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배정받습니다. 이후 간단한 기사의 방향과 분량을 협의하고 적절한 취재원을 결정합니다. 그렇게 선정된 취재원에 대한 컨택과 질문지 작성을 시작합니다. 컨택은 대부분 이메일로 이루어지며 질문지는 해당 사안의 전말을 파악하고 취재원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이후 연락을 지속하면서 취재원이 서면 인터뷰를 원한다면 질문지를 송부하고 답변을 회신받으며, 전화나 대면 인터뷰를 원한다면 일정을 조율해 직접 대화를 나눕니다. 이 과정에서 취재원이 답장이 없는 경우는 흔하며 이에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고 내선 번호로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약속한 답변이 오지 않으면 꼼짝없이 기사가 터지는 일도 있습니다.

카이스트신문 취재부의 통상적인 취재 절차입니다. 신문 제작에서 대부분의 경우 필자를 괴롭게 하는 건 기사 작성보단 취재 과정입니다. 물론 취재 과정에서 얻는 점 역시 많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안을 조사하고 관련자를 인터뷰하면서 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로우며 신문사를 하지 않았다면 볼 일도 없었을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단조롭기 그지없는 필자의 삶에서 다양한 성격, 직책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듣는 건 정말 신선한 일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취재는 또한 기자에게 정말 스트레스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사는 혼자만 노력한다면 만들어낼 수 있지만, 취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취재원은 연락에 빠르게 답하지 않으며 취재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거절당할 때도 있으며 가끔은 기사 자체를 싣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기자가 아닌 학생으로 보기에 초면에 반말을 듣고 아랫사람 취급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취재원들도 똑같은 학교 구성원이고 그들 역시 치열하고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취재’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무겁게, ‘학생 기자’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가볍게 다가가기에 기자를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취재원에게 변화를 부탁하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감수해야 할 일이며 받아들이고 오히려 제가 변화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는 ‘제 일’이기에, 누군가의 변화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응은 그들이 아닌 저의 몫임이 분명합니다. 잘못이 굳이 있다면 취재원들보단 저에게 있겠죠.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가끔은 아쉬움과 서운함이 몰려옵니다. 제가 아직 성숙한 기자가 되지 못했다는 증거겠죠. 좋은 기자가 되기엔, 저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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