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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냐 무엇이냐
[316호] 2009년 03월 11일 (수) 김은희 기자 hou-hou@kaist.ac.kr

격정과 광기의 예술가

한국에서 미술 관련서를 통해 가장 많이 다룬 미술가는 아마 빈센트 반 고흐일 것이다. 반 고흐에 대한 책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반 고흐 관련서라면 나올 만큼 나왔다 싶은데도, 여전히 그에 대한 새로운 책이 나오고 있다.
 반 고흐는 격정과 광기에 사로잡혀 굴곡 많은 삶을 살았고,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살아 있던 동안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는데, 죽은 뒤 그의 작품값은 차근차근 오르더니 마침내는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반 고흐를 미술가의 대표적 존재로 여기고, 미술가는 마땅히 반 고흐 같은 성격과 운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 고흐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미술가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살아서나 죽어서 무명으로 남는 미술가가 숱하게 많을텐데 살아있을 때 별 볼 일 없다가 죽어서는 미술사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으니, 오히려 매우 희귀한 사례로 여겨야지 그를 일반적인 유형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반 고흐는 스스로 한쪽 귀를 잘랐고,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실제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황도 분명치 않고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일단 자해하려는 성향이 있었다고는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자신의 사랑을 거부하자 스스로의 손을 촛불로 지지기도 했다. 반 고흐 외에도 고금의 예술가들이 벌인 소동과 사건을 책으로 다루자면 몇 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임무인데 왜 자신과 주위에 대해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 호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 창조와 제작 과정에서 느끼는 압력 때문에 파괴적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자신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한껏 방종을 행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격정과 광기’라는 말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일상에서는‘깽판’과‘무능력함’으로 다가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술가들의 이런 깽판을 옹호하고픈 생각이 털끝만치도 없다. 그들은 예술가이기 전에 주정뱅이이고 무능력자일 뿐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음주 뒤에 저지른 말썽에 대해서도 이상할 정도로 관대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예술가들의 행태만 따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든 이가 시인이고 가수이며 행위 예술가이자 격투가이기 때문이다.

 

취화선


 임권택 감독이 지난 2002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취화선’은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이 미술가에 대해 품은 관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영화다. ‘취화선’에서 묘사한 장승업의 모습은 남아 있는 몇몇 기록에 기대어 짐작할 수 있는 그의 모습과 꽤 다르다.
 우선, 영화 속의 장승업은 가슴 속에 응어리가 가득하다. 원래 장승업은 술과 미녀가 있고 기분 내키는 대로 붓을 휘두를 수 만 있으면 속 편한 인물이었는데, 영화 속의 장승업은 채워지지 않은 갈망과 풀리지 않은 응어리를 쥐어 싸매고 산천을 주유한다. 임권택 감독은 마음 속의 응어리야말로 예술 창작의 동력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취화선’에서 장승업의 응어리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영화 속에서 장승업은 독창적인 화풍을 정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중국의 전통 회화와 뚜렷이 대비되는 조선 특유의 회화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수시로“달라져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하지만 화가는 독창적이어야 하고, 또 화풍을 일신해야 한다는 이런 관념은 다분히 서구적이고 현대적이다. 중국과 조선의 전통 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림이 앞선 화가의 그림과 비슷한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개성이나 독창성은 앞선 걸작들의 장점을 좇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겼다.
 김용준은‘오원일사’에서“장승업의 성격이 극히 소방하여 그림을 그리되 그림에 붙들리는 법이 없었다. 작품과 성과에 반드시 기대를 가지는 법이 없었다. [중략] 말을 그리다가 다리 하나를 잊고 안 그린 일이 있을지라도 무관심했고, 남의 청으로 꽃을 그리다가 도중에 무슨 일로 자리를 떠나게 될때면 꽃과 줄기만 그린 채 잎을 그려야 할 것은 그후 영영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라고 썼다.
즉, 장승업 본인은 태평하고 느긋한 성격이었다는 것인데, 영화에서 묘사한 장승업의 모습은 그 반대이다. 그는 종종 제어할 수 없는 격정에 휘말려, 천둥 번개가 치는 중에 소리를 지르며 길길이 날뛰곤 한다. 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벌컥화를 내기도 하고, 남이 칭찬한다 해도 제성에 차지 않으면 그림을 북북 찢거나 하는경우가 잦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장승업에게는 예술가 특유의 완벽주의와 강박증이 있었던 것이라고 단정하기 쉽지만, 이 역시 미술가에 대한 오늘날의 상투적인 관념이 투영된 것이다.

