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우리 학교를 빛낸 주요 연구 성과, 세상의 주목을 받다
상태바
80년대 우리 학교를 빛낸 주요 연구 성과, 세상의 주목을 받다
  • 김선린 기자
  • 승인 2011.03.13 2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각 보행 로봇의 개발

한국과학원과 기계연구소, 전자통신연구소 등 3개 기관의 로봇공동연구팀의 책임자였던 변증남 교수는 1987년부터 2년여 간 과학기술처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아, 스스로 목표점을 찾아 걸음을 옮길 수 있는 보행 로봇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로봇은 스테레오 시각장치와 패턴 인식기법, 여러 가지 센서를 이용한 피드백조절장치와 인공계획 기능 등을 갖췄다. 몸체무게 60kg에 4개의 다리를 가진 이 로봇은 당시 보행실험에서 분당 33cm의 속도로 평탄한 실험실 내부를 넘어지지 않고 오갔다고 한다. 이 로봇은 다리 하나에 2개씩, 모두 8개의 모터로 관절운동을 하며 시각 장치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시각 정보를 이용해 목표점까지 스스로 이동해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이 로봇은 위험한 장소, 작업 조건 등에서 인간을 대신해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한, 비록 속도가 느리고 직선보행밖에 하지 못하는 초기 작품이었지만 국내 최초로 스스로 걷는 기계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로봇연구개발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89년 7월 3일자 <매일경제>는 "걸어다니는 로봇이 국내 최초로 탄생, 지능형 로봇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라며 "변 교수팀의 연구성과는 선진국 간의 지능로봇 개발경쟁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튼셈이다"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이 연구에 뒤이어 1989년 9월부터 계단을 오르고 장애물을 피할 수도 있는 인공지능을 갖춘 다각보행 로봇의 개발에도 착수했다.
 

▲ 변 교수는 보행로봇을 개발해 지능형 로봇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 홍보팀 제공

지하탐사장비를 이용한 제4땅굴 발견

남북간 정보전이 치열했던 당시, 북한이 남침을 위해 4개 땅굴을 굴착했다는 추측이 있었다. 나정웅 박사는 '라지오비스'라는 첨단지하탐사장비를 설계, 제작해 1989년 말에 제4땅굴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다.

나 박사는 기존 장비로는 깊은 지하에 있는 땅굴을 찾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껴 1980년 지하탐사팀을 꾸려 1985년 마침내, 기존과 다른 원리의 탐사장비를 개발했다. 나 박사팀의 탐사장비는 땅굴이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위치에 시추 구멍을 뚫어 연속전자파를 쏘면 땅굴의 빈 공간에서 공진회절현상이 나타나는 원리를 이용했다. 실제로 나 박사팀이 개발한 장비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은 1987년으로, 지하탐사 분야에서 인정받던 노르웨이, 캐나다, 미국 등의 장비들과 함께 성능평가를 받아 자타가 공인하는 최우수 장비로 떠올랐다. 이후 이 장비는 땅굴탐사에 동원되었고, 지하 145m 깊이에서 강원도 약구의 제4땅굴을 발견했다. 나 박사는 이 장비를 통해 제4땅굴을 발견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 기술개량으로 땅속을 마치 CT촬영처럼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술도 발전시켰다.

나 박사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루클린 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로 31년간 연구를 계속했다. 현재는 KAIST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 땅굴은 북한이 기습작전을 위해 지하에 굴착한 남침용 군사통로이다

약물 검사를 위한 IOC 공인 획득

우리나라는 88서울올림픽 주최국으로서 참가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국내 기술진으로 검사하기 위해 1984년 9월, 한문희 박사를 소장으로 한국과학기술원 도핑컨트롤센터를 설립했다.

약물검사를 위한 정밀분석 연구시스템의 개발은 1984년 11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14억 원 이상이 투입된 대규모 국책과제였다. 센터 설립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으로는 도저히 올림픽을 치를 만큼 정확도를 유지할 수 없으니 외국기관에 용역을 주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약물검사 분야에서 낙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종세 박사가 실무책임자였던 도핑컨트롤센터는 단 한 차례의 시험으로 1987년 8월 국제올림픽 위원회(IOC)로부터 공인을 획득했다. 당시까지 세계 14개의 도핑연구센터가 IOC의 공인을 받았지만 모두 2~4차례의 재시험을 거쳐 합격했을 만큼 까다로운 시험이었다.

도핑컨트롤센터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기간에 약물검사를 통해 경험을 축적한 후 88서울올림픽대회에서 유도, 복싱, 양궁, 육상 등 23개 종목에서 1637건의 약물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스테로이드, 이뇨제 등 10건의 금지약물을 검출해 IOC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를 박탈하고, 5건의 출전자격 조치를 내리는데 일조했다. 이 센터는 올림픽이 끝난 후 도핑테스트 실력을 인정받아 IOC표준도핑컨트롤센터로 지정되었다. 이는 서독일, 동독일, 소련에 이어 세계 4번째였다.

▲ 벤 존슨은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나 약물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