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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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 박재균 기자
  • 승인 2019.09.1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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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 기자)

언어가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던 사람 모두가 천재지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언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는 현대에 와서 언어의 소멸 속도가 전례가 없이 빨라졌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또한, 언어의 보존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왜 그럴까? 그리고 사라지는 언어가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어떤 문화권이 지구 저편에 있는 이질적인 문화권과 접하게 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문화의 접촉 중 문화 흡수는 언어의 쇠퇴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 문화가 좀 더 지배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특성을 잃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구성원들이 새로운 행동 양식을 받아들이며 원래 언어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가지 단계를 밟으며 진행됨을 알 수 있다. 첫 단계에서는 지배 언어를 말해야 한다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이 가해진다.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개명과 같은 하향식 압력일 수도 있고,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있었던 영어 공용화 이슈처럼 소속 사회의 유행이나 동류 집단의 압력 형태를 띠는 상향식 압력일 수도 있다. 두 번째 단계는 병용 단계이다. 압력에 못 이긴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를 점점 능숙히 구사하는 과정이다. 대개 기존의 언어가 새로운 언어에 자리를 내주고,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세 번째 단계, 언어의 소멸에 이르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폭력성을 함축하기도 한다. 유럽과 아프리카, 미국과 인디언, 일제강점기 등 세계의 역사에서 그 예를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들을 계속 들여다보면, 19세기의 제국주의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 세계화와 개발도상국의 도시화까지 비교적 최근의 기류에 의해 발생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시화나 세계화 같은 최근의 경향을 비난하거나 매도할 수는 없지만, 이에 의한 언어 소멸은 인재이고, 언어의 생존에 가장 치명적이다. 

 

언어의 멸종을 막아야 하는 이유

언어가 종전에 없던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언어가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사라져도 되는가? 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논쟁은 다수 대 소수의 도식으로 이해되는 많은 사회문제와 닮아있다. 예를 들어, 멸종 위기 동식물에 대해서 어떤 이는 자연 선택의 논리에 의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이 멸종하는 것에 간섭해선 안 된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이는 한국의 방언은 의사소통을 힘들게 하니, 구어에서도 표준어로 통일해야 한다 주장하기도 한다. 전자의 논의에는 다양성 자체가 주는 이익, 후자의 논의에는 방언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역사성을 재고해보면, 다른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죽어가는 언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멸종위기 종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보통 생태학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멸종위기 종은 개개의 생물 종들이 그 자체로 흥미가 있거나 학문적인 가치가 있어서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가 시사하는 바는 모든 생물이 상호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네트워크를 통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생태계 내에 있는 어떠한 요소라도 손상을 입으면, 전체 시스템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장 튼튼한 생태계는 가장 다양한 생태계이다. 언어의 네트워크도 생태계와 같다. 언어의 다양성이 무너지면 인류가 참조할 지적 기반이 점점 줄어들고 결국 인류의 적응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아메리카 언어학회에서 1994년에 내놓은 정책 발표문은 이 개념을 좀 더 확장한다. ‘인간의 언어 구조가 인간의 지적 성과를 상당한 수준까지 보여 주는 증거물이라는 점에서 생물 세계의 유전적 다양성 손실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언어를 지식의 보고로 보는 관점도 합당하지만, 언어를 사고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언어학 연구자 조프 포그슨은 “우리가 번성하려면, 다중 언어 병용에서 오는 사고의 교배 수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병용에서 오는 사고의 교배 수정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단일 언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엄격하게 단일 언어를 쓴다 하기 힘들다. 과거 다른 문화권에서 빌려온 낱말이 수많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접촉으로 인한 새로운 어휘들이 언어를 더 다양하고, 방대하게 만들었다.

 

언어가 만드는 양면의 정체성

공동체가 곧 언어를 만든다. 원래 어딘가에서 빌려 쓰던 언어는 세세한 환경에 의해 계속 달라지고 그렇게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진다. 반대로 언어가 새로운 문화권을 만들 수도 있다. 언어와 인류의 관계는 한 방향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한 언어를 쓰는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은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과 신변잡기를 공유하며 결속력을 다질 수 있다. 혹은 특정 언어를 쓰지 않는 사람이 그 공동체와 조우했을 때, 공동체가 그를 배척하기도 한다. 이러한 동질감과 배척의 양면성으로 인해 단체의 소속감이 형성된다. 언어는 개인이 특정한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즉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그런 견지에서, 언어의 소멸은 즉 한 언어권의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들어주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이다. 공동체가 와해되고, 개인은 말살된다. 예를 들어, 방언을 쓰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방언을 그만 써달라는 말을 듣는다면 화가 날 것이다. 방언을 쓰지 말라는 요구가 얼토당토않게 느껴지는 건 방언 화자의 정체성에 칼날을 들이댄 셈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소멸은 방언 금지보다도 더 심각하게 작용한다. 

