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우수한 벤처기업인들 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벤처 창업의 요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벤처기업의 산실, KAIST

당시 우리 학교는 현장을 중요시하는 교과과정을 채택하고 있었고, 산업계와의 소통을 중요한 개념으로 삼았다. 이에 학생들은 산학협동 프로젝트로 자연스럽게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역으로, 프로젝트를 하며 현장감도 익히면서 새로운 연구 테마를 잡아낼 수 있었다. 즉, 왕성한 산학협동 활동의 결과가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에 초창기 벤처기업 500여 개 중 약 100개 기업의 사장이 우리 학교 출신이었으며, 이들 기업이 그 시대의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우리 학교 교육 철학이 지금의 벤처기업인에게, 그들을 있게 한 도전 정신을 가르쳐 준 덕분이다.


실제로 우리 학교 실험실에서는 많은 창업이 이루어졌으며, 이중 약 80%가 당시 전산학과 이광형 교수팀, 전기및전자공학과 박송배 교수팀 등 약 20%의 실험실에서 나왔다. 이민화 회장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박송배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약 10건에 가까운 창업이 이루어져, 당시 학내에서 가장 많은 수였다. 이중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만 메디슨, 터보테크, 파워텍 등 3개가 있다. 이 회장의 실험실 후배였던 오스테오시스 안영복 사장은 프로젝트 위주의 연구실 분위기뿐 아니라 기숙사 생활로 인해 수시로 토론할 수 있는 문화, 사업하는 선배들을 통한 간접 경험 등을 우리 학교의 강점으로 꼽았다. 케이맥 이중환 사장과 뷰웍스 김후식 사장도 동문간의 네트워크와 인적 자산 등이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KAIST가 없었다면 내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박현제 전 솔빛미디어 사장은 “국비장학금의 전액 지원은, 우리나라 산업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는 임무를 국민들이 부여한 것이다”라며 사명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현재의 벤처 KAIST

우리 학교를 졸업해 과거 벤처 신화를 이룩한 기업인들은 현재 후배들의 벤처 진출이 현저히 줄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로 벤처계에서 우리 학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2%로 감소했다. 뷰웍스 김후식 사장은 “학생들이 국가적인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이나 사명감도 부족하고 모험을 감수할 용기도 없다"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오스테오시스 안영복 사장은 균형있는 리더십을 위해 철학, 경영학 등 인문사회분야 경험을 강조했다. 또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안정적인 직업을 추구하기 보단 도전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민화 회장은 산업계와의 거리가 신규 창업의 아이디어 창고를 비우게 했다고 말했다. 또한, 학문적 수월성과 기업가 정신이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며, 두 가지가 결합되어 균형 있게 발전하는 것이 우리 학교가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제시했다. 교육적인 면 외에도 “실패에 대한 지원이 없는 사회시스템이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었다. 도전을 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라며 지금과 같은 체제에서는 창발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케이맥 이중환 사장은 “대기업에 가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좋은 대우를 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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