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기억은 그것을 떠올리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곤 한다. 철이 들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거나,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후에 다시 떠올린 기억은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불러온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작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은 열 가지 단편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기억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의 기억에 대한 단편인 <코요테>에서는, 성인이 된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동성애자 연인을 만나는 교환학생 아술에 대한 단편인 <아술>에서는 교환학생의 보호자가 된 주인공이 아내와의 일들을 떠올리며 아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한다. 두 주인공 모두 시간의 축적을 바탕으로 이해하거나 마주할 수 있게 된 기억을 이야기한다. 담담하나 따뜻한 문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아름다움이다.

기억을 떠올리며 변화하는 감정에 대해 서술한다는 점 외에도 각 단편들에서는 한 가지 공통점을 더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무기력함이라는 감정과, 감정을 겪음과 동시에 행해지는 감정 자체에 대한 끝없는 성찰이다. 이 점은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두드러진다. 주인공 헤더의 독백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분명 짙은 무기력함과 체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무기력함이 무기력함이 아니고, 체념이 체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물리학과 학부생인 헤더는 그러한 감정의 기원이 되었던 교수 로버트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무기력함의 감정이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자신의 일부분을 발견하게 했음을 깨닫는다. 깨달음은 끝내 헤더의 삶의 궤적을 바꿔놓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헤더가 로버트와의 만남을 기억하며 떠올린 감정을 소설을 통해 함께 돌아보며 무기력함이라는 감정의 색다른 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아마도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당신에게 만들어 놓은 기억을 다시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기억 속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당신도 책 속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긍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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