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진화 이론은 다윈이 처음에 주장했던 초기 모습으로부터 어떻게 변화했나? 다윈의 이론은 다른 과학 분야와 어떤 상호작용을 해 왔나? 진화생태학 강의를 맡은 생명과학과 정재훈 교수의 글을 빌려 진화론이 걸어온 길을 추적한다<편집자 주>

 

다윈과 멘델, 진화이론 확립의 기초가 되다
 백 년 전, 입에 은수저를 물고 세상에 온 다윈은 조울증이 있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분야에서 축복받았다고 할  있다. 시골의 농장에서 많은 것을 자유롭게 보고 느낄 수 있었고, 학교의 여러 현자로부터 최상의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의학, 신학 등을 공부하다가 싫으면 그만두고, 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등, 가진 택의 폭이 넓었다. ‘다윈의 불도그’라 불린 헉슬리를 비롯해 헤켈, 포크트 등은 저술과 강연을 통해 종교가들에 맞서 대신 싸워 주었고, 라이엘과 후커는 월레스와의 공동발표를 주선해 인생 최대 난관을 해결해 었다. 또,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는 그의 저서‘주노미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생명은 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상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반면, 멘델은 빈농의 자식으로 배고픔과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에 눌려 살았다. 그는 다윈의 지혜로도 이해하지 못한 유전의 법칙을 독자적으로 알아냈으나 별로 누린 바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실험 윤리 위반의 피의자로 굴욕을 당했다. 생전에 그리 즐겁지 않은 인생을 살았고, 다윈보다 13년 늦게 태어났지만 비슷한 때 죽었다.
 출생 배경과 인생 역정이 대조적인 만큼 다윈과 멘델은 생명을 관조하는 시각도 달랐다. 종의 기원의 핵심 주장은 자연선택에 의해 생물은 세대를 거듭하며 변한다는 점으로, 여기서 다윈은 생물의 변하는 속성에 주목했다. 반면 멘델은 형질을 지배하는 불변의 요소가 후대로 전달된다는 주장을 통해 불변하는 속성에 주목했다. 이 대조적인 두 가지 시각은 서로 보완을 통해 오늘날의 진화 이론을 확립하는 요소가 되었다.

종의 기원, 사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다
 다윈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에서 '변이를 수반한 상속(descent with modification)’을 통해 종(species)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했으며, 이들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진화의 증거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발표했다. 이 과정에 서 진화의 방법으로‘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주된 원동력으로 설명하고, 인위선택에 의해 부적합한 형질이 배제되는 방식과 유사한 적자생존의 원리를 제시했다.
 다윈은 그의 가설에서 진화와 같은 의미의‘변이를 수반한 상속’의 성립 조건으로▲ 집단 내의 각 개체는 다양성을 갖는다 ▲ 그 다양성의 일부는 세대를 통해 전달된다 ▲ 한 세대 내에서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한 개체들이 있다 ▲ 이 개체의 생존과 번식은 그 다양성에 따라 결정된다(무작위 선택과 반대되는 개념인 자연선택) 등 4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종의 기원의 출간은 당시에는 당연시되던 특수 창조설(Special Creation) 사상과대치됨으로써 생물 불변론을 주창하는 박물학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1860년의 옥스퍼드 논쟁 이후 진화론은 15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논쟁과 과학의발전, 특히 집단유전학적인 설명이 합해져 현재는 현대 종합 이론(Modern Synthesis) 으로 발전했다.

과학의 발전으로 다윈의 고민이 해결되다
 당시 다윈이 고민했던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당시 지구의 나이는 6천 년으로 알려졌으며 다윈은 자신의 점진적 진화 이론이 실현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시간을 설명할 수 없었다. 성공회 주교였던 제임스 우셔는 성경을 이용해 기원전 4004년 10월 26일 오전 9시에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다윈은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린 성서에 따른 해석을 모두 부인하지 못했던 듯하다. 아무튼, 이 문제는 이후 동위 원소법 등이 개발되어 지구의 나이가 46억년 이상으로 추정되면서 해결되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다윈이 집단 내에서 어떻게 형질의 다양성이 생기는지, 그 다양성이 어떻게 후대에 전달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진화의 단위와 진화의 방법의 문제로 요약되는데, 그 시대에는 유전자라는 개념이 없었다. 유전자를 발견한 멘델은 독일어권에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제안한 유전의 개념은 당시엔 환영 받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실제로 다윈은 멘델의 논문에 많은 물음표를 달아 놓는 등 논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다윈의 시대에는 유전자를 염료의 색소 정도로 이해하는 개념(blending hypothesis)이 일반적이었다. 20세기 들어 멘델의 재발견과 그 이후의 집단 유전학의 태동,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다양성의 원인인 유전적 변이의 생성, 그리고 유전 복제와 생식현상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면서 진화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현대 종합 이론이 탄생하다
 한편, 멘델 유전학에 대한 보다 발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집단(population) 안의 다양성 변화는 그 다양성에 영향을 주는 대립 유전자(allele)의 빈도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집단유전학적 설명이 제시되었다. 하디-바인버그설(Hardy-Weinberg’s principle)은 대립유전자 빈도(allele frequency)와 유전형질 빈도(genotype frequency) 간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때, 대립 유전자 빈도는 진화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자연선택, 유전자 이동, 유전적 부동, 변이, 그리고 불균형 교배 등 복합적인 영향에 의해 변화한다. 결국 ‘집단 안의 대립유전자의 빈도 변화’가 곧 진화로 정의된다.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현대 종합 이론(Modern Synthesis)의 핵심적인 토대가 마련된다. 이 이론은 줄리안 헉슬리에 의해 처음 그 이름이 제안되고 나서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Gene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발표 이후 발전해 정립되었다. 이름에서 의미하듯이 이 이론은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해 현대의 여러 과학 분야를 종합해 만들어졌으며, 이론의 성장 과정에서 집단 유전학의 발전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결국, 이 이론은 진화론의 핵심 사항인 진화의 단위와 진화의 방법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멘델 유전학, 자연선택 그리고 점진적 진화가 같은 맥락에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적 응 (adaptation)과 종 형성(speciation)의 개념까지도 이 현대 종합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 종합 이론에 기초해 앞에서 언급한 다윈의 가설에 유전적 변이, 대립유전자, 생식과정에 대한 개념을 도입해 현대적 개념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집단 내 개체 간 다양성은 유전자의 변이, 분리, 조합 등에 의해 생겨난다 ▲ 개체는 대립 유전형질을 자손에게 전달한다 ▲ 한 세대 내에서 생존과 번식에 더욱 유리한 개체들이 있다 ▲ 생존과 번식의 성공률은 환경에의 적합성 정도를 반영한다
 

