 않았지만 밤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에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난 것도 아니고 비명이 들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서야 나는 문을 잠갔다.

하루 종일 방에서 서성였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미묘한 연기 냄새와 창밖에서 들어오는 화재의 불빛이 나를 계속해서 깨웠다. 마치 팽이에 갇힌 것 같았다. 천장이 핑핑 돌았고 방 가운데가 일그러졌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옷과 쓰레기들이 춤을 췄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무서워서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창밖을 보고 싶어도 그곳엔 불타는 기숙사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는 지금 내 응어리를 풀 수는 없었다. 나는 앨범을 열었다. 천오백 장 정도의 사진들이 있었는데 그 사진 대부분이 엄마가 찍은 사진이었다. 이 휴대폰은 원래 엄마가 쓰던 휴대폰이었는데 내가 쓰던 것이 고장 나는 바람에 엄마 것을 받았다. 휴대폰을 포맷하는 것을 깜빡하고 내기 쓰던 휴대폰 데이터를 덮어쓰는 바람에 이 휴대폰에는 내가 원래 쓰던 휴대폰의 데이터 엄마 휴대폰의 데이터가 섞여 있었다. 아빠의 전화번호는 ‘아빠’가 아닌 ‘내편’으로 저장되어 있었고 누나는 성이 사라지고 대신 ᄄᆞᆯ 뒤에 하트가 붙어버렸다. 당연히 내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었다. 지운다고 마음먹을 때마다 늘 다음으로 미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나는 그 게으름을 감사히 여겼다. 이 휴대폰이 없었다면 나는 가족사진을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했을 것이다. 오른손 검지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사진을 몇 장 확인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앨범을 전부 넘기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진을 넘길수록 폭발할 것 같던 심장이 점차 가라앉았다. 나는 사진을 최대한 오래 보기 위해 화면 세기를 낮췄다. 그렇게 나는 낮이든 밤이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보조배터리를 꽂고 사진을 바라봤다. 나는 한순간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진을 보던 도중 엄마가 남긴 다른 게 남아 있을까 싶어서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게 부모님에게 온 마지막 문자를 확인했다. 사건이 발생한 그 날 이후로 처음 보는 문자였다.

 

엄마: 그동안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게 없어서 미안하다.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

내편: 아파트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딸♥: 누나 없어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어. 친구도 좀 사귀고... 알았지? 그동안 함께 해서 싫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ㅋㅋㅋ

 

나는 메시지 창을 닫고 다시 앨범을 열었다.

 

8.

눈을 뜬 지 10초쯤 지났을 때, 나는 내가 좀비들을 막다가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숙사에 불이 난 이후부터 잔 적이 없었기에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 모양이다. 좀비들은 도중에 물러났는지 문은 멀쩡했다. 나는 완전히 발을 뻗고 문에 기댄 채 맞은편 창문을 바라보았다. 잔뜩 어질러진 방 너머에 보이는 기숙사는 불길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고 먹구름도 사라졌다. 나는 일어나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좀비들은 조금이지만 느려져 있었다. 선배의 말대로 저들 역시 생물학적인 부패를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의자에 앉은 나는 쥐고 있던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잠에서 깨어나니 이젠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대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물도 거의 마시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도중에 나는 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건이 일어난 첫날 도망치던 사람에게 밟혔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 여자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가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처음 방밖에 나서는 것이었다. 복도 끝 유리문에서 들어오는 약한 빛이 복도를 비추는 유일한 불빛이었지만 이미 어둠에 충분히 익숙해진 내 눈은 벽에 부착된 간판마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복도에는 좀비가 열 명 정도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줄 모르는 건지 내가 자기들과 같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 다. 좀비의 눈 안을 보고 싶었지만 구멍 안을 보기엔 복도가 너무나도 어두웠다. 다만 그들에게선 썩은 악취가 났고 입에선 구더기가 들끓었다. 게다가 얼굴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4층에서 내려다봤을 땐 결코 느끼지 못했던 좀비들의 진짜 모습이었다. 하지만 4층에서 볼 때처럼 그들은 여전히 무식할 정도로 걷고 있었다. 벽에 부딪힐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벽에 부딪히면 몸을 돌려 다시 걸었다. 나는 그런 그들이 한심해 보였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3층, 2층, 1층. 1층 로비엔 로비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좀비가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강하게 들렸다. 나는 그들을 밀치며 문으로 걸어갔다. 건물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어떤 좀비도 나를 물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아무 어려움 없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쓰러져 있었다. 팔다리는 돌아가서는 안 될 부위로 꺾여져 있었고 내장이 훤히 보였으며 두개골과 아래턱이 깨져 있었다. 원래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어져 그녀가 만약 그 자리에 없었다면 나는 그녀를 분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움직이고 있었다. 몸을 어떻게든 비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나고 내장에 바닥에 끌렸다. 끌린 핏자국을 봤을 때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10m도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빛이 스며드는 그녀의 눈 안을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귀신같이 끊겼다. 나는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눈 안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 안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다. 좀비의 눈 안에 보석이 있다고 믿었다. 매혹적인 빛을 내지만 아무것도 아닌 보석처럼 빛나지만 무가치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 안에는 밤보다 어두운 어둠밖에 없었다. 망치가 내 머리를 세게 친 것처럼 얼얼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왜 움직이냐고 물어봤다. 여자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고 이제서야 먹구름과 빛공해에 가려졌던 수천 개의 별을 볼 수 있었다. 밤하늘에 소금을 흩뿌린 듯한 별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녀와 좀비는 선배처럼 먹구름 너머에 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알고 있었기에 걸었다. 그것을 알기 위해 눈 안에 보석을 지니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눈도 없이 별을 향해 걸어간 것이다.

