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피카소 고암 이응노 판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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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피카소 고암 이응노 판화전
  • 김채훈 기자
  • 승인 2011.06.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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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예술세계로 살아생전 동양의 피카소라 불렸던 고암 이응노의 판화전이 이응노미술관 개관 5주년을 기념해 3월 16일부터 이번 달 30일까지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응노가 프랑스에서 머물던 1960~80년대에 제작된 판화와 판화 원판 105점을 선보여 그만의 독특한 판화세계를 조명한다. 이번 판화전에서 가장 회화적이면서도 기존의 회화적 문법을 깨뜨리고, 판화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고암 이응노만의 독특한 화법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판화전에서 판화 원판이 함께 전시되는 것은 국내에서 최초인 만큼 더욱 값진 기회다

▲ 그림 1. 구성. 50x42cm. 목판화.1978

틀에서 벗어나 미술의 新 영역을 개척하다

일반적으로 판화는 목판, 동판, 석판 등에 형상을 새긴 뒤 그 위에 잉크를 발라 종이, 천, 양피지, 플라스틱 등에 그림을 찍어낸 것이다. 18세기부터 판화가들은 자신의 판화에 서명을 남기기 시작했으며, 제작자의 서명이 있는 판화는 일반적으로 원작으로 받아들여졌다. 판화가 대부분은 서명은 오른쪽 아래 끝, 인쇄번호는 왼쪽 아래 끝에 표기하며 가운데에 제목을 쓴다. 그들은 적절한 수량의 판화를 찍은 후 원판을 파기하거나 특별히 표시해 자신이 정한 수량 이상의 판화가 인쇄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이응노의 판화 작품은 대부분 이러한 양식을 지키지 않았다. 그 예로 <그림 1>은 이응노 판화전 현수막에 인쇄된 그의 대표작 ‘구성'이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판화에서 볼 수 있는 서명이나 인쇄번호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 그림 2. 구성. 40x53cm. 판화. 1979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일반 판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색 또한 그의 독특한 판화기법이다. 이 작품에 사용된 색은 은은한 청자를 연상시키는데 이응노는 이런 색의 길쭉한 판화를 여러 개 이어붙여 병풍을 만들었다. 이는 병풍이라는 동양 문화와 판화라는 서양 문화를 합친 것으로, 동서양 문화를 조화시키려 했던 이응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색의 작품들은 한번 찍은 판화 위에 덧칠해 완성된 것이다. 이미 찍은 판화에 다시 손을 대는 것은 도전정신이 강한 이응노였기에 가능했던 발상이었다.

▲ 닭. 36x30cm. 목판화,1985

작품의 재료 또한 다양하다. 일반적인 판화의 재료가 아닌 문짝, 합판, 심지어는 벼루와 같이 당시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물건들까지 모두 그의 미술 재료가 됐다. 이응노의 작품 중 ‘닭’은 합판을 재료로 하여 만든 것인데, 합판은 견고하고 고유의 결이 있어서 작가가 원하는 모양대로 조각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받는 ‘닭’은 이응노의 예술적 재능을 잘 나타낸다. 특히 커다란 문짝을 파서 만든 작품들은 그 자체로 ‘조각’으로서의 가치를 지녀 원판이 작품 자체인 경우가 많다. 이처럼 작품의 재료가 다양한 것은 이응노가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주위의 물건이 작품의 재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형식보다 예술적 영감을 중요하게 여겼던 그의 예술관을 잘 드러낸다.

 

▲ 그림 3. 구성. 28.5x36.5cm. 목판화. 연도미상

단순화와 조화로움의 美, ‘구성’

이응노의 작품 중에는 제목이 ‘구성’인 작품들이 많다. 이는 글자 그대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뜻이다. <그림 1>과 <그림 2>, <그림 3>에서 볼 수 있듯이 ‘구성'이라는 작품들 대부분이 상당한 단순화가 이루어졌고 작가의 해설이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물이 조화를 이뤄 한데 모여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고암 이응노는 언제나 정지된 세계나 틀 속에 움직임이라는 동적인 세계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구성'은 사각 판화라는 틀 속에 일상 생활의 사물, 즉 세계를 담아낸 작품이라는 면에서 이응노의 이러한 노력이 잘 드러난다. 숙련된 화가들은 이응노의 ‘구성’ 작품들을 보고 조화가 이루어진 안정된 작품이라 평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람들이 서로 공존하고 어우러져 살기를 원했던 이응노의 박애정신을 나타낸다.

▲ 壽. 32x43cm. 목판화. 1972

이응노가 사랑한 壽

이응노는 모든 사물을 단순화해 표현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중에는 형상을 단순화한 문자인 한자를 이용한 것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이 구성미가 돋보이는 획(劃)과 점(點)으로 구성된 문자추상 작품들이다. 한자 중 ‘壽'는 글자 자체가 매우 조형적이라, 이응노가 작품 주제로 자주 사용했던 글자였다. ‘壽'라는 작품을 보면 그림이 한자 壽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응노미술관을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로랑보두앵은 이응노가 壽를 작품에 자주 사용했다는 점에 착안해 미술관을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壽의 형태가 보이도록 설계했다.

 

▲ 군상. 15.5x43cm. 목판화. 1984

5.18 민주화 항쟁, 그 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을 당시 이응노는 프랑스에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방송으로 조국의 비극적인 사건을 접한 뒤 슬픔에 잠겨 사흘 동안 두문불출했다 한다.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이 ‘군상’이다. 이응노는 ‘군상’과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판화를 70년대에도 선보였으나, 본격적으로 ‘군상’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민주화 항쟁 이후이다. 그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군중의 모습을 작품 ‘군상’에 담았다. ‘군상'은 한 원판을 가지고 여러 번 찍어 완성한 작품인데, 농도의 짙고 옅은 정도로 원근감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는 군중의 활력이 느껴진다.

시련도 꺾지 못한 예술에 대한 열정

고암 이응노는 1904년 역사적으로 혼란스런 시기에 태어나, 일본에서 근대 미술교육을 받았다. 도전정신이 강했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파리로 건너가 서구의 미술양식을 당당히 자신만의 것으로 변화시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후, 남북전쟁에서 그의 아들이 북한에 인질로 끌려가고, 동백림사건(1967년)으로 옥고를 치른 데 이어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미수사건(1977년)에 연루되는 등 그의 예술가로서의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되는 시련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주위의 생활도구를 이용해 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에 제작된 판화들은 매우 어두운 색으로, 그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자세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대전 이응노 미술관

대전 이응노 미술관은 세계적인 작가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 연구와 전시를 맡아 고암 정신을 확장하고 계승할 목적으로 2007년 5월 개관하였다

▶ 위치 : 대전광역시 서구 만년동 396번지

▶ 정기 휴관일 : 신정, 구정, 추석, 매주 월요일

▶ 관람료 : 성인 500원, 어린이, 청소년 및 군인 400원, 매월 넷째주 일요일(미술관 가는 날) 무료

▶ 관람시간

- 3월~10월 : 오전 10시 ~ 오후 7시

- 11월~2월 : 오전 10시 ~ 오후 6시

▶ 대표전화 : 042-602-3270

▶ 홈페이지 : ungnolee.daej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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