진화론, 인간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세기에 축적된 관찰과 아울러 최근 20년 동안 실험 진화학 분야의 발전은 대립유전자 빈도의 변화 요인과 자연선택의 본질적 성격에 대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해를 제공했다. 다윈은 나중에 저술한‘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진화 이론을 인류 문명의 변화까지 확장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 자웅선택(sexual selection), 혈연도태(kin selection), 이타적 행동(altruism) 등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영장류와 같이 수명이 길고 지능행동을 하는 동물들은 개체 간의 거래가 공평해지도록 상호 존중을 통한 대칭적 상황에 익숙해질 경우, 특정한 감성형질도 선택된다. 그뿐만 아니라, 해밀턴 법칙을 이용하면 포유동물의 이유기도 산출해 낼 수 있다. 인간 행동에 대한 진화 사회학적인 설명이 가능해짐으로써 머지않아 사회적, 도덕적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창조론과 진화론, 과학도로서 의연하게 대처해야
다윈은 자신의 진화론이 눈과 같은 구조적 완성도가 지극히 높은 기관의 생성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최근 과학으로 위장한 창조론자인 지적 설계론자들은 복잡 구조기관의 최종 완성된 형태 이외의 개개 부속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개개 부속들이 새로운 기능을 흡수해 기능적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예가 속속 제시되며 이들의 주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기독교 문명권 국가의 창조론 문제에 관한 현실은 실로 심각하다. 최근 영국인의 과반수 가까이가 생명이 진화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창조주의 설계에 의해 생겨났다고 믿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런 가치관의 사회에서 과학자라는 직업으로 생계가 유지될지 걱정될 정도다.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근거한 창조주의자들은 진화의 증거 제시를 부정하며 믿음은 증명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성서에 따른 기술을 설득하는 것보다 진화론자의 증거불충분을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해 왔다. 또, 공립학교 교과과정 구성에서 법적, 정치적, 사회적 공간 확보를 목표로 설정하고 대중을 상대로 우민화, 반 과학화를 설득하며, 반 진화론적인 기독교 사회를 만들고자 입법화 추진을 통한 정치 투쟁을 목표로 삼는다. 이들의 구체적인 전략은 교과서 편찬 과정에 진화론이 포함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하거나(텍사스나 캔자스주는 이 전략이 효과를 거두어, 교과서에서 진화에 관한 내용을 배제하고 있다), 투표권자인 학부모들에게 창조론을 지지하는 교육자료 등을 제공한다.
 또한, 창조론과 진화론을 혼동하도록 철학적, 종교적,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과학과 종교에 대한 구분을 모호하게 설정함으로써 진화 또는 과학적 사실을 왜곡한다. 예로‘대장균에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원핵생물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없다)라거나, ‘원숭이가 사람의 조상이다’(원숭이와 사람은 공통조상에서 갈라졌다)라거나, ‘화석학적 증거들은 사탄의 모조품이다’등 틀린 사실을 퍼트려 일반 대중의 혼동을 유발, 과학을 제한적인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영역으로 여기게 한다.
 이런 시도에 대해 과학도로서 의연하게 대처해 창조론, 진화론 논쟁은 과학적 이슈가 아님을 주지시키고, 일반인을 상대로 과학적 상식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을 할 수있도록 과학적 사고체계를 교육하고 일깨우며, 아울러 정보 확산을 통한 창조론자들의 중세적 세뇌 전략을 타파해야 할 것이다.

 

글 /생명과학과 정재훈 교수 제공

정리 /강재승 기자 gamerka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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