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우리 학교는 벤처산업을 최초로 주도한 1세대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기업인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에서 벤처기업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과기회가 확장해 설립된 벤처기업협회는 한국벤처산업의 역사와 그 시작을 같이했다. 198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역사를 우리 학교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다

벤처, 그 새로운 영역의 지평을 열다

벤처(venture)란 영어로 모험을 뜻하는 단어다. 벤처기업은 따라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해 사업에 도전하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을 말한다. 벤처기업은 활동시기에 따라 크게 3세대로 나눌 수 있다. 1980년에서 1985년 사이에 등장한 ‘초기 벤처'를 1세대, 1985년에서 1995년까지의 ‘선도 벤처'를 2세대, 그 이후에 탄생한 벤처를 3세대로 분류한다.


1980년대 초반, ‘벤처'라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시절에 1세대는 벤처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들 벤처의 원조격은 큐닉스컴퓨터의 이범천 회장이다. 이 회장은 우리 학교를 1기로 입학해 1기로 학위를 받았다. 그는 당시 유망직이었던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 벤처산업의 역사를 쓰는 데 기여했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현 명예회장)도 1세대로, 한국 벤처신화를 주도한 리더로 일컬어진다. 우리 학교 전기및전자공학과 박사 출신인 이 회장은 전자의료기회사 메디슨의 창업자로, 벤처기업협회라는 조직으로 벤처의 역사를 창조했다. 이 회장은 현재 우리 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다. 이외에도 벤처기업협회 제3대 회장인 비트컴퓨터의 조현정 사장, 반도체 검사장비업체 미래산업의 정문술 사장 등도 역시 1세대다.


벤처 2세대의 막이 열린 때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이 제정되면서 창업투자회사의 투자가 시작된 시기다. 핸디소프트 안영경 사장, 터보테크 장흥순 사장, 한글과컴퓨터 이찬진 사장 외 다수가 있다. 안 사장과 장 사장은 각각 우리 학교 전산학과 석사, 전기및전자공학과 박사 출신이다. 이들 1세대와 2세대 벤처기업들은 이후 벤처붐을 조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후배 기업들은 이들을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다.
IMF세대로도 불리는 3세대는 벤처붐이 일기 시작한 때 창업에 뛰어든 세대다. 이들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며 이를 한걸음 더 도약하는 기회로 삼았다.

 

과기회를 토대로 탄생한 벤처기업협회

벤처 1세대와 2세대가 새로운 영역의 지평을 열었다면, 본격적인 벤처의 역사가 펼쳐진 때는 1995년 중순부터다. 이때부터 ‘벤처군단'이 태동한다. 이 벤처군단의 중심에 우리 학교가 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후 창업한 공학도들이 조직한 ‘과기회'가 바로 훗날 설립된 벤처기업협회의 전신이다. 우리 학교 1기 출신인 큐닉스의 이범천 사장이 과기회 회장을 맡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자금 조달 등 경영 활동에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에 대해 회원들과 고민을 같이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기술 뿐인 중소기업들이 사업을 하기에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들은 자금난 뿐 아니라 인력난에도 허덕였다. 많은 인재들이 사업을 선택해 힘든 길을 걷기보다는, 대부분 안정적인 대학이나 국가지정 연구소, 대기업 연구소 등을 찾았다. 그러나 과기회 회원들은 벤처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의 희망이라는 확신을 갖고, 벤처기업이 한국 경제를 짊어질 수 있게 하려면 개인의 힘보다는 조직이라는 구심체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후배들에게 더 나은 사업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벤처기업협회다. 당시 메디슨의 이민화 사장을 회장으로 한 벤처기업협회는 1995년 10월 26일, 벤처기업협의회(가칭) 발기인대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벤처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벤처기업협의회는 발기인대회가 있은 후 35일 만에 열린 벤처기업협회 창립총회 후, 사단법인 벤처기업협회(KOVA)로 정식 명칭을 결정한다.

 

▲ 1995년 12월 2일 열린 창립총회에서 이민화 초대 회장과 임원들이 선출되었다.

벤처기업협회의 화려한 업적

벤처기업협회는 벤처기업의 경영여건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정책 과제를 본격적으로 제시했다. 협회의 출범 이후 벤처산업 성장에 필수적인 제도적 장치 등 각종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이들은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개발해 정부와 정치권에 제안했다.


1996년 7월 2일에는 증권업협회가 운영하는 코스닥이 개설되었으며, 1997년 8월 28일에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었다. 이 특별법의 제정은 한국 벤처기업사의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특별법 제정에 따라 주식액면가가 하향 조정되어, 당시 창업자들이 벤처기업 설립을 위한 자금 마련이 한층 쉬워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광형 당시 전산학과 교수가 크게 기여했다. 현재 바이오및뇌공학과에 있는 이 교수는 당시 “미국의 엔지니어들이 마음 놓고 기술의 사업화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기술을 자본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때문이었다"라는 논조의 글을 기고하는 등 액면가 하향 조정을 위해 힘썼다. 협회는 무엇보다도 자금 조달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실제로 벤처캐피탈 분야가 성장하고 코스닥을 비롯한 벤처기업의 자금조달 방안이 다양해졌다.


협회는 또한, 사회전반에 걸쳐 벤처산업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1996년 11월부터는 각 대학을 돌며 창업로드쇼를 개최했다. 로드쇼는 ‘벤처 비전 2005'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 중 가장 활발한 사업으로, 1990년대의 ‘벤처 새마을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서울대에 이어 우리 학교와 포항공대, 인하대 등 주요 대학에서 개최된 창업 로드쇼가 전국적인 성공을 거두자, 대학가에는 창업동아리가 잇따라 결성되었다. 이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다른 대학의 동아리원을 모아 ‘한국대학생 벤처창업연구회(KVC)'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한국벤처산업발전사

95.10.26      벤처기업협의회 발기인 대회
95.12.2        벤처기업협의회 창립총회, 이민화 회장 및 임원 선출
95.12.18      사단법인 등록 허가
96.7.2         코스닥시장 개설
96.10.4       1996 2차 벤처포럼, 벤처기업 비전 2005 발표
96.11~        벤처창업 로드쇼 개최
97.8.28       벤처기업 육성 특별법 제정
98.1.26       벤처업계, 경제부총리 면담
98.6.12       벤처기업협의회 실리콘밸리 지부 결성식
98.6.25      코스닥 활성화를 위해 재정경제부와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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