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기자로서 활동한 지 어느덧 5학기이다. 이번 학기가 지나면 나는 일러부 기자의 역할을 끝내고 다시 카이스트신문의 독자로 돌아간다.

2년 반 전, 그러니까 내가 1학년이었을 때, 카이스트신문의 일원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한 학번 높은 친구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 몇몇이 있는데 사람이 좋다, 활동비가 있다.’ 등 친구의 추천이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보태자면 대학 학보사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긴장되었던 면접을 거치고 카이스트신문의 수습부원으로 뽑혔을 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기뻤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고등학생 때까지 다뤄본 디자인 툴은 파워포인트 디자인이 전부였던 나였기에, 어도비의 여러 프로그램이 매우 낯설었다. 일러부 수습기자로서 맡았던 처음 작업물인 천경자 화백의 타이틀 컷은 지금 생각해보면 1시간에서 2시간 정도면 끝낼 정도의 작업물이지만, 그땐 정말이지 온종일 이것도 고민하고 저것도 고민하고 하루가 지나도 만족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잘하지 못했기에 더욱이 배우려 노력해야 했지만, 마음만 있고 행동은 하지 않았던 나는 매번 마감마다 뜨는 해를 보며 방에 들어가곤 했다. 그리고 때때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 작업물들이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 때면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도 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약 30번의 마감을 거쳐 이제 2개의 신문만이 남은 지금, 일러부 기자로서 고생했고 자신을 질책했던 시간이 어느덧 아쉬움으로 변하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때 당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 같아 후회도 남는다. 그렇지만 아마 누군가가 나에게 한 학기 더할래? 라고 하면 선뜻 하겠다 답하지는 못하겠지. 카이스트신문 한 호가 발행되기까지 기자들이 휴식을 포기하고 어떤 노력을 하는지 2년 반의 활동 동안 뼈저리게 배웠기에 처음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함께 할 수는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비록 카이스트신문의 일원으로서 역할은 끝나지만 나는 이제 카이스트 신문의 독자로 돌아가 이들을 응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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