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KAIST 40주년 특별기획>에서는 우리 학교 설립 이래 학생사회의 역사에 대해 짚었다. 이제까지 우리 학교의 설립 과정과 90년대 벤처 열풍까지 훑었던 특별기획이 ‘학생’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KAIST를 다 담아내기 위한 정해진 수순이었다.

애초 기획은 지난 1월 특별기획 전체를 기획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4주 전부터 담당 기자들은 큰 틀을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발행 2주 전 회의에서 기자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이번 기획 기사를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까지 말했다.

지난 특별기획 동안 매번 나름의 어려움을 겪긴 했다. 역사를 되짚는 만큼 책 몇 권과 교수, 학우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한정된 자료 속에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책이 서로 내용이 엇갈리거나 제대로 다룬 사료가 없으면 기사 작성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자료를 모아 기사를 작성해 왔고, 다섯 번째 연재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사료 부족은 심각했다. 우리 학교가 설립된 이래 ‘학생’에 대한 역사를 기록해둔 저서는 물론 없으며, 모두 ‘기억’하는 취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했다. 단편적인 기록들이라도 좋으니 각 자치단체에 문의해 각 자치단체의 역사를 모으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연락도 어려웠고 각 단체가 그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도 않았다. 즉, 의미 있는 ‘사료’가 없었다.

결국, 기자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한 사료이자 취재원은 지난 카이스트신문뿐이었다. 물론 여러 경로로 취재를 시도해 학생 커뮤니티나 동아리연합회 등에서 나름대로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내용 대부분은 카이스트신문 과월호에서 나왔다. 그나마도 단편적인 보도기사에서 정보를 꺼내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러나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우며 지난 20여 년간의 신문을 모두 읽고 정리한 기자들의 열정으로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

이번 특별기획을 마련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 학교 학생사회의 기록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학교는 홍보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의 역사를 기록하고 고증할 사료를 보관하는데, 학우들은 그에 비해 너무나도 역사에 무관심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구태의연하지만, 여전히 진리를 담은 사자성어를 찾자면, 우리 학교 학생사회에는 ‘없다’라고 씁쓸하게 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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