 

조용하지만 필사적인


 20세기 초에 파리로 모여든 예술가들 중하나였던 모딜리아니의 전기 소설에는 빈 캔버스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도 선 하나도 긋지 못하는 화가의 모습이 나온다. 한편,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뉴욕에서 작업을 하던 미술가들은 오후 세 시만 되면 단골 술집으로 모여들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스스로 방향과 과제를 설정해 창작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뎌내야 하고 그걸 견디지 못하면 종종 권태와 방황으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예술 창작의 비밀에 대한, 바꿔 말해 창의적인 예술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오래도록 계속되어 왔지만, 어느 것도 이 과정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창작자 자신도 제대로 설명하질 못한다.
 앞서 나왔던 영화‘취화선’에서 장승업이 방구석에서 뒹굴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면, 제자가 그림 주문이 밀려 있다며 얼른 그림을 그리라고 재촉한다. 장승업은“꼴려야 그리지 꼴리지도 않은데 그리냐? 이 놈아”라고 한다. 말인즉, 창작을 시작하고 계속하게 하는 어떤 계기, 어떤 방아쇠가 마음과 몸 속에서 당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순간 영감이 찾아오지 않게 되면 끝장이다. 오늘 그리는 그림이 저번에 그린 그림보다 시원치 않다는 것을 화가는 제 입으로 말하지는 못해도 스스로 너무도 분명하게 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 잭슨 폴록은 1950년 전후로 미국 최고의 화가 대접을 받았고, 그가 물감을 바닥에 닥치는 대로 흩뿌려서 그린 그림은 오늘날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여겨진다. 하지만 폴록 자신은 비 슷한 작업을 몇 년 간 계속하고 나니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주위의 평가도 점점 나빠졌다. 결국 폴록은 술에 만취해 자동차를 몰다 차가 뒤집혀 죽었는데, 이것이야말로 사실상의 자살이다.
 창작에 대한 압박감은 그처럼 심각하고, 그렇기에 스스로 예술품을 창조하려는 이들, 문인과 음악가, 미술가 등은 방황과 방종, 권태와 열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균형이 무너지면 창작도 없다. 정열과 광기, 활극으로만 보려 들어서는 창작의 비밀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많은 예술가, 화가와 문인은 창작의 열쇠란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작업 방식 그 자체라고 말한다. 아무리 무능력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그가 일정 기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았고, 그 균형점에 이르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예술가에게는 격정과 광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왜 비극적인 은둔자의 이미지를 예술가에게 덧 씌우는 걸까? 이런 태도는 예술이 다른 영역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생각, 바꿔 말해 예술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관념이다. 예술은 많은 경우 신비한 것을 추구하지만 예술 자체가 존재하는 기반은 전혀 신비롭지 않다. 하지만 기계적인 일상의 덫에 갇힌 시민들은 예술과 예술가에게 청량제 역할을 요구한다. 시민들은 문인과 화가들의 생산물을 통해 꿈을 꾸며 위안을 받기를 원한다. 문학은 어느 정도 그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미술이다. 현대미술은 너무도 난해해져서 이제는 의미를 파악할 수도 없고 작품 앞에 서 마음 편히 꿈을 꿀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술가의 이름에 매달리게 되었다. 미술 전시장에 들어가서 작품을 보는 대신 먼저 작품 한쪽에 붙은 이름표부터 본다. 작품의 제목과 그 작품을 만들었다는 예술가의 이름을 통해 이 난해한 작품을 이해하는 단서를 찾으려는 것이다. 예술가는 대개 처음에는 자기 자신보다 가치 있는 것을 창조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예술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이 소비되는 구조 안에서 예술가 자신의 이름보다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연식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일본의 우키요에와 양풍화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미술영화 거들떠보고서』『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를 썼고, 『무서운 그림』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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