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립 산업디자인학과 석사과정

"어은동 쪽 후문에서 만나요"
학교 식당 이외의 곳에서 식사를 하려 학교 밖으로 나갈 때, 학우들은 어은동 쪽 그 작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는 식당과 주점, 그리고 곳곳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이곳의 이름이 '인터내셔널 존'인 것을 생각한다면 뭔가 다른 것을 바랄 수도 있겠다. 이국적이거나 정말 한국적인 가게들 말이다.

2007년 경, 지역 신문에서 '인터내셔널 존의 조성계획'과 관련한 기사를 보고, 나름대로 독특하고 재미있는 곳이 생길 수도 있겠다고 기대했다. 그런데 기사 중에 '이태원을 능가하는'이라는 표현에서 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건축학과 3학년에 재학할 때, 이태원을 설계 장소로 1년간 분석한 경험이 있다. 분석한 바로는 임진왜란 전부터 이어진 외국 군대와의 역사, 대사관, 외국인 거주비율, 상권, 이태원의 넓이, 이슬람 사원을 포함한 복합적인 종교 시설 등은 그 지역만의 정말 특이한 것이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인터내셔널 존'이라고 부르는 어은동은 이태원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군부대 옆이 아니라 학교 옆이다. 사실 우리 학교 근처에 여러 대학교 앞 같은 대학가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대학생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서 외국인을 배려하고, 주변 지역 주민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교내 커피빈에 외국인 학우들이 써 놓은 '한국, KAIST에 와서 하고 싶은 일들'에는 친구 사귀기도 있지만,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다. 김치 종류별로 먹어보기, 한국어 실력 키우기, 여행 다니기 등이다. 이 학우들이 모국에서처럼 편하게 살기 위해 우리나라까지 왔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국인 학우를 위하는 인터내셔널 존이라면, 우선 한국적인 성격을 가지거나 한국에 대한 안내를 도와주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 학교 옆, 연구단지 안에 있다는 성격은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본래 지역문화라는 것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요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인가 변화를 할 수 있을 때, 미리 고민해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무질서하게 발전하기 이전에 여러 사람이 논의해 지역의 공통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은 재미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인사동 같이 고유의 지역문화로 시작된 곳도 충분한 논의 없이 진행되어 결국은 상업화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하자면, 첫째, 지역이 하나의 이미지를 갖기에는 어은동이 너무 작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한빛프라자와 궁동까지 포함한다면 대학가로서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둘째, 한 지역을 개발하는 과정에는 공무원이나 아이디어 제공자만이 아니라 영향을 받는 학우들과 지역 주민이 참여해야 한다. 또한, 서로 간에 활발하고 투명한 토론이 진행되어 좋은 아이디어를 나누고, 긍정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인터내셔널 존'인 만큼 지역의 외국인과  우리 학교의 외국인 학우를 위한 배려와 국제적 수준의 문화가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서는 토론의 방향을 제시해 줄 건축가나 디자이너 등 다른 전문가의 참여도 요구된다.

어은동의 현실을 바라보면 막막하다가도, 20년 후에는 어은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즐겁다. 요즘 세상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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