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제4회 심의회의를 통해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이하 R&D) 예산 배분·조정안을 의결하고 정부 R&D제도 혁신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본지 521호, <33년만의 R&D 예산 삭감…기초연구, 출연연 예산 포함해 5조원 이상 삭감>) 그 결과 종전 31조 1,000억 원 규모였던 R&D 총 예산이 16.6% 삭감됨에 따라 약 25조 9,000억 원으로 책정되었고 사회 전반에서 성토의 목소리가 지속되었다. 특히 석·박사 인력을 중심으로 인건비 삭감에 따른 불만이 확산하는 한편, 이 같은 조치가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귀결할 것이라는 담론 또한 제기된 바 있다. 인터뷰에 응한 익명의 학우는 “당장 연구비가 넉넉하지 않은 연구실을 중심으로 인건비 삭감이 진행되고 있다. 정부 사업에 편성된 예산이 줄어들면 선택지는 연구 인력 감축 또는 인건비 삭감 둘 중 하나 아니겠냐”라며 이공계 전반에 팽배한 위기감을 개괄했다. 실제로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지난해 10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인 교수 552명 중 연구실 내 대학원생 수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이 73.81%, 또한 인건비 삭감 등 처우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이 77.11%에 달해 위기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공계 한파,‘일시적’이 아닌 장기적 암초 될까

한편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학교의 경우 2022년 대비 예산 삭감액이 349억 원으로 나타나 각각 315억 원과 57억 원 규모의 예산 삭감에 직면한 서울대학교와 포항공과대학교보다 그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대학원생 인건비의 경우 국가연구개발과제와 사기업에서 수주한 과제에서 상당 부분을 충당하는 만큼 당분간 예산 삭감의 여파가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긴축 재정이라는 기치 하에 한 철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의도라고 보기엔, 이 같은 조치가 미칠 사회 전반의 영향이 막대하다는 데 있다.

일례로 수년간의 장기 연구가 필요한 프로젝트의 경우 정부의 R&D 예산 변동 추이에 맞춰 계획을 수립했으나, 갑작스러운 삭감으로 인해 프로젝트 전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정부출연연구원에 할당된 예산 삭감은 결국 신규 인력의 채용 규모가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이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탈이공계’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우수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도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4년 25조 9,000억 원, 2025년 27조 6,000억 원, 2026년 29조 5,000억 원을 거쳐 2027년에 이르러서야 R&D 예산이 전년 수준인 31조 6,000억 원으로 회복될 예정인 만큼 이공계는 구조적 한파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카르텔 혁파와 비효율 제거 외치는 정부, 근거는 있나

정부가 R&D 예산 삭감을 진행하며 내세운 거시적 명분은 긴축 재정이다. 그러나 경기 한파를 극복하기 위한 지출 조정이라고 보기엔 2024년 정부 예산안의 총지출 규모가 2023년 638조 7,000억 원에서 656조 9,000억 원 규모를 증가했을뿐더러, 비록 화폐 가치 하락을 고려한 최소한의 예산 증가라 할지라도 타 분야에 대비하여 하락폭이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 이공계의 입장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분야별 예산 증감에 따르면 외교통일(19.5% 증가), 보건복지고용(7.5% 증가), 교육(6.9% 감소)에 비하여 연구개발 분야의 예산은 16.6% 감축되어 사실상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재정혁신의 주요 목표는 약자복지 강화, 미래준비 투자, 양질의 일자리 창출, 국가의 본질 기능 수행 뒷받침의 4가지인데, 정작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 특성상 차세대 기술 개발을 위한 이공계 분야 투자가 필수적임에도 이를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하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일례로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의 경우 편성된 재정의 65%를 상반기에 집행한다고 밝히는 등 단기간의 경기 회복을 위해 근시안적 정책을 펼치는 동안, 정작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할 투자는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편성된 예산조차, 정작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지속적으로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온 학생연구자가 직격탄을 맞는 모순적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일례로 R&D혁신법이 지난해 3월에 발효함에 따라 학생연구원의 인건비 기준이 약 30~50만 원 가량 인상된 바 있으나, 인건비 하한선이 조정되지 않은 채로 예산안 삭감까지 진행되어 사실상 ‘약주고 병주는’ 유명무실한 개선책이 아니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일명 ‘카르텔 몰이’에 대한 분노도 확산하고 있다. 이공계 처우 개선을 줄기차게 외쳐온 정부가 갑작스레 입장을 선회하며 카르텔을 척결하지 못한 책임을 이공계 전반에 지우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투자 규모에 대비한 논문 발표 수나 기술 상용화가 부족한 점을 들어 카르텔이라고 한다면 원천기술 부족과 기초과학 부실로 늘 지적 받는 국내 과학계의 연구 동기가 더욱 약화될 것’이라 언급하며 카르텔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524호에서 진행한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김소영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R&D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도 큰 문제이지만, 연구자들의 사기(morale)가 확 떨어졌다”며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정의 핵심으로 삼겠다고 해놓고, ‘R&D에 카르텔이 있다’, ‘과학자들이 이익 집단이다’라고 하니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것인지 일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기사 본지 524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김소영 교수“R&D 예산 조정 필요했지만 연구자 설득 부족”>)

이공계 예산을 4조 6,000억 원 가량 최종 삭감한 한편, 지난 6일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을 2,000여 명 늘려 5,058명으로 증원하겠다고 밝혔다. 관련하여 종로학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의대 입시 준비생은 전년 9,543명에서 올해 15,851명으로 약 6,000여 명 증가하리라 예상되는 등, 자연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공계 이탈이 더욱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지역 간 의료 불균형과 의료 분야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논의에서도 정작 ‘탈이공계’ 현상부터 우려해야 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공계 박사의 학·석·박사 학위 취득에 10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 현실 속에서, 꿈을 좇으라고 강압하기 이전에 그렇지 못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공계 기피 현상은 심화할 따름이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