 

언어 위험도 추산의 어려움

수많은 언어가 소실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들을 보존하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통계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언어의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는 것과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은 아예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의 위험도를 밝히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500명이 거주하는 시골 안에서 400명이 쓰는 언어와 300,000명이 거주하는 국제적인 도시 속에서 240,000명이 쓰는 언어 중 무엇이 더 위험할까? 어느 순간부터 500명이 사는 시골에서 이촌 향도 현상이 심해져 모든 젊은 세대가 도시로 빠져나간다면 그 언어의 위험도는 얼마나 될까?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태평양의 한 섬에서 500명이 사용하는 언어와 급속도로 부흥하고 있는 도시에 둘러싸인 한 공동체에서 500명이 쓰는 언어 중 무엇이 더 위험할까? 사용자 수가 같은 언어라고 해서 똑같은 위험도를 점유하는 것이 아니며, 사용자 수가 더 많은 언어라도 더 위험할 수 있다. 즉, 사용자 수만 놓고 봐서는 언어의 위험도를 제대로 추산할 수 없다. 

머베이 원어 연구소의 지역 총괄 관리자인 마리 라이드웬은 언어의 위험도에 대해서 이러한 글을 쓴 적 있다. “언어의 손실은 어떤 개념이나 추상의 손실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동을 바꾸어 자신의 언어를 세대 간에 전달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언어가 위험한지 밝히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통계만을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그들의 환경, 그들의 생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시사한다. 

 

구체적 사례에서의 위험도 추산

원주민 인류학 연구자인 메리 제인 노리스는 그의 논문 <Canada’s aboriginal languages>에서 1981년과 1996년 사이에 캐나다의 원주민어 50가지 중 대부분이 쇠퇴하고 있음을 보인 적 있다. 하지만 정작 15년 동안 토착 언어를 모어로 쓴다고 신고한 사람 수는 24% 증가했다. 이 통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캐나다의 원주민어는 부흥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달랐다. 특히, 언어 사용자의 연령별 경향은 꾸준한 감소하고 있었다. 언어 인구의 평균 연령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어가 사멸의 길로 나아가는 중이라는 강력한 지표이다. 또한, 5세 미만의 어린이 중 91%는 가정에서 모어를 쓰나, 이들이 10대 후반에 이른 1996년에는 76%로 줄었다. 유아는 집에서 쓰는 언어를 그대로 배우고, 쓰기 때문에 가정에서 어떤 언어를 쓰는지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해 취업 시장에 진입하는 초기나 결혼 이후에 언어의 손실이 가장 두드러졌다. 20~24세 여성 74%가 토착 언어를 쓰고 있었으나 이들이 보통 결혼한 후인 15년 뒤에는 평균 45%로 떨어졌다. 그들이 이룬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더더욱 기존의 언어를 접할 기회로부터 차단된다. 결론적으로, 캐나다 원주민어는 사회로 진출하는 세대에게서 잊히고, 새롭게 태어난 다음 세대에게서도 잊혀지는 이중의 위험에 처해있다. 

이를 보면, 모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단순히 늘어났다고 언어가 소멸로부터 안전한 것이 아니며,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생활양식을 면밀히 알아야 비로소 언어의 위험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위험도를 추산하는 작업은 시간이 걸리고, 완벽히 정확하기 힘들다.

앞으로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언어가 죽음을 맞이할까? 정확한 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례가 없는 속도로 수많은 언어가 죽고 있으며, 지금이 이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환기할 마지막 적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9년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 토착어의 해이다. 2019년이 마지막 적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관심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국제사회가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은 아닐까?

 

참고문헌 | 
<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이론과실천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시정곤 외 4인, 한겨레출판
<에코랄리아스 : 언어의 망각에 대하여>, 대니얼 헬러-로즌, 문학과지성사

자문 | 
KAIST 인문사회과학부 시정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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