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스테이트 킬러’에 대한 이야기를 아십니까? 1970년부터 1980년까지 최소 12건의 살인과 50건의 강간을 저지르며 미국 전역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미국의 연쇄 살인범입니다. 골든스테이트 킬러가 악명 높은 이유는 흉악한 범죄 수법과 더불어, 42년동안 신원이 알려지지 않았다는데 있었습니다. 2016년, DNA 분석을 통해 유력 용의자를 체포하였으며, 그가 전직 경찰이었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한번의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한 미제 연쇄 살인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30여 년 전, 경기도 화성시 역시 한 명의 악마로 인해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이 악마는 10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목숨을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빼앗아갔습니다. 속옷을 안면에 씌우거나, 음부에 복숭아 9조각을 집어넣는 등 엽기적인 범행 방식으로 전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2003년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 송강호 주연의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도 많이 알려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경찰 수뇌부가 직접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200만에 가까운 병력이 투입되고 수만 명의 용의자가 수사를 받았지만, 여전히 범인을 찾을 수 없었고, 2006년경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장기 미제사건으로 영영 남는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8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연쇄살인사건 피해자 여성의 속옷에서 획득한 DNA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거나 출소한 전과자들의 DNA와 비교 및 대조하던 중 일치하는 판정을 얻어낸 것입니다. 놀랍게도, 용의자는 청주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이상 부산교도소에서 이미 복역 중인 죄수 이춘재였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이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온 국민을 공포와 분노에 몸서리치게 한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이미 수감시켜 놓고도, 수 십년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미제사건 목록에서 지우지 못하고 미스터리화 시켰다는 점이 참 허탈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진범을 알아보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수사 과정 및 방향의 부실함 때문이었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청주 처제살인사건의 소름 끼치도록 유사한 살인 방법과 시체 유기에서의 연관성, 과거 알려졌던 범인의 혈액형(B)과 현 유력 용의자 혈액형(O)의 불일치성, 오랜 기간 화성에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혈액형 불일치로 인한 이춘재의 당시 용의선상 제외 등이 그것입니다. 사건 당시,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DNA 분석기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용의자를, 사건 직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좀 더 일찍, 특정할 많은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수사 시스템상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돌아보니 장기 미제사건은 범행의 치밀함과 증거의 부족보다는, 치밀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이루어졌던 수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외에도 미제사건으로 포장된 잔혹한 범죄들이 아직, 여전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개구리 소년 살인 사건)’,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날 쾌재를 부르며 기쁨에 울부짖었을 범인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찾았다고 축배를 올릴 때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더 이상 앞으로는 미제사건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이미 ‘만들어진’ 미제사건들의 범인을 잡아 그들이 당연히 치러야 할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손바닥을 하늘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우리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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