나는 천체관측 동아리 부원이었으면서도 하늘에 별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문득 선배와 식사하면서 그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공해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별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들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은 나에게 해준 말인지도 몰랐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여자 앞에서 일어나 불이 나고 있는 기숙사를 바라보았다. 매캐한 냄새가 났고 뜨거운 바람과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며 합쳐졌다. 아직은 무서웠지만 적어도 방 안에서 봤을 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좀비 중 하나가 길을 잘못 들어 불 속으로 걸어갔다. 케에에에엑. 한 명을 시작으로 그들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옆에서 숨죽여 울었다. 장례식장에서 흘리지 않았던 눈물까지 합쳐서 나는 새벽이 될 때까지 울었다.

 

9.

나는 눈물을 닦으며 선배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조용히 그가 뛰어내리기 전에 끌어안은 봉투를 찾았다. 봉투 앞면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나에게 이 유서를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는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 피로 잔뜩 젖은 봉투를 나는 조심스럽게 쥐었다.

방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는 기숙사를 돌면서 룸메이트와 여자를 찾았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좀비들 사이를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두 명은 보이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성공적으로 도망간 것일까. 아니면 죽은 것일까.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원래 없었던 건가? 1층부터 5층까지 전부 뒤져도 두 명이 안 보이자 나는 두 명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빈방을 뒤져서 먹을 것과 보조배터리를 챙긴 다음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왔을 땐 밖은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잠그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몰려와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눕자마자 눈꺼풀이 내려앉았고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해를 보고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해는 없고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지? 나는 보조배터리를 휴대폰에 연결하고선 전원을 켰다. 19시 56분이었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Epilogue.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들고 온 과자와 간식거리를 전부 먹어치웠다.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라면보다는 확실히 괜찮았다. 음식을 먹고 나선 방을 청소했다. 찢어진 종이를 쓰레기통에 넣고 컵라면 통은 구석에 가지런히 모았다.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가지런히 개어 옷장 안에 넣어두었다. 책들을 책꽂이에 꽂고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하자 방은 훨씬 깔끔해졌다. 여전히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지금 내 힘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나는 공허한 느낌은 확실히 줄어든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소화를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해온 식량을 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식량을 구하러 또 나가야 한다. 나는 옷을 단단히 껴입고 가방을 챙겼다. 짐을 얼추 다 챙겼을 때 나는 우연히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을 보았다. 나는 휴대폰과 옆에 놓인 선배의 유서를 가방에 넣고 그것을 짊어졌다.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는 창문을 열고 건너편 기숙사를 바라보았다. 재불이 거의 꺼진 기숙사는 거의 뼈대만 남아 앙상했다. 나는 탄 냄새를 맡으면서 기숙사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충분히 가라앉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나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이제는 진짜 나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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