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냐 외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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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냐 외설이냐
  • 김은희 기자
  • 승인 2009.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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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같은 잣대

 어떤 예술품이 음란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영화‘시네마천국’의 무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시칠리아의 마을이었는데, 여기서는 가톨릭교회의 사제가 검열관 노릇을 했다. 사제는 마을의 영화관에서 상영될 영화를 영사 기사와 함께 미리보면서, 입맞춤 같은 장면이 나오면 잘라내도록 했다. 결국, 주민들은 애정 표현이 모두 빠진 필름만을 볼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음란물은 공공의 영역에 노출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서구식으로 근대화된 문명권에서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규제해 왔는데, 그 규제의 기준은 일관성 없이 혼란스럽게 적용되곤 했다. 사실 시대적인 분위기가 변해감에 따라 기준도 변하기 때문에 기준에 일관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국내 영화계는 성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애썼다. 지금 누리는 표현의 자유는 얼핏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과거의 검열 당국과의 지속적인 싸움이 없었다면, 그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좀 더 진보적인 정권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지난 2005년에 국내에 개봉된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몽상가들’의 장면 중에 남자주인공의 성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보통 이와 같은 장면을 포함하면 상영허가를 못 받거나, ‘모자이크’를 띄우거나 해당 장면을 삭제하도록 강요받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예술적 가치’때문에 필요하다고 결론지어져 그대로 상영되었다.
 즉, 영화를 심의하는 당국에서는‘예술적 목적’, ‘예술적 가치’를 위해 필요하다면 성적으로 노골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는 허용할 수 있다고 한 셈인데, 문제는 그‘예술적 가치’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걸작이라 칭송받는 작품들도 한때는 음란하고 저속한 것으로 취급되어 혹독한 비난을 받곤 했다.

 

너무도 현실적인

마네의‘올랭피아’와‘풀밭 위의 점심’은 19세기 중반 파리의 예술계를 일대 소동으로 몰아넣었던 작품이다. 오늘날 그 그림들을 보면 딱히 뭐가 문제가 된 건지 알기 어렵다. 단지 그 무렵의 다른 누드화들과 달리 우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없어서 투박하고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정도인데, 이점이 당시 파리의 부르주아들을 화가 나게 했다. 그림 속 여성의 알몸과, 알몸이 드러난 정황이 너무도 실제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굳이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한 미술관에가 보지 않고, 서양미술사를 다룬 책을 펼쳐 보기만 해도 거기에는 알몸의 여성을 다룬 그림이나 조각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에도 암묵적인 관례는 있었다. 어디까지나 신화나 전설에 의지해 그려야 했던 것이다. 앵그르의‘안젤리카를 구출하는 루지에로’ 같은 그림이 그 모범적인 예이다. 여성의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만 이 그림은 성난 오를란도’라는 서사시의 한 장면을 옮겨 그린 것이다. 앵그르가 그린 누드는 마네의 그림과 달리 살이 물컹하게 잡힐 것 같은 현실적인 느낌은 없고, 오히려 색칠된 대리석 조각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창백하고 비현실적이다.
 서양미술사에서‘비너스의 탄생’이나‘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같은 제목을 단 누드화가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나체의 여성이라도‘바다 거품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라거나‘조각 작품이 갑자기 살아 있는 여성으로 변한 갈라테이아’라고 하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마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 부그로가 그린‘비너스의 탄생’은 마네의‘올랭피아’보다 훨씬 야릇하게 보이지만 당대에는 좋은 대접을 받았다.
 또한, ‘오달리스크’나‘터키탕’처럼 유럽이 아닌 동방의 풍속이라고 갖다 붙이면 화면 가득 여성의 나신을 그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르벡스가 그린‘롤라’는 잠에 취해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여성과, 우울하고 허무감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며 창가에 서있는 남성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1878년에 관립 전람회에 출품되었지만 전시를 거부당했다. 여성이 누워 있는 침대 앞쪽에 남녀의 겉옷이 뒤섞여 놓여 있는데, 이는 두 남녀가 지난밤 치렀던 격렬한 정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누드화라도‘지금 여기’라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되고, 성적인 정황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마네나 제르벡스는 그런 기준에 딱 걸려 버렸던 것이다. 누드에 대한 서양미술의 태도는 이처럼 이중적이고 위선적이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술은 애초부터 외설적이었다. 그것도 몹시 외설적이었다. 미술의 역사를 얘기할때는 흔히 석기 시대의 암굴 벽화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석기 시대의 암굴 벽화 중에는 창을 들고 서 있는 남자의 양 다리 사이에 성기가 큼지막하게 달려 있는 그림도 있다. 이 그림에 대해선 뭐라고 평가해야 할까? “그 시절 사람들은 참 체신머리가 없었군”이래야 하나? 하지만, 실제로 이런 그림은 미술사 책에서는 빠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기회도 별로 없다. 아니면 점잖은 학자들은 이를‘풍요와 다산에 대한 기원’을 운운하며 되도록 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언급하려 하기도 한다.
 때문에 1990년대 초에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불을 찾아서’가 국내에 개봉했을 때, 사람들은 이 영화가 석기 시대 인류의 성적 습관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에 놀랐다. 하지만 실제로 이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솔직하게 다룬 것 뿐이었다.
 미술은 사진과 영화가 발명되기 전까지 지배적인 시각매체였다. 사진과 영화 이전의 시각매체를 뭉뚱그려 ‘미술’이라고 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미술 이후의 시각매체는 성적인 내용을 열심히 담아 왔고, 더나아가 성적인 내용을 담으려는 욕망은 시각매체의 발달과 보급을 촉진시켰다. 개그맨 전유성의 말에 따르면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 비디오가 순식간에 확산되었던 것은, 포르노 비디오를 보려는 생각에 앞 다투어 비디오 기기를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90년대 말의 인터넷 보급 열풍에도 그 배경에는 음란물을 마음껏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강력하게 작용했다. 몇몇 과도 기적인 국면을 거쳐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일본에서 제작된 음란물은 이미 한국의 인터넷 공간을 석권하고 말았다. “한국 남자 들은 허리 위쪽으로는 반일을 외치지만 허리 아래는 이미 친일파가 되었다”라는 자조섞인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말은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이 무렵엔 외설 혐의 때문에 사법권의 철퇴를 맞은 사람이 많았다. 공연 중에 배우의 알몸을 드러낸 내용을 포함해서 연극 관계자가 구속되기도 했고, 당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였던 이현세와 한국 문단의 유망주였던 소설가 장정일도 자신들의 작품에 덧씌워진 외설 혐의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마광수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어떤 예술적 표현이 공적인 영역에서 드러나는 것을 막는 기준은 시대적 분위기와 정권의 성격에 따라 크게 달라지곤 한다. 예술의 소재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요즘 새삼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미 음란물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무너지다시 피 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소통의 매체와 공간이 다변화한 지금, 공식적인 영역과 물밑 영역 간의 괴리가 더욱 커지기만 한다면 끝내는 가치 기준 자체의 붕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연식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일본의 우키요에와 양풍화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미술영화 거들떠보고서』『위작과 도난의 미술사』를 썼고, 『무서운 그림』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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