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다. 많은 학생이 연구자, 혹은 이공계열 진로를 꿈꾼다. 교육 커리큘럼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대부분 연구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공계 산업 혹은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진 환경에서 다른 진로를 꿈꾸는 일은 때로 힘겹고 고민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본지는 이미 이공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직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학교 졸업생들을 인터뷰했다. 본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로, 연구자 이외의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로,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수많은 졸업생에 가려져서 눈에 띄지 않았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KAISTian’의 존재를 드러낼 것이다.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기 위한 지원을 받은 학생들이 연구자 이외의 진로를 택하는 것에 대한 논쟁도 분명 존재한다. 본 기사의 역할은 해당 논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가려져 있었거나 그동안 접근하기 어려웠던 정보들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선택과 고민의 순간들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길 기대해 본다.

본 기획은 이번 호(471호)와 다음 호(472호)에 걸쳐 실릴 예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기자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졸업생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MBN 손하늘 기자

손하늘 기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MBN 사회 1부 사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경찰서에 출입하면서 사건·사고, 생활 속의 기획 등의 기사를 쓰고 있다. 조폭 택시를 추적하거나, 특정 협회의 비리를 밝혀내는 등의 무거운 주제도 가끔 다룬다.

 

대학생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10학번 산업및시스템공학과 졸업생이다. 재학 중에 공부 빼고 다 한 것 같다. 일단 카이스트신문에서 사회부, 학술부, 취재부 기자와 학술부장, 사회부장, 부편집장과 편집장으로 일했다. 창작동화에서 키보드와 작곡을 했다. ICISTS에서는 행사 기획과 홍보를 맡았다.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해서 당선된 경험도 있다. 2016년 총선 당시, 각 정당의 과학기술계 몫의 비례대표들이 우리 학교에서 진행한 과학기술 현안 토론회 연출을 맡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는 못했다. 

2011년과 2012년, 우리 학교에서 많은 구성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사회부장과 편집장으로 일했다.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로, 학생들이 본관에 모여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시위를 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수많은 언론사의 시선이 우리 학교에 집중되고 있었고, 카이스트신문의 기사가 최초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명감을 가지고 학보사 기자 활동을 했다.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앞서 말했듯 2011년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있었다. 1월 11일을 시작으로 3월 23일, 3월 30일, 4월 7일, 4월 8일 등 계속 자살 사건이 이어졌다. 학교에 중계차가 와서 보도를 할 정도였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심장이 빨리 뛰고, 간혹 눈물도 나온다. 

한때 집계한 바로는 60여 개의 매체에서 200명 정도의 기자가 학교에서 자다시피 하면서 취재를 했다. 우리 학교 관련 뉴스가 탑 뉴스가 되고, 1면 기사가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브리핑을 잘 해줬지만, 총학생회나 학생들은 기자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기자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학생도 있었다. 그 결과 학교 측이 주장하는 바로만 보도되는 일이 생겼다.

그때 진실을 알고 싶은 기자들이 진실에 접근할 루트로 찾은 것이 학보사였다. 왜냐하면 학보사 기자들은 정보력이 강하면서도, 언론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기자 선배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기자들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기자들 사이의 연대와 기자 정신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기자의 세계가 매력적이고 멋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공계열 진로에 진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공계 진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국가 자격시험에 사용되는 매크로에 대한 기사나,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에 사용되는 디지털 포렌식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이전에 배웠던 지식이 사용된다. 또한, 태풍 중계를 할 때도 과학적 지식을 이용하면 더욱 심도 있게 보도를 할 수 있다. 이처럼 과학적 지식을 취재에 적용하여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KAIST라는 환경이 기자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

정보 부족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종합대학의 경우 언론반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학생들이 체계적 코칭을 받으며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수 있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선배들도 많고, 교내 스터디 그룹도 활성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이러한 점들이 부족해서, 입사 준비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연구자 이외의 진로를 준비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본인은 뜻밖의 일로 진로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러나 일부 KAIST 학생의 경우 진로를 탐색할 기회가 부족해 박사과정을 마치고 후회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최댓값을 찾지 못하고, 극댓값에만 머무르거나 극댓값에도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환경만을 계속해서 접하게 되면 결국 특정 극댓값에 해당하는 진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최댓값을 찾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새로운 환경을 접해 일종의 ‘퀀텀 점프’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박람회에 새로운 분야의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효용을 높이면, 결국 사회 전체의 효용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공계열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자신의 시선을 가지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이공계의 지평을 확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재정부 유근정, 이상용 사무관

이상용 사무관
(ⓒ허성범 기자)
유근정 사무관​​
(ⓒ허성범 기자)

간단한 본인 소개를 한다면

이상용 사무관(이하 이): 07학번 산업공학과 졸업생이다. 8년째 일을 하고 있다. 경제구조개혁국에서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유근정 사무관(이하 유): 08학번이고,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근무한지는 5년 차다. 예산실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업무를 진행했다. 특히 작년에는 교육예산과에서 초중등분야 예산 편성을 했다. 

 

대학생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유: 로켓공학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학교 공부도 재미있게 한 편이다. 그러다 신문사 활동을 하면서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로 정책대학원 진학도 고민하다가, 아예 공무원이 되어보면 어떨까 해서 준비하게 되었다.

 

현재의 진로를 갖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 학교에 입학해서 보니 과학을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본인은 대학에 진학할 때 여러 과목들을 골고루 잘했던 편인데, 대학에 와서는 그러한 특성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아주 잘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느 쪽이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지금의 길을 찾게 되었다.

유: 연구는 그 결과가 실생활에 나타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그러나 공무원이 하는 일은 바로 현실에 적용되는 측면이 있다. 그 점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입사 준비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유: 아무래도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관련 과목이 많이 없다. 입사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과목 중 통계학은 도움이 되는 과목들을 찾아 들을 수 있지만, 나머지 과목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행정학이 매우 생소했다. 또한, 공무원이라는 진로에 대해 애초에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었다. 선배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직업이다 보니 그렇다. 

이: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의 경우 선배들로부터 정보를 얻곤 하는데, 선배들이 별로 없다 보니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어떤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볼 곳이 없었다. 이 점은 입사 후에도 발목을 잡았다. 부처를 선택할 때 어떤 부처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KAIST에서 연구자 이외의 진로에 진출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생각은

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진로에 진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재학 시절 서남표 전 총장이 부임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책임이 학생에게 주어진다’는 사고방식이 강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는 어린 학생들에게 국가 지원을 볼모로 해서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는 데 심리적 장벽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공계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진로로 진출하는 일이 사회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공계 학부 과정을 마친 사람이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공계 지식에 대해 거부감 없이 더 잘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은 업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학부 과정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이유는 기본적인 이공계 관련 소양을 갖춘 다양한 사회인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여러 진로에 진출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창 4대강 사업이 이슈가 될 때 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떤 연구가 연구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인용되어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되었다는 기사였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이공계의 기본 소양을 갖춘 사람이 공직,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 공무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막연한 측면이 있다. 공무원이라는 분류 안에도 굉장히 다양한 직업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최소한으로 직무를 구분해도 1,000가지가 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 단편만 보고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과 실제로 각각의 세부적인 분야에서 하는 일에 대해 명확히 고민해 본 후에 준비하는 것이, 본인의 만족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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