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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가장 가슴 아픈 역사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을 성 노리개로 착취한 그 끔찍한 사실보다도 더 국민들을 슬프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한 일본계 미국인이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시작했다. 영화 <주전장> 또한 이제 시작이다. 

영화는 2015년으로 돌아가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회의를 끝내고 한국 정신문제대책협의회 쉼터에 찾아간 당시 임성남 외교부 1차관과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의 대면을 보여준다. 이용수 할머니는 울분을 토하며 왜 역사의 산증인인 우리와의 사전협의가 없었냐고 임 차관에게 울분을 토했다.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다. 

영화의 목표는 위안부 할머니의 삶과 역사를 조망하며 과거 일본군의 잔악한 실태를 밝히는 데에 있지 않다. 오히려 위안부의 역사가 과장되어 있다 주장하며 가해자로서의 역사적 책임을 덜고자 하는 일부 일본 우익들, 수정주의자들과의 인터뷰가 이 영화를 견인해나간다. 그들의 주장과 위안부를 위해 힘쓰는 단체의 주장을 조명하며, 영화는 결국 토론을, 주전장을 다루길 택했다.

수정주의자들은 위안부가 강제성이 없었고 아주 큰 돈을 모을 좋은 기회라 많은 여성이 자발적으로 지원했다는 점,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점,  당시 일본 법률상 불법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위안부 문제를 축소하려 든다. 감독은 관련된 문헌을 다시 읽거나 당시의 국제법 등을 참조하며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논리를 하나하나 논파한다. 수정주의자들의 논리는 대개 공식적으로 발표된 숫자가 잘못됐음을 집요하게 주장하거나, 기만적인 말장난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위안부의 강제적인 징용을 부정하는 수정주의자들은 거부 의사를 표명하는 여성들을 강제로 포승줄에 묶어서 데려간 것이 아니라, 가족들을 먹여 살릴 일을 준다는 등의 기망과 사기, 회유 등에 넘어간 여성들이 위안부를 이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말장난을 하더라도 위안부의 강제징용이 가려지지는 않으며, 전쟁 당시 일본군의 몰도덕함과 국제법 위반 여부가 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감독은 수정주의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계속 강조한다.

이러한 간파가 끝나고 나서야, 영화는 좀 더 직접적인 설득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일본의 집권당인 자유민주당과 일본 최대의 우익 회의인 일본 회의를 다루며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과오를 지우려고 하는 아베 정권의 노력이 결국 군국주의로의 회귀와 재군비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영화 <주전장>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가슴 아픈 문제와 가까운 미래에 일본이 이루려 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연결한다. 수정주의자들의 논리가 격파당함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던 관객으로서는 또다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는 사실관계가 꽤나 명확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결국 정치와 사상의 첨예한 각축장이 된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 일본의 군국주의,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들과 치뤄야 할 싸움이 아직도 산적해 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안부 생존 할머니가 이제 20명이 되었다는 뉴스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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