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산 중합효소의 ‘착각’ 이용해 논리 게이트 구현하다

금속 이온에 의한 비 상보적 결합 통해 분자 수준의 회로 소자 개발 방향 제시

2011-02-13     배수정 기자

생명화학공학과 박현규 교수팀이 금속 이온으로 핵산 중합효소(DNA Polymerase)의 활성을 조절하고, 이를 이용해 분자 수준의 논리 게이트를 개발했다. 논리 게이트란 논리 연산을 실행할 수 있는 디지털 회로의 기본 요소다. 이번 연구로 기존보다 더 미세한 회로를 제작할 수 있으며, 분자 수준의 컴퓨터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연구는 화학 분야의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게재되었으며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구조에 따라 특정 염기끼리 결합해

DNA는 뉴클레오티드라는 단위가 반복되어 이루어진 고분자 물질이다. 뉴클레오티드는 염기, 당, 인산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가 서로 다른 뉴클레오티드를 만들어낸다. 주형 DNA로부터 새로운 가닥이 만들어질 때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만 쌍을 이루고, 이를 상보적 결합이라고 한다.
 

특정 금속 이온 존재하면 염기 간에 비 상보적 결합 일어나

기존에는 핵산 중합효소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염기서열이 언제나 주형 DNA의 염기서열에 상보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박 교수팀은 이번 연구에서 특정 금속 이온이 존재할 때 그림 1과 같이 티민-티민, 시토신-시토신의 비 상보적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 그림 1. 티민-티민(T-T), 시토신-시토신(C-C)의 비 상보적 결합. 특정 금속 이온이 존재하면 티민-티민, 시토신-시토신이 비 상보적 결합을 한다 / 천민지 기자

DNA 복제 과정에서 수은 이온(Hg2+)을 첨가하면 티민-티민이 안정적으로 비 상보적 결합을 하게 된다. 이때, 핵산 중합효소는 이를 상보적 결합으로 착각해 핵산 증폭반응이 이루어진다. 위와 비슷한 방법으로, 은 이온(Ag+)은 시토신-시토신과 상호작용해 안정화된 비 상보적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이에 따라 핵산이 증폭된다. 이는 금속 이온에 의한 안정화된 염기쌍 유도를 통해 핵산 중합효소가 이 인공적인 염기쌍을 수용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즉, 특정 금속 이온을 이용해 핵산 중합효소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 상보적 결합을 논리 게이트로 이용

박 교수팀은 나아가 금속 이온과 염기쌍의 결합을 DNA 기반 바이오 논리 게이트의 입력신호로 이용했다. 박 교수팀은 ‘YES’, ‘PASS1’, ‘AND’, ‘OR’라는 네 개의 불린(Boolean) 논리 게이트를 만들었다. 이 게이트는 금속 이온의 존재 여부를 입력 신호로, 핵산 증폭 여부를 출력 신호로 한다. YES 게이트와 PASS1 게이트는 한 개의 입력을, AND 게이트와 OR 게이트는 두 개의 입력을 받는다. 입력 신호가 한 개이면 한 가지의 금속 이온을, 두 개이면 두 가지의 금속 이온을 사용한다.  

▲ 그림 2. YES 게이트의 연산. 수은이 존재하지 않을 때(입력 0) 결과 값이 없고, 수은이 존재할 때(입력1) 결과 값이 나타난다(출력 1) / 천민지 기자

그림 2와 같이 YES 게이트에서 수은 이온을 넣으면(입력 1) 핵산이 증폭되므로 출력이 1이 되며, 수은 이온을 넣지 않으면(입력 0) 핵산이 증폭되지 않으므로 출력은 0이 된다. 다른 세 가지 게이트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결과를 도출한다. PASS1 게이트는 입력에 관계 없이 1을 출력한다. AND 게이트는 두 개의 입력이 모두 1일 때만 1을 출력하고, OR 게이트는 적어도 하나의 입력이 1이면 1을 출력한다.  


다중 게이트로는 더 빠른 연산 처리 가능

기존 실리콘 기반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를 조립한 집적회로로 게이트를 구성하는 반면, 이번 연구에서는 DNA 복제 과정을 통해 게이트를 만들었다. 이를 이용하면 기존 탑-다운 방식보다 더 집적된 회로를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박 교수팀의 박기수 학우(생명화학공학과 박사과정)는 “이 연구에서는 PCR을 이용해 논리 게이트를 구현했기 때문에 소량의 DNA를 이용해 증폭된 신호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며 “이번에는 단일 게이트만을 구현했지만, 앞으로 여러 게이트를 연결